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초상화관 개관

"김육 초상(반신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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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틀:역사인물초상화 Top icon}} {{역사인물초상화 |사진= 역사인물초상화_초상_김육 초상(반신상).jpg |사진출처= |대표명칭= 김육 초상(반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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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초상의 제작 및 보관===
1636년 동지성절천추진하사(冬至聖節千秋進賀使)로 명에 사행을 갔을 때, 중국화가 [[호병|호병(胡炳)]]을 통해 제작한 것으로, 그의 58세 초상으로 추정된다. 녹색 [[단령]]을 입고 있는 전신상이다. 작품에 대한 기록은 [[김육]]의 사행일기인 『[[조경일록|조경일록(朝京日錄)]]』에서 찾을 수 있는데 [[김육]]이 북경에 있을 때, 1637년 3월 13일 중국인 화가 [[호병]][[김육]]의 초상을 그려 4월 11일에 완성본을 가져왔으며, 4월 15일에는 [[김육]]의 소진(小眞)을 그려왔다고 하는데 4월 11일에 완성했다는 초상이 이 <김육 초상>으로 보인다.<ref>정은주, 「赴京使行에서 제작된 朝鮮使臣의 肖像」, 『명청사연구』 제33집, 명청사학회, 2010, 24쪽.</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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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영광|맹영광(孟永光)]]이 그린 [[김육]]의 [[초상]]으로 작은 화첩에 반신상으로 그려졌다. [[김육]]이 [[병자호란]] 이후, 1643년 12월부터 1644년 7월까지 [[심양관]]에서 [[소현세자]]의 [[원손보양관|원손보양관(元孫輔養官)]]으로 있을 때 그곳에서 만난 남경 출신의 한인 화가 [[맹영광]]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그려준 초상화이다. [[김육]]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였다.<br/>
우측 상단에는 <영의정잠곡김문정공화상(領議政潛谷金文貞公畵像)>이라는 표제와 [[조선 숙종|숙종]][[조선 숙종의 김육 초상(전신상) 어제찬|어제찬]]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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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종대왕 어제찬, 야윈 얼굴과 백발은 바라보니 신선 풍격이로다. 그 상은 누구인가, 잠곡 상공이로세. 대현의 후손으로 집안에 충효 전하고 엄숙한 태도로 의정을 맡아 몸 바쳐 일했으니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에 봉사하여 신명이 통할만하다. 아, 선현이여, 소자 흠앙하옵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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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묘하구나, 남경의 맹화사. 초상 그리는데 털 끝조차 빠뜨리지 않았네 고국에 돌아가 어찌 감히 그대 은혜를 잊겠는가. 내 초상 볼 때마다 그대 얼굴 생각하리.<br/>神妙南京孟畫師. 寫眞毫髮細無遺. 東歸何敢忘君惠,. 吾面看時子面思.
肅宗大王 御製贊. 蒼顔鶴髮, 望如仙風, 厥像伊誰, 潛谷相公, 大賢之後, 傳家孝忠, 正色廊廟, 盡瘁鞠躬, 一心體國, 神明可通, 於乎先正, 小子欽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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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18쪽.<ref>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18쪽.</ref>
|출처= 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22쪽.<ref>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2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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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에는 [[호병]]이 그린 또 다른 [[송하한유도|김육의 초상화]]가 소장되어 있는데 그 형식이 독특하다. 표제가 <잠곡김문정공소상(潛谷文貞公小像)>인 이 그림은 소나무 아래 [[와룡관]]에 [[학창의]]를 입고 서있는 형식으로, 일명 '[[송하한유도|송하한유도(松下閒遊圖)]]'로도 불리고 있다.<br/>
 
화면 좌측상단에 ‘화학행인(龢鶴行人)’과 함께 ‘호병지인(胡炳之印)’이라는 [[백문방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 그림을 그린이가 [[호병]]임을 알 수 있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조선 영조|영조]]가 1751년 2월 3일에 쓴 [[조선 영조의 송하한유도 어제찬|어제찬]]이 있다. 김육의 전신상에 쓴 [[조선 숙종|숙종]]의 [[조선 숙종의 김육 초상(전신상) 어제찬|어제찬]]을 따라 [[조선 영조|영조]]가 차운한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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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 쓰고 학창의 입고 솔바람 의지하고 서있으니 이 누구의 상인가? 잠곡 김공이로세.  과거 대신으로 나라 위해 충성하였으니 옛사람의 뜻을 본받아 혼신으로 직분을 다하였네.  대동법을 모획한 것 신통하다 할 만하니, 아, 후손들은 백세도록 숭앙하네.<br/>
 
綸巾鶴氅 倚立松風, 是誰之像 潛谷金公, 效古人義 竭心鞠躬, 大同謀畵 可謂神通, 吁嗟小子 百載欽崇.
 
