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http://uigwe.museum.go.kr)
대표명칭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한자표기 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
주제 가례(嘉禮)
작성주체 가례도감(嘉禮都監)
의례담당자 신만(申晩)
작성지역 한성부
작성시기 1759년(영조 35년)
소장처(원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어람용)
규장각한국학연구원(태백산)
판본 필사본
표기문자 한자, 이두
수량 어람용: 총 2책 288장(상책 150장, 하책 138장)
태백산: 총 2책 291장(상책 152장, 하책 139장)
크기 어람용: 47.2×33.8
태백산: 45.9×32.8
도설 18면(상책 4면, 하책 14면)(채색)
반차도 50면(하책)(채색)
총 길이: 약 1,700㎝



정의

1759년(조선 영조 35)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혼례를 치르는 가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내용

1757년(영조 33) 2월 정비 정성왕후와 사별한 영조는 3년상이 끝난 1759년(영조 35) 6월에 정순왕후(貞純王后)를 계비로 맞이했다. 당시 영조는 66세이고, 정순왕후는 15세였다. 영조에게는 정빈 이씨영빈 이씨 등 후궁이 있었다. 정빈 이씨효장세자를 낳았고, 영빈 이씨장헌세자를 낳아 대리청정을 하고 있었으며 장헌세자는 후에 정조가 될 원손을 낳아 영조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영빈 이씨장희빈의 횡포를 경험한 숙종후궁왕비가 되는 길을 제도적으로 막아 버려 왕비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66세의 노년임에도 중궁전을 비워둘 수 없어 새 왕비를 맞이해야만 했다. 1757년(영조 33) 정성왕후와 숙종의 두 번째 계비 인원왕후의 3년상이 끝나 종묘에 부묘되어 영조는 3년상에서 모두 벗어났다. 5월 우의정 신만(申晩)도제조로 하는 가례도감이 설치되고 혼례를 간소하게 치르라고 명하였다. 6월 9일 창경궁 통명전에서 간택을 하여 김한구(金漢耉)의 딸이 최종 선택되었다. 6월 13일 신부의 집에 청혼서를 보내는 납채, 6월 17일 신부집에 예물을 보내는 납폐, 6월 19일 가례의 일자를 알리는 고기, 6월 20일 신부를 왕비로 책봉하는 책비는 모두 창경궁 명정전에서 치러졌다. 6월 22일 신부의 집에서 신부를 데리고 오는 친영으로 영조어의궁에서 왕비 수업을 받고 있는 왕비를 데리고 궁으로 돌아왔다. 왕비와 술과 음식을 나누는 동뢰창경궁 통명전에서 거행되었다. 영조백관들의 하례를 받고 가례도감 관원들과 장인들에게 차등을 두어 상을 내렸다. 영조는 1749년(영조 25)에 『국혼정례(國婚定例)』를 편찬하여 궁중 혼례의 사치와 낭비를 막고 혼수량을 간소하게 하는 조처를 취한 바가 있으며, 이에 따라 이번 혼례식도 간소하게 치러졌다. 이 책에는 영조가 신부 정순왕후를 데리고 궁으로 가는 50면의 친영반차도가 실려 있는데, 등장하는 말이 대략 390필, 참여자가 1,118명에 달한다.[1]

목록

상책: 좌목(座目), 계사질(啓辭秩), 예관질(禮關秩), 이문질(移文秩), 내관질(來關秩), 품목질(稟目秩), 감결질(甘結秩), 일방의궤(一房儀軌)
하책: 이방의궤(二房儀軌), 삼방의궤(三房儀軌), 별공작의궤(別工作儀軌), 수리소의궤(修理所儀軌)

해제

김지영,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상책", 의궤 검색, 『외규장각의궤』online, 국립중앙박물관.
김지영,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하책", 의궤 검색, 『외규장각의궤』online, 국립중앙박물관.
김영인,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의궤 검색, 『의궤 종합정보』online,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판본

