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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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병자호란 이후 한양의 방어를 강화하려는 한 방편으로 강화도의 방비책을 강구하여 내성·외성·진보·돈대를 축조하였다. 덕진진은 강화도의 12진보(鎭堡) 중 하나로 12진보 중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으며, 통진반도에서 쑥 나온 덕포진과 더불어 강화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의 포대였다. 덕진진은 본래 수영(水營)에 속하여 첨사(僉使)를 두고 있었는데, 현종 7년(1666)에 강화유수 서필원(徐必遠)이 임금에게 청하여 첨사를 통진(通津)의 덕포로 옮기고 이곳에는 별장(別將)을 두었다. 숙종 3년(1677)에는 유수 허질(許秩)이 임금에게 청하여 만호(萬戶)로 승격시키고 진호를 덕진이라 하였다. 에는 군관 6명, 사병 100명, 돈군 12명으로 총 118명이며 진선 2척이 배치되었다.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손돌목의 용두돈대(龍頭墩臺), 덕진돈대(德津墩臺)와 고종 11년(1874)에 만든 덕진포대(德津砲臺)와 남장포대(南章砲臺)를 관할 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순무천총 양헌수(梁憲洙)의 부대가 밤의 어둠을 타서 이 을 거쳐 삼랑성(三郞城)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파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J.로저스 중장이 이끄는 미국 아시아함대와 이곳에서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으나 초지진(草芝鎭)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이때 성첩(城堞)과 문루(門樓) 등 몸을 숨겨서 싸울 수 있도록 쌓았던 것은 모두 파괴되어 문루지만 남게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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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성곽보수편, 덕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