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로 본 90년대 문화,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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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대유현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6년 12월 13일 (화) 22:4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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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소개

오프닝

지금은 비록 세상의 눈치를 보는 가련한 월급쟁이지만 이래 뵈도 우린 대한민국 최초의 신 인류 X세대였고,

폭풍 잔소리를 쏟아내는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지만 한 땐 오빠들에 목숨 걸었던 피 끓는 청춘이었으며,

인류역사상 유일하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 모두를 경험한 축복 받은 세대였다.


70년대 음악에 80년대 영화에 촌스럽다는 비웃음을 던졌던 나를 반성한다.

그 음악들이 영화들이 그저 음악과 영화가 아닌 당신들의 청춘이었고 시절이었음을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2013년 12월 28일 이제 나흘 뒤 우린 마흔이 된다.

대한민국 모든 마흔살 청춘들에게 그리고 90년대를 지나 쉽지 않은시절들을 버텨 오늘까지 잘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이 말을 바친다.


우리 참 멋진 시절을 살아냈음을 빛나는 청춘에 반짝였음을 미련한 사랑에 뜨거웠음을 기억하느냐고

그렇게 우리 왕년에 잘 나갔었노라고 그러니 어쩜 힘겨울지도 모를 또 다른 시절을 촌스럽도록 뜨겁게 살아내 보자고 말이다.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


-<응답하라 1994> 마지막회 내레이션 中-

기획의도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대표적으로 대두되는 '복고' 콘텐츠 중 하나이다.

다양한 변동이 있었던 1990년대가 배경인 이 드라마는 그 당시, 그들이 소비하던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 세대들에게는 향수와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불러오게 하고, 추억을 그리게 한다.

또한, 그 세대뿐만 아니라, 현재의 20대들에게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게 해주고, 간접적인 공감을 불러온다.

이것은 <응답하라 1994>가 현대에 들어서 재해석된, 과거의 내용을 담고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응답하라 1994>에 드러난 그 시절의 문화를 드라마와 연결지어, 시각화하여, 보여주려고 한다.

이것은 '멋진 시절 빛나는 청춘'이었던 당신과, '현재의 빛나는 청춘'인 당신의 아들•딸에게 "90년대"라는 타임머신이 되어줄 것이다!

응답하라 1994

소개

드라마 응답하라 1994CJ E&M의 소속인 tvN에서 방영되었던 작품이다.

농구대잔치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했던, X세대의 이야기를 연세대학교 학생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촬영장소

사진 장소명 설명
Yd.jpg 응답하라 1994 속 연세대학교 등장인물들의 출신대학교로, 이곳에서 무선호출기의 음성메세지 확인을 위해, 공중전화에서 줄을 서는 씬들이 있다. 연세대학교를 선정한 것은 그 당시 X세대들의 주 무대가 신촌이었기 때문이다.
0302.jpg 응답하라 1994 속 하이델베르크 하우스 해태의 동아리 선배로 나오는 신촌 잔다르크 김인서와 썸이 발생하는 장소의 배경이다. 응답하라 1994뿐만 아니라 tvN드라마인 두번째 스무살호구의 사랑에도 촬영 장소로 쓰였다.
Meeting.jpg 응답하라 1994 속 카페 코인 등장인물들이 미팅을 하던 장소로 쓰였다. 이 곳은 CJ E&M[1]이 배급한 두근두근 내 인생의 배경으로도 등장한다
Wonsamtang.jpg 응답하라 1994 속 원삼탕 등장인물들이 목욕을 하는 공간으로 나왔다. 실제 드라마에서는 원잠탕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졌다.

한국의 1990년대 문화

농구

1990년대는 한국 농구의 전성기였다. 그 당시 MBC농구대잔치로 인해서, 농구스타들은 현재의 아이돌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연세대학교 농구부서장훈, 이상민, 우지원고려대학교 농구부현주엽, 전희철 등이 인기였다. 그 이유는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대학농구 라이벌구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서장훈과 현주엽은 같은 휘문고등학교의 동창이었다.

이러한 농구의 성행으로 인해, 농구를 주제로 한 콘텐츠 역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만화 잡지에 연재되었던 슬램덩크와 드라마 마지막승부가 바로 이러한 작품이었다. 이중에서도 MBC[2]에서 방영되었던 마지막승부는 신인이었던 심은하를 단번에 스타덤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로 인해, 심은하는 MBC[3]의 드라마 M의 주인공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MC를 맡게 되기도 했었다.