국립중앙박물관: 어람용(2534), (2535)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예조본(奎 13104), 태백산본(奎 13102), 오대산본(奎 13103)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적상산성본(K2-2591)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영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정순왕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왕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왕의 대례복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mentions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왕의 조복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mentions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왕비의 대례복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mentions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왕비의 소례복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mentions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가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국립중앙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1759년 영조정순왕후가례가 거행되었다
1759년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가 편찬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80758 126.994503 창경궁 명정전에서 납채가 거행되었다.
37.580758 126.994503 창경궁 명정전에서 납폐가 거행되었다.
37.580758 126.994503 창경궁 명정전에서 고기가 거행되었다.
37.580758 126.994503 창경궁 명정전에서 책비가 거행되었다.
37.574970 127.002027 어의궁에서 친영이 거행되었다.
37.580758 126.994503 창경궁 통명전에서 동뢰가 거행되었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가상 현실 - 전체 화면 보기

왕의 행렬

번호 이미지 대상 설명[2] 복장/복식
1 별군직 별군직(别軍職) 임금의 호위와 간신(奸臣)을 잡아내는 일을 맡아보던 무관 백관의 군복
2 전부고취 전부고취(前部皷吹) 행렬의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악대 백관의 공복
2 전악 전악(典樂) 악대의 지휘를 담당하던 장악원(掌樂院)의 관원 백관의 공복
3 봉촉 봉촉(捧燭) 등불을 든 사람 주립(朱笠)
홍의(紅衣)
4 별감 별감(别監) 호위를 맡았던 하급 군관 홍건(紅巾)
홍의(紅衣)
답호(褡𧞤)
4 무예별감 무예별감(武藝别監) 왕을 호위하는 무관 홍건(紅巾)
녹의(綠衣)
5 연-영조 연(輦)-영조(英祖) 왕실에서 사용하는 지붕이 있는 가마로, 영조(英祖)가 타고 있다. 왕의 대례복
5 연배군 연배군(輦陪軍) 왕의 가마를 메는 군사 홍건(紅巾)
홍의(紅衣)
6 청선 청선(青扇) 청색 부채 홍건(紅巾)
청의(靑衣)
6 후전대기 후전대기(後殿大旗) 검은 바탕에 청룡과 구름무늬가 있는 깃발 흑건(黑巾)
청의(靑衣)
6 현무기 현무기(玄武旗) 군기(軍旗)인 대오방기(大五方旗)의 하나로, 뱀에 감긴 거북을 그린 깃발 흑건(黑巾)
청의(靑衣)
7 후부고취 후부고취(後部皷吹) 행렬의 뒤에서 연주하던 악대 백관의 공복
7 전악 전악(典樂) 악대의 지휘를 담당하던 장악원(掌樂院)의 관원 백관의 공복
8 금군 금군(禁軍) 궁궐의 수비와 왕의 호위를 맡았던 군사 백관의 군복
8 호위군관 호위군관(扈衛軍官) 호위군관 백관의 군복
8 가전별초 가전별초(駕前别抄) 가마 앞에 위치한 호위병 백관의 군복
8 나장 나장(羅将) 행렬의 호위를 담당하는 의금부나 병조의 하급 군졸 조건(皁巾)
철릭[帖裏]
답호(褡𧞤)
8 협련포수 협련포수(挾輦砲手) 신주를 모신 상여 곁에서 호위하는 포수 조건(皁巾)
청의(靑衣)
답호(褡𧞤)
8 가후 가후(駕後) 가마 뒤에 위치한 호위병 백관의 군복
8 금부도사 금부도사(禁府都事) 사법기관의 하나인 의금부에 속한 관원 백관의 상복
8 초관 초관(哨官) 군대 단위인 초(哨)를 통솔하던 종9품 관직 백관의 군복
8 파총 파총(把摠) 군영 소속 정4품의 무관직 백관의 군복
9 협련장 협련장(挾輦将) 신주를 모신 상여 곁에서 호위하는 장수 백관의 융복
9 내시 내시(内侍) 궁궐에서 음식이나 왕명 전달, 청소 등의 일을 맡아보던 환관 백관의 상복
9 사복내승 사복내승(司㒒内乗) 궁중의 말이나 수레를 관리하는 관서인 사복시(司僕寺)의 관원 백관의 상복
9 어의 어의(御醫) 왕의 치료를 전담하는 의사 백관의 상복

