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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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안 좋아지신 다음에는 딱 한 잔을 드시는데, 뭘 드시느냐면 ‘마주앙’이라는 화이트 와인..."[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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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과 마주앙
- 황순원은 체증을 다스리기 위해 소학교 시절부터 술(소주)를 마셨다.
- 황순원은 열두어 살 때부터 마신 소주를 일흔이 넘도록 마셨고, 그 뒤로 몸이 쇠하여서도 타계할 때까지 매일 '마주앙'을 마셨다.
황순원 관련 인터뷰
서덕순 선생님이 기분이 좀 좋았지. 선생님은 항상 술을 한 잔 딱 드시는데, 한 잔이 예전에는 잘 드셨지만 이제, 선생님이 두 번인가? 병원에 급하게 가신 적이 있었어요. 이제 몸이 안 좋아지신 다음에는. 그런 다음에는 한 잔 딱 드시는데 뭘 드시느냐면 ‘마주앙’이라는 화이트 와인이 있어요. 지금도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마주앙’이라는 브랜드…. 국산인데 화이트 와인인데 그거를 이렇게 왜 그 영화 같은 데 보면 사람들이 뒷주머니에 찔러넣고서 꺼내 먹는 납작하게 생긴
-철로 되어 있는 통…. 응 그지 그렇게 생긴 병에다가 가득, 이렇게 마주앙을 담아서 오시는데, 그러면 우리가 맥주 마시는 조그만 잔 있지 큰 잔 말고. 유리잔. 거기에 부으면 한잔이 딱 됐었어요. 그러면 그거를 식사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천천히 다 드셨어요. 그리고 집에서도 꼭 그러신다고 해요. 저녁때 항상 그만큼 반주를 딱 하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기분이 좀 좋아지시면 노래도 부르기도 하셨어요.
황순원 관련 시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시 원문[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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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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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텍스트[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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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이 부친인 소설가 고 황순원 선생을 회상한 시를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했다. 소설만을 위한 올곧은 삶으로 우리 현대소설 최고의 미학과 정도를 꽃피운 부친이 타계하자 아들 동규 시인은 후배 문인들과 함께 백령도로 떠났다. '풍장' 등으로 시의 한 경지를 열어보인 중진시인으로서 부친의 문학을 위한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새벽 3시 잠 속에서 기어나와 집을 뜬/아 아직 인간의 매듭 보이지 않던 곳 백령도/매듭 하나 새로 지으려고/부두에서 배에 오를 때부터/이불솜처럼 끼는 안개, /가을비 한 차례 뿌려도/시계 30미터의 안개, /하늘과 바다가 사라진다. /이 속에서 예수와 부처가 만나면/모르는 사이에 서로 구면이 되리라.“ 최고의 소설가와 시인 부자(父子). 가장 훌륭한 문인 집안이어서 많은 신문·방송·잡지사들의 글과 인터뷰 청탁을 굳이 마다하고 가장 외따르고 청정한 섬으로 가 얻어온 시다. 위의 시 '추억의 힘줄은 불수의근(不隨意筋)이니' 의 일부와 같이 그는 '예수와 부처의 만남' 의 경지에 이른 부친의 문학에 자신의 시를 함께 하려 한다. 