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호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충북 청원(淸原) 사람이다. 청원군 가덕면(加德面)이 고향이고 1919년 당시 경성중앙학교(京城中央學校) 재학생으로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귀향하였다. 3월 9일 청주농업학교 기숙사(淸州農業學校 寄宿舍)로 가서 학생들에게 서울의 독립만세운동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청주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벌이자고 제의하여 찬성을 얻어 독립선언문과 경고문 등을 제작하고 인쇄하는 등 거사준비를 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이해 4월 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항고했으나 5월 5일 대구복심법원과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註·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74面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52·253面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101·1102面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87面 [1]

관련기사 Related Entries

본 기사 Current Entry 관계 Relation 관련 기사 Related Entry
신영호 hasBirthplace 청주 신영호 고가
hasFather 신정식
isPartOf 고령신씨
WasInvolvedIn 독립운동
wasBornIn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wasBornIn 1902
DiedIn 1947


주석 References

  1.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