왕비의 행렬

번호 이미지 대상 설명[3] 복장/복식
1 기행나인 기행나인(騎行内人) 말을 탄 궁녀 너울[羅兀]
여립(女笠)
장삼(長衫)
치마(赤亇)
1 보행나인 보행나인(步行内人) 걸어가는 궁녀 가리마(加里磨)
당의(唐衣)
치마(赤亇)
1 상궁 상궁(尚宫) 정5품 궁녀 너울[羅兀]
여립(女笠)
장삼(長衫)
치마(赤亇)
1 향차비 향차비(香差備) 향을 담당하는 관원 가리마(加里磨)
당의(唐衣)
치마(赤亇)
2 별감 별감(别監) 호위를 맡았던 하급 군관 조건(皁巾)
녹의(綠衣)
3 정순왕후 연(輦)-정순왕후(貞純王后) 왕실에서 사용하는 지붕이 있는 가마로, 정순왕후(貞純王后)가 타고 있다. 왕비의 소례복
3 연배군 연배군(輦陪軍) 왕비의 가마를 메는 군사 홍건(紅巾)
홍의(紅衣)
4 청선 청선(青扇) 청색 부채 홍건(紅巾)
청의(靑衣)
5 연배여군 연배여군(輦陪餘軍) 예비로 따라가는 왕비의 가마를 메는 군사 홍건(紅巾)
홍의(紅衣)
6 귀유치 귀유치(歸逰赤) 내시가 되기 전의 어린 내관 감투[甘頭]
단령(團領)
6 보행내관 보행내관(步行内官) 걸어가는 내관 백관의 상복*
6 시녀 시녀(侍女) 궁궐에서 왕비 등의 시중을 담당한 궁녀 너울[羅兀]
여립(女笠)
장삼(長衫)
치마(赤亇)
6 의녀 의녀(醫女) 내의원과 혜민서에 소속된 여자 의원 전모(氈帽)
당의(唐衣)
치마(赤亇)
7 내시 내시(内侍) 궁궐에서 음식이나 왕명 전달, 청소 등의 일을 맡아보던 환관 백관의 상복
7 사복정 사복정(司僕正) 사복시(司僕寺)의 정3품 관원 백관의 조복
7 의관 의관(醫官) 질병 치료에 종사하는 관원 백관의 상복

도감 관원의 행렬

번호 이미지 대상 설명[4] 복장/복식
1 도감사령 도감사령(都監使令) 임시 관청인 도감에 소속된 하급 관원 백관의 융복
1 서리 서리(書吏) 중앙 관아에 근무하던 하급 관원 무각평정건
단령(團領)
1 사령 사령(使令) 각 관청의 관원이 부리던 하인으로 호위와 시종을 담당 백관의 융복
2-1 도제조 도제조(都提調) 육조의 속아문이나 군영 등에 두었던 정1품 관직으로, 영조-정순왕후 가례의 총책임자는 신만(申晩)이었다. 백관의 조복
2-2 제조 제조(提調) 당상관 이상의 관원이 없는 관아에 겸직으로 임명하여 각 관아를 실질적으로 통솔하던 직책 백관의 조복
2-3 도청 도청(都㕔) 임시 관서인 도감의 관직 백관의 조복
2-4 낭청 낭청(郎㕔) 각 관서에서 차출하여 겸임시켰던 당하관의 실무 담당 관직 백관의 조복
2-5 감조관 감조관(監造官) 여러가지 왕실행사의 실무를 감독하는 관원 백관의 조복
2-5 감역관 감역관(監役官) 토목과 건축을 담당하는 선공감(繕工監)에 속한 정9품의 관원 백관의 조복

주석

  1. 한영우, 『조선왕조 의궤-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314~322쪽.
  2. 제송희,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하)", 『외규장각 의궤』online, 국립중앙박물관.
  3. 제송희,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하)", 『외규장각 의궤』online, 국립중앙박물관.
  4. 제송희,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하)", 『외규장각 의궤』online,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혼정례』
  • 『상방정례』
  • 임민혁,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글항아리, 2017.
  • 신병주, 『왕실의 혼례식 풍경』, 돌베개, 2013.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저, 『조선 왕실의 혼례 이야기』,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11.
  • 이성미, 『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 소와당, 2008.
  • 김문식, 신병주 저,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 서울대학교 규장각, 『규장각소장 분류별의궤해설집』,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서울대학교 규장각, 『규장각소장 의궤 해제집(3)』,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신병주, 『66세의 영조 15세의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 한영우, 『조선왕조 의궤-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