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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는 송나라 학자 [[주희]](1130~1200)가 편찬한 가정의 예법에 관한 책이다. | 『[[가례]]』는 송나라 학자 [[주희]](1130~1200)가 편찬한 가정의 예법에 관한 책이다. | ||
[[주희]]가 『[[가례]]』를 저술한 동기는 예는 근본과 문(文)이 있는데, 가정에서 시행되는 것 가운데 명분을 지키고, 애경(哀敬)을 행함은 근본이며, 관혼상제에 대한 의식 절차는 문식(文飾)이므로 근본과 문식을 동시에 이루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 [[주희]]가 『[[가례]]』를 저술한 동기는 예는 근본과 문(文)이 있는데, 가정에서 시행되는 것 가운데 명분을 지키고, 애경(哀敬)을 행함은 근본이며, 관혼상제에 대한 의식 절차는 문식(文飾)이므로 근본과 문식을 동시에 이루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 ||
− | + | 『[[가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준용되어 국가와 사대부가의 생활에 있어 근간이 되어 왔는데 풍속과 관념이 중국과 달라서 시행상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예를 지키고 의식을 잘 이행하는 것이 사대부의 명예를 유지하고 체면을 지킨다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나중에는 『[[가례]]』의 형식에 맞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 |
− | 그리하여 그 여파로 수많은 의견과 여러가지를 보충한 주석서들이 출간 되었다. 대표적으론 [[조호익|조호익(曺好益)]]의 『[[가례고증|가례고증(家禮考證)]]』, [[안건|안건(安愆)]]의 [[가례부췌|가례부췌(家禮附贅)]], | + | 그리하여 그 여파로 수많은 의견과 여러가지를 보충한 주석서들이 출간 되었다. 대표적으론 [[조호익|조호익(曺好益)]]의 『[[가례고증|가례고증(家禮考證)]]』, [[안건|안건(安愆)]]의 『[[가례부췌|가례부췌(家禮附贅)]]』, [[유계|유계(兪棨)]]의 『[[가례원류|가례원류(家禮源流)]]』 등이 있다. 사대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책을 일반 백성에게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한글로 언해한 것이다. |
− | [[유계|유계(兪棨)]]의 [[가례원류|가례원류(家禮源流)]] 등이 있다. 사대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책을 일반 백성에게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한글로 언해한 것이다. | ||
<ref>이종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0116 가례언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ref>이종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0116 가례언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2017년 12월 12일 (화) 23:08 기준 최신판
가례언해 | |
한자명칭 | 家禮諺解 |
---|---|
영문명칭 | A Korean annotation of family rites |
작자 | 신식 |
간행시기 | 1632년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A5E-68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2.3×20.8cm |
판본 | 목판본 |
수량 | 4책 |
표기문자 | 한글,한자 |
목차
정의
1632년(인조 3) 신식이 『가례(家禮)』를 언해한 책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가례』는 주희(朱熹)가 가정에서 행하는 예절을 모아 엮은 것으로, 통례(通禮),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장례(葬禮), 제례(祭禮) 등의 예절을 다루고 있다. 『가례』는 국가와 사대부가에서 행하는 모든 예식(禮式)을 해석했으며, 모든 예식이 이에 의거해 충실히 실행되어 왔다. 따라서 『가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가례언해』는 신식(申湜, 1551~1623)이 만년에 언해한 것을, 그의 아들 신득연(申得淵, 1585~1647)이 1632년 강원도관찰사 재직 당시 원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범례와 신득연의 발문을 보면, "예악에 밝았던 신식이 편찬 언해한 것인데, 이 유고가 세상에 전하지 못 하고 인멸될 것을 우려하여 3개월에 걸쳐 간행하였다"라고 하였다.[1]
『가례』에 대하여
『가례』는 송나라 학자 주희(1130~1200)가 편찬한 가정의 예법에 관한 책이다. 주희가 『가례』를 저술한 동기는 예는 근본과 문(文)이 있는데, 가정에서 시행되는 것 가운데 명분을 지키고, 애경(哀敬)을 행함은 근본이며, 관혼상제에 대한 의식 절차는 문식(文飾)이므로 근본과 문식을 동시에 이루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가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준용되어 국가와 사대부가의 생활에 있어 근간이 되어 왔는데 풍속과 관념이 중국과 달라서 시행상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예를 지키고 의식을 잘 이행하는 것이 사대부의 명예를 유지하고 체면을 지킨다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나중에는 『가례』의 형식에 맞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여파로 수많은 의견과 여러가지를 보충한 주석서들이 출간 되었다. 대표적으론 조호익(曺好益)의 『가례고증(家禮考證)』, 안건(安愆)의 『가례부췌(家禮附贅)』, 유계(兪棨)의 『가례원류(家禮源流)』 등이 있다. 사대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책을 일반 백성에게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한글로 언해한 것이다. [2]
지식 관계망
- 가례언해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가례언해 | 신식 | A는 B에 의해 언해되었다 | A ekc:translator B |
신득연 | 신식 | A는 B의 아들이다 | A ekc:hasFather B |
가례언해 | 가례 | A는 B의 언해본이다 | A edm:isDerivativeOf B |
가례 | 주희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가례고증 | 조호익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가례부췌 | 안건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가례원류 | 유계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가례고증 | 가례 | A는 B의 주석본이다 | A edm:isDerivativeOf B |
가례부췌 | 가례 | A는 B의 주석본이다 | A edm:isDerivativeOf B |
가례원류 | 가례 | A는 B의 주석본이다 | A edm:isDerivativeOf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632년 | 신식이 가례를 언해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197 | 127.054387 | 가례언해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32쪽.
- ↑ 이종철, "가례언해",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이문주, 「《주자가례》의 조선 시행과정과 가례주석서에 대한 연구」, 『儒敎文化硏究』, Vol-16,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0, 37-61쪽.
- 이혜순, 「16세기《주자가례》담론의 전개와 특성」, 『정신문화연구』, Vol-29,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 5-33쪽.
- 장동우, 「조선후기 가례 담론의 등장 배경과 지역적 특색」, 『국학연구』, Vol-13, 한국국학진흥원, 2008, 97-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