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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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와 활동

재위 455∼475. 이름은 '여경(餘慶)'또는 ‘경사(慶司)’, 또는 ‘근개루왕’이라고도 한다. 비유왕(毗有王)의 맏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했고, 제22대왕인 문주왕(文周王)의 아버지이다. 개로왕은 장수왕에 의해 한강유역을 빼앗겨 이에 대비하지 않은 무능한 왕으로 비춰지기도 하나, 실제로는 475년 이전부터 고구려의 침공에 대비했고 469년에는 고구려의 남부지역을 선제공격하였다. 또한 이전부터 이어져 온 나제동맹을 공고히 하기도 하였으며, 472년에는 북위(北魏)에 구원병 파견을 요청하는 국서를 보내 북위가 고구려를 견제해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개로왕은 왕권강화를 위한 과정 속에서 구귀족 세력과의 마찰과 무리한 토목공사로 인한 민심이반으로 인해 고구려의 침입에 변변한 대응을 하지 못한채 7일만이 도성방어선이 무너지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개로왕은 475년 북성을 버리고 탈출하는 중, 고구려군에게 사로잡혀 아단성 [1] 아래로 끌려와 참수당하였다.

관련 항목

이문서 관계 관련 내용
개로왕 관련 인물 장수왕 도림 비유왕 문주왕
개로왕 관련 성(城) 아차산성 풍납토성 몽촌토성
개로왕 관련 국가 백제 고구려 신라

관계도

이문서 관계 관련 내용
개로왕 ~와 적대관계이다 장수왕
개로왕 ~와 적대관계이다 도림
개로왕 ~의 아들이다 비유왕
개로왕 ~의 아버이지다 문주왕
개로왕 ~와 관련있다 아차산성
개로왕 ~와 관련있다 풍납토성
개로왕 ~와 관련있다 몽촌토성
개로왕 ~의 왕이다 백제
개로왕 ~와 적대관계이다 고구려
개로왕 ~와 우호관계이다 신라


클래스

  • 인물

기여

출처

  1. 현재 서울시 광진구 아차산성 혹은 단양 온달 산성 등으로 비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