"예장도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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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소에서 장례를 치른 뒤 [[혼궁|혼궁(魂宮)]]에 신주를 봉안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본래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장례는 ‘국장(國葬)’이었으나 [[소현세자|소현세자(昭顯世子)]]의 상례부터 | + | 묘소에서 장례를 치른 뒤 [[혼궁|혼궁(魂宮)]]에 신주를 봉안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본래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장례는 ‘국장(國葬)’이었으나 [[소현세자|소현세자(昭顯世子)]]의 상례부터 ‘예장(禮葬)’이 되었다.<ref>김윤정, 「17세기 昭顯世子 喪禮의 성격과 의미」, 『한국학연구』 40,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 444쪽.</ref> 예장이 끝난 뒤에는 ‘예장도감의궤(禮葬都監儀軌)’를 작성하여 보관하였다. <ref>이현진, "[http://uigwe.museum.go.kr/content/contentView1;jsessionid=pnx6ZYWXcn0qvhzLV1WnvKSmGByGWVgRMDnjGMQ8j6JHJGBdT0Ht!-1993556007?serviceType=b&id=uig_181&searchKeyword=&searchKeyword2=&sortField=&sortOrder=asc&dataType=&listAll=&lmenuType=&totalCount=0¤tIndex=1&pageIndex=1&pageUnit=10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의궤 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외규장각 의궤』<sup>online</sup></online></html>, 국립중앙박물관.</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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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원은 [[도제조|도제조(都提調)]] 1인, [[제조|제조(提調)]] 2인, [[도청|도청(都廳)]] 1인, [[낭청|낭청(郎廳)]] 2인으로 | + | 인원은 [[도제조|도제조(都提調)]] 1인, [[제조|제조(提調)]] 2인, [[도청|도청(都廳)]] 1인, [[낭청|낭청(郎廳)]] 2인으로 구성된다. 부속관청으로 업무를 총괄하는 [[도청|도청(都廳)]]과 실무를 담당하는 [[일방|일방(一房)]], [[이방|이방(二房)]], [[삼방|삼방(三房)]], [[분전설사|분전설사(分典設司)]], [[분장흥고|분장흥고(分長興庫)]], [[지석소|지석소(誌石所)]]ㆍ[[우주소|우주소(虞主所)]], [[별공작|별공작(別工作)]]이 있다.<ref>한영우, 『조선왕조 의궤』, 일지사, 2005, 290~291쪽.</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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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진, 「영조대 의소세손(懿昭世孫)의 예장(禮葬)과 그 성격」, 『韓國思想史學」 46, 한국사상사학회, 2014. | * 이현진, 「영조대 의소세손(懿昭世孫)의 예장(禮葬)과 그 성격」, 『韓國思想史學」 46, 한국사상사학회, 2014. | ||
* 이현진, 「조선후기 세자빈 禮葬 의례와 그 특징」, 『韓國文化』 73,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16. | * 이현진, 「조선후기 세자빈 禮葬 의례와 그 특징」, 『韓國文化』 73,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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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4일 (토) 11:02 기준 최신판
예장도감(禮葬都監) | |
대표명칭 | 예장도감 |
---|---|
한자표기 | 禮葬都監 |
주요업무 | 왕세자와 왕세자빈을 비롯한 왕실 가족의 상례 |
담당업무 | 흉례 |
관련기관 | 예조(禮曹) |
정의
조선시대 왕비의 부모, 빈(嬪), 귀인(貴人), 대군, 왕자군 및 부인(夫人), 공주, 옹주, 의빈, 종친의 종2품 이상, 백관 종1품 이상 및 공신의 상례를 담당[1]하기 위하여 설치된 임시 관서이다.
내용
업무
묘소에서 장례를 치른 뒤 혼궁(魂宮)에 신주를 봉안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본래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장례는 ‘국장(國葬)’이었으나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상례부터 ‘예장(禮葬)’이 되었다.[2] 예장이 끝난 뒤에는 ‘예장도감의궤(禮葬都監儀軌)’를 작성하여 보관하였다. [3]
구성
인원은 도제조(都提調) 1인, 제조(提調) 2인, 도청(都廳) 1인, 낭청(郎廳) 2인으로 구성된다. 부속관청으로 업무를 총괄하는 도청(都廳)과 실무를 담당하는 일방(一房), 이방(二房), 삼방(三房), 분전설사(分典設司), 분장흥고(分長興庫), 지석소(誌石所)ㆍ우주소(虞主所), 별공작(別工作)이 있다.[4]
지식 관계망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예장도감 | 상례 | A는 B를 담당하였다 | A ekc:administrates B |
예장도감(禮葬都監) | 단의빈예장도감의궤 | A는 B를 편찬하였다 | A dcterms:publisher B |
예장도감(禮葬都監) |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 A는 B를 편찬하였다 | A dcterms:publisher B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718년 | 단의빈예장도감의궤를 편찬하였다 |
1752년 |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를 편찬하였다 |
주석
- ↑ "예장", 한국고전용어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네이버. - ↑ 김윤정, 「17세기 昭顯世子 喪禮의 성격과 의미」, 『한국학연구』 40,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 444쪽.
- ↑ 이현진,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의궤 검색,
『외규장각 의궤』online , 국립중앙박물관. - ↑ 한영우, 『조선왕조 의궤』, 일지사, 2005, 290~291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한영우, 『조선왕조 의궤』, 일지사, 2005.
- 김윤정, 「17세기 昭顯世子 喪禮의 성격과 의미」, 『한국학연구』 40,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
- 김윤정, 「18세기 端懿嬪의 喪禮와 服制論議」, 『장서각』 32,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 이현진, 「영조대 의소세손(懿昭世孫)의 예장(禮葬)과 그 성격」, 『韓國思想史學」 46, 한국사상사학회, 2014.
- 이현진, 「조선후기 세자빈 禮葬 의례와 그 특징」, 『韓國文化』 73,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