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예사
red
개요
곡예사는 황순원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1]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당시 황순원은 부산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편에서 거주하며 직장인 학교에 가기 위해 보수동과 자갈치시장을 오갔다. 「두꺼비」 등의 작품과 함께 피난살이 도중 거처 문제에서 비롯된 설움과 고생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당대 황순원 일가가 겪은 어려움과 작가의 울분, 뜨거운 가족 사랑을 명료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품 특징
곡예사는 한국전쟁 중 대구[2]에서 남의 집 생활을 마감한 작가의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서는 작가의 가족이 세 부류로 흩어져 살게 된 피난 체험을 다루고 있다.[3] 가족이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식구들은 일상처럼 가족 상봉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함께 걷는 아이들이 낮 동안 미군들에게 불법으로 행상한 일을 흉내 내며 떠벌리다 노래를 다투어 부른다. 식구들의 이런 서글픈 ‘곡예’를 이끄는 가장인 작가는 자신의 신세를 ‘곡예단의 단장’ 이라 빗대며 독자를 향해 짐짓 ‘내일의 곡예’를 기대하라고 눙친다. 곡예사는 전쟁을 당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수 없게 된 피난민 가장의 비참한 형편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통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단편집으로 출간된 『곡예사』의 '책 끝에'에서 황순원은 이 작품을 쓰면서 피난민 가족을 이끄는 무력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반감, 증오심, 분노'로 드러낸 바 있다. [4]
수록 · 발표지면
≪문예≫ (1951) [5]
단편집 『곡예사』 (1952. 명세당) [6]
『황순원 전집 2』 (1992.04.15. 문학과 지성사)
각주
- ↑ 첫 피난지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밝혔다. 송하춘. (1995). 황순원 특집:<거리의 부사>에서 <신들의 주사위>까지 작가를 찾아서:문을 열고자 두드리는 사람에게 왜 노크하냐고 묻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작가세계, 7(1), 52-66.
- ↑ 대구와 부산은 피난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황순원은 전쟁 중에도 해당 공간에서 교사생활과 창작생활을 이어나갔다.
- ↑ 독특한 상황적 배경으로 인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통틀어 '피난민 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 박덕규. (2011). 6ㆍ25 피난 공간의 문화적 의미. 비평문학, (39), 106-132.
- ↑ 1949년부터 1954년까지 간행된 문예지이다.
- ↑ 친분이 있던 김환기 화백의 장정으로 칠백 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직접 스스로의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 끝에’가 붙어있는 유일한 단행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