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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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6년 12월 27일 (화) 12:1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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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Definition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고령신씨(高靈申氏)'

경상북도 고령을 본관으로 하고, 시조는 고려시대에 군기감검교(軍器監檢校)를 지낸 신성용(申成用)이다. 신성용의 6대손에서 암헌공파(巖軒公派:檣)·정언공파(正言公派:枰)·감찰공파(監察公派:梯)의 3파로 갈리는데, 이 중 암헌공파가 주축을 이룬다. 조선시대에 상신 3명, 대제학 3명 등 많은 문신을 배출하였다.

세종 때 공조참판을 지낸 유학자 신장(申檣)은 5형제를 두었는데, 특히 신숙주(申叔舟)가 뛰어났그, 그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신숙주는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컸으며,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정난공신(靖難功臣)으로 서훈된 것을 비롯하여 세조 때 좌익공신(佐翼功臣), 예종 때 익대공신(翊戴功臣),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 등 잇달아 공신에 책록되었고, 대제학·병조판서·영의정을 역임하였으며, 당대의 대학자로서 저서를 많이 남겼다. 그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이름을 떨쳤고, 후손이 크게 번창하였다.

숙주의 아들대에서 봉례공파(奉禮公派:澍)·함길백파(咸吉伯派:)·황해백파(黃海伯派:澯)·고천군파(高川君派:瀞)·나헌공파(懶軒公派:浚)·강원백파(江原伯派:溥)·영성군파(靈城君派:泂)·호군공파(護軍公派:珌)로 분파되었다. 8형제 중 넷째 정은 성종 때 좌리공신, 다섯째 준은 중종반정의 공신, 맏이 주의 아들 신종호(申從濩)는 과거가 있은 이후 처음으로 진사시·문과·중시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이름을 떨쳤다.

그의 아들 신항(申沆)은 성종의 부마, 아우 신잠(申潛)은 시(詩)·서(書)·화(畵)의 3절(絶)로 불리었다. 신항의 손자 신의(申儀)는 중종의 부마, 종증손인 경식(景植)은 인조반정의 공신이다. 둘째 신면의 아들 신용개(申用漑)는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영광(靈光)으로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재기용되어 대제학·우의정·좌의정을 지냈다.

그의 현손 신응구(申應榘)는 인조반정 후 춘천부사(春川府使)를 지냈고, 신응구의 손자 신익상(申翼相)은 갑술환국으로 소론이 집권한 뒤 공조판서·우의정을 역임하였다. 일곱째 형의 아들 신광한(申光漢)은 을사사화 때 소윤(少尹)에 속하여 대윤(大尹)일파 제거에 공을 세워 영성부원군(靈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양관대제학에 좌찬성을 지내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신광한의 종증손인 관찰사 신용(申涌)과 대사헌 신식(申湜) 형제는 문한으로 유명하다. 신숙주의 아우 신말주(申末舟)는 형과는 달리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으며, 그의 손자 신공제(申公濟)는 중종 때 이조판서를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공제의 4대손인 신경준(申景濬)은 고증학적 방법으로 지리학을 개척한 실학자이며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를 저술하여 한글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업적을 남겼다.

이밖에 의금부도사·승지를 지내고 시·서·화의 3절로 불린 신광수(申光洙)가 있다. 근세인물로는 풍속화가로 유명한 신윤복(申潤福)과 사학자 신채호(申采浩), 그리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신홍식(申洪植) 등이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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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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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고령신씨(高靈申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