때때로의 사회적 명성이나 이득에 저버릴 수 없는 인간 본원적인 신성(神性)과 그 그리움을 향해 나가야만 하는 문학. "부동산은 없고/아버님이 유산으로 주신 동산(動産)상자 한 달만에 풀어 보니/마주앙 백포도주 5병, /호주산 적포도주 1병, /안동소주 4백㏄ 1병, /짐빔(Jim Beam)반 병, /통 좁은 가을꽃 무늬 셔츠 하나, /잿빛 양말 4켤레, /그리고 웃으시는 사진 한 장. " (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중에서) '소나기' '카인의 후예' 등 빼어난 소설과 명리(名利)를 탐하지 않은 삶으로 우리 사회의 사표(師表)가 된 고 황순원 선생은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남을 작품만 남기고 갔다. 술 몇병만 남기고 간 청정한 삶의 문학혼이 아들·후배를 통해 다시 시로 솟아오른 것이다. |
황순원 관련 글
기사 텍스트[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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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님아, 내 사랑아, /우리의 앞에는 다시 동반해야 할 험한 길이 놓여 있나니/돌아오라 옛사랑으로,가면을 버리고 힘의 상징인 옛사랑으로 돌아오라." 원로작가 황순원씨는 18세때 발표한 '옛사랑' 이란 시에서 사랑에게 가면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했다. 황씨의 '사랑' 이 될 수 있는 경희대 국문과 출신 제자 문인들은 20년 가까이 황씨를 모시고 모임을 갖고 있다. 이번에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소설집을 내고 모임을 가졌다. <박덕규> 지난6일 오후7시 즈음 모인 사람 수를 헤아리니, 이미 스무명. 황순원선생을 모시고 저녁 자리를 함께 가진 20년 가까운 세월 중에서는 최다 인파 (?).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제자 (작가 전상국, 조해일) 도 있고, 멀리 광주 (광주대교수 신덕룡) 나 청주 (청주전문대교수 한원균)에서 온 제자도 있다. 물론 선생을 뵈러 온 것이지만, 이렇게 많은 제자가 일시에 모인 이유는 좀 각별하다. 며칠 전 선생의 작품을 앞세워 작가.평론가 제자 18인이 공동으로 한 권의 책을 출간한 것이 여러모로 선생에 대한 옛 감회를 불러 온 까닭이다. 그 책은 '소설이 있는 문학 강의실' 이라는 부제가 붙은 '옛사랑으로 돌아오라' (유니스타刊). 이 책이 선생께도 많은 추억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사람이 많으면 말수를 줄이는 선생의 성품과 최근의 기력으로 보면 이날은 말씀이 결코 적지 않았다. 더구나 선생의 요청으로 카자흐스탄과의 월드컵 예선전 축구 실황 방송을 켜둔 상태. 댁에서부터 사모님이 챙겨오시는 마주앙으로 맥주잔을 채우시고 책 출간을 자축하는 뜻의 건배를 제의하시는 선생의 모습에는 옛 기백이 여전했고, 책의 표제가 된 당신의 시 '옛사랑' 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출처를 캐물으실 때는 그 눈빛이 영롱하기까지 했다. "이번에 시 '옛사랑' 을 보고 선생님 시를 정독하게 되었다" 고 고백하는 제자 (문학평론가 강웅식) 의 말에 모처럼 파안대소하셨다. 몇 년전부터 사모님이 동석하면서 두 분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에 귀기울여 왔던 우리들은 "선생님께서는 옛사랑이나 첫사랑이나 지금 사랑이나 모두 한분 뿐이시겠지요" (작가 김용성등) 라는 말로 화기로움을 돋구기도 했다.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일부 제자들과 함께 책을 낸 일로 혹시 겪게 될지 모를 불편함을 염려하는 우리들에게 거듭 "책 내느라 애썼어요" 라고 격려하는 말에 염치없이 우쭐해하는 나이 먹은 제자들도 있는 눈치. 그러는 사이 사모님은 새 일일극을 집필중인 제자 (방송작가 박진숙) 와 몇 마디 나누시고…. 단골음식인 '보신탕' 에 대한 선생의 감식평도 당연한 순서. 골을 성공시키는 한국축구에도 박수를 아끼시지 않는 내외분. "12월 만남 때는 내가 산다!" 며 마지막 건배를 힘있게 외치는 선생의 즐거운 안색. 그런 모습은 3개월에 한번 보는 일이지만, 이 책에 직접 참여한 제자이건 그렇지 않은 제자이건 간에, 우리의 일상 틈틈에서 조용히 우리를 관찰하는 자상하고도 엄격한 눈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