또한, 농구의 성행은 패션의 변화도 일으켜왔다. 단지 스포츠 의복 중 하나일 뿐이었던 농구복과 운동화인 농구화 에어조던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당시 농구에 대한 큰 관심으로 인해 이러한 패션들은 유행을 일으켰다.

가요

이 당시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로 구성된 그룹이었는데, 1990년대의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와 힙합이라는 새로운 장르 음악 등 색다른 시도를 많이 했던 대중음악인으로 알려져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에서 데뷔해서, 가요톱텐[4]등의 많은 음악프로그램에서 1위를 쓸었었다. 그러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는데, 그 이유는 창작의 고통이었다. 은퇴 이후, 서태지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NELL[5]과 같은 뮤지션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또한, 양현석은 YG엔터테인먼트[6]를 설립하여, 서태지와 같이 뮤지션을 키우는 데에 힘썼다. 재미있는 점은 1990년대 같이 활동했던, 연세대학교[7] 출신의 박진영[8]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라이벌구도를 띤다는 점이다. 서태지는 지금까지도 문화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는데, 그 만큼 서태지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을 볼 수 있다.

MBC의 대학가요제[9]로 인해, 대학가요가 성행하였다.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등의 많은 대학교들이 대학가요제에 참가했다. 그 중 전람회의 소속 김동률서동욱은 연세대학교이면서, 농구스타 서장훈과 현주엽과 같은 휘문고등학교 출신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많은 인기를 끌었던 김동률은 신해철의 프로그램에 나와서, 서태지의 발라드곡인 영원을 칭찬하기도 했다.[10] 또한, 무한궤도로 참가해서 인기를 끌었던 신해철은 서태지의 6촌 친척관계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인해, 이때 팬덤문화가 대두되었다. 이로 인해, 여러 콘서트들이 성행하였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11]에서 콘서트[12]를 열기도 했다. 또한,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로 유명세를 탔던 이문세[13], 파격적인 솔로 댄스가수였던 박진영 역시 이 곳에서 공연을 열었다.

대중가요스타들을 담았던 다양한 잡지 역시 가요문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그 중 1993년 잡지 하이틴 9월호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 다루기도 하였다.

기술

X세대들을 나누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시대에는 기술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무선호출기의 음성메세지를 듣기 위해서, 공중전화에 줄을 서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공중전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시티폰이 나오기도 하였다.[14] 또한,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CD 플레이어 등으로 대중문화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PC통신을 처음으로 이용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1990년대의 기술과 관련한 소품에 대해 궁금하다면,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있으므로 가보기를 추천한다.[15]


각주

  1. 영화 오늘의 연애도 CJ E&M이 배급하였다.
  2. MBC는 현재, 무한도전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한도전에서는 무한도전 가요제 등의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다.
  3. 홍석천은 MBC 공채 출신이다.
  4. IMF 외환위기로 인해 폐지된 프로그램이다.
  5. NELL은 이후, 울림엔터테인먼트로 소속을 옮긴다. 울림엔터테인먼트의 초창기에는 에픽하이도 소속되어있었다.
  6. 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던 에픽하이가 이 곳으로 소속사를 옮겼다. 특히, 부부사이인 타블로(해피투게더 시즌3 야간매점의 62대에 올라가있다.)와 강혜정이 같은 소속사에 소속되어있다.
  7. 인디밴드 10cm의 권정열과 가을방학도 연세대학교 출신이다.
  8. 해피투게더 시즌3 야간매점의 3대로 올라가 있다.
  9. 브로콜리 너마저윤덕원이 참가하였으나, 예선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10. 이에 비해, 현대로 와서는 서태지의 컴백이 노브레인(라이브클럽 드럭에서 주로 공연했다. 드럭은 1995년부터 인디를 중심으로 라이브클럽문화를 성행하게 한 주역이기도 하다.)에 의해 비판받기도 하였다. 노브레인은 서태지 안티공연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며 직접적 비판을 가했다.
  11. 1990년대, 농구대잔치도 이 곳에서 열렸었다.
  12. 2000년대에는 인디밴드 10cm가 공연을 열기도 했다.
  13. 2005년경, 이문세는 서태지를 비난하는 말을 프로그램에서 해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14. 시티폰의 사업자였던 나래이동통신은 IMF 외환위기로 인해, 결국 없어지고 만다.
  15.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서울 1000주년 타임캡슐을 재현하여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타임캡슐 안에는 그 당시의 다양한 소품들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