|출처= 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17쪽.<ref>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17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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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의 두 초상화는 조선의 인물을 중국인 화가가 그린 특별한 예이다. 전신상의 [[정면관]]과 의자에 깐 호피 등은 이후 조선의 초상화 형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송하한유도]]는 독특한 형식의 야외초상화의 한 예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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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인물을 중국인 화가가 그린 특별한 예이며 초상화 속 인물과 화가와의 교류까지 알 수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초상에 묘사된 모습===
녹색 [[단령]]에 [[사모]]를 착용한 [[정면관]]의 전신교의좌상이다. 화면의 우측 상단에 <영의정잠곡김문정공화상(領議政潛谷金文貞公畵像)> 표제가 있다. 복식은 녹색 [[단령]]에 운학문 [[흉배]]가 넓고 [[품대|금대]]를 허리에 둘렀다. 고대가 높고 많이 패지 않은 넓은 깃의 [[단령]]과 풍성한 옷 주름은 조선중기 초상화에서 보이는 인위적인 각이 없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ref>정은주, 「赴京使行에서 제작된 朝鮮使臣의 肖像」, 『명청사연구』 제33집, 명청사학회, 2010, 25쪽.</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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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 초상>은 전신이 아닌 흉상으로, 양각이 귀 밑으로 늘어진 [[사모]]를 쓰고 청색 [[편복]]을 입은 모습이다. 청색 [[두루마기]]의 옷 주름 사이사이에 음영을 넣어 입체감이 느껴진다. 얼굴은 자연스런 운염법을 사용하여 음영을 넣었고 코와 미간은 가는 선묘를 사용하였다.<ref>정은주, 「赴京使行에서 제작된 朝鮮使臣의 肖像」, 『명청사연구』 제33집, 명청사학회, 2010, 28쪽.</ref> 하얀 수염이 특징적인데 작가인 [[맹영광]]도 이에 대한 찬을 그림에 남겼다.<br/>
얼굴은 이목구비의 비례가 잘 맞고 과장된 느낌이 거의 없다. 특히 마마로 얽은 흉터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있고 수염이 특징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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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의 우측에 “영의정잠곡김문정공소진(領議政潛谷金文貞公小眞)” 이라고 표제가 있고 좌측에는 [[맹영광]]의 다음과 같은 찬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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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처럼 수염과 신선 같은 풍채에서 내면의 덕이 풍겨 군자라면 그를 보고 누구라도 알아 볼 것이다. 맹영광이 초상을 그리고 찬한 것이다.<br/>雪鬢霞儀外形內德 君子觀之是無不識 右盟永光寫眞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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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18쪽.<ref>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18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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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2017년 10월 30일 (월) 02:10 판


김육 초상(반신상)
역사인물초상화 초상 김육 초상(반신상).jpg
한자명칭 金堉 肖像
작가 맹영광
제작시기 1644년
소장처 실학박물관
유형 초상
크기(세로×가로) 26.3×17.4㎝


정의

중국인 화원 호병이 조선시대 문신인 김육(1580∼1658)의 모습을 초상.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맹영광(孟永光)이 그린 김육초상으로 작은 화첩에 반신상으로 그려졌다. 김육병자호란 이후, 1643년 12월부터 1644년 7월까지 심양관에서 소현세자원손보양관(元孫輔養官)으로 있을 때 그곳에서 만난 남경 출신의 한인 화가 맹영광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그려준 초상화이다. 김육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Quote-left.png 신묘하구나, 남경의 맹화사. 초상 그리는데 털 끝조차 빠뜨리지 않았네 고국에 돌아가 어찌 감히 그대 은혜를 잊겠는가. 내 초상 볼 때마다 그대 얼굴 생각하리.
神妙南京孟畫師. 寫眞毫髮細無遺. 東歸何敢忘君惠,. 吾面看時子面思.
Quote-right.png
출처: 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18쪽.[1]


조선의 인물을 중국인 화가가 그린 특별한 예이며 초상화 속 인물과 화가와의 교류까지 알 수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김육 초상>은 전신이 아닌 흉상으로, 양각이 귀 밑으로 늘어진 사모를 쓰고 청색 편복을 입은 모습이다. 청색 두루마기의 옷 주름 사이사이에 음영을 넣어 입체감이 느껴진다. 얼굴은 자연스런 운염법을 사용하여 음영을 넣었고 코와 미간은 가는 선묘를 사용하였다.[2] 하얀 수염이 특징적인데 작가인 맹영광도 이에 대한 찬을 그림에 남겼다.
화면의 우측에 “영의정잠곡김문정공소진(領議政潛谷金文貞公小眞)” 이라고 표제가 있고 좌측에는 맹영광의 다음과 같은 찬문이 있다.

Quote-left.png 눈처럼 흰 수염과 신선 같은 풍채에서 내면의 덕이 풍겨 군자라면 그를 보고 누구라도 알아 볼 것이다. 맹영광이 초상을 그리고 찬한 것이다.
雪鬢霞儀外形內德 君子觀之是無不識 右盟永光寫眞讚.
Quote-right.png
출처: 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18쪽.[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육 초상(반신상) 초상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김육 초상(반신상) 김육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김육 초상(반신상) 맹영광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김육 초상(반신상) 실학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조경일록 김육 초상(전신상)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조경일록 김육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김육 초상(전신상) 조선 숙종의 김육 초상(전신상) 어제찬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조선 숙종의 김육 초상(전신상) 어제찬 조선 숙종 A는 B에 의해 지어졌다 A dcterms:creator B
송하한유도 김육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송하한유도 호병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송하한유도 실학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송하한유도 조선 영조의 송하한유도 어제찬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조선 영조의 송하한유도 어제찬 조선 영조 A는 B에 의해 지어졌다 A dcterms:creator B
조선 영조의 송하한유도 어제찬 조선 숙종의 김육 초상(전신상) 어제찬 A는 B에서 차운되었다 A dcterms:references B
정면관 김육 초상(전신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단령 김육 초상(전신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사모 김육 초상(전신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흉배 김육 초상(전신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금대 김육 초상(전신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160470 127.3006060 김육 초상(전신상)김육 초상(전신상)에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주석

  1. 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18쪽.
  2. 정은주, 「赴京使行에서 제작된 朝鮮使臣의 肖像」, 『명청사연구』 제33집, 명청사학회, 2010, 28쪽.
  3. 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18쪽.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1. "김육 초상", 『Google Arts & Culture』online, Google.

더 읽을거리

  1. 전시도록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2. 논문
    • 정은주, 『조선시대 명청사행 관련 회화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