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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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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현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24일 (수) 22:21 판 (곡예사와 국제시장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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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 피난 시절 화재사건이 있었다.
  • 한국전쟁 직후 임시수도 부산에서 상업이 가장 활성화 된 곳이었다.
  • 국제시장에서 피난민들이 장사와 품팔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곡예사와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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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벌써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내는 남은 옷가지를 갖고 국제시장으로 나가고, 큰애 둘은 서면에 가서 미군부대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오만 원도 아내의 장삿돈에서 떼낸 돈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이었다. 나는 학교 나가는 날은 학교로 해서, 그렇지 않은 날은 아침에 직접 남포동 부모가 계신 곳에 가 하루를 보낸다. 이곳 피난민들은 대개 담배장사를 하느라고 애들만 남기고 모두 나간다. 부모도 그 축의 하나였다. 나는 여기서 서면 간 내 큰애들이 돌아오길 기다려 국제시장엘 들러 애들 엄마를 만나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한 일과였다. 그날도 그랬다.

곡예사와 국제시장 관련 글

「문학을 통한 원도심권의 스토리텔링 발굴」[1]
(전략)문학을 통해서 ‘피난시절 원도심권의 역사문화 탐방로’와 같은 문화콘텐츠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학의 장소와 그 의미들을 탐색해야 한다. 탐방로는 일정한 장소를 네트워크로 연결시켜야 하기에 문학에 등장하는 장소를 발굴하고, 그 의미들을 찾아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임시수도 당시 부산에서 가장 인구 밀집도가 높고, 사람들의 유동성이 컸던 곳은 광복동, 남포동, 부민동 등 현재 중구․서구의 중심지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지역은 임시수도 정부 청사를 비롯해서 정부의 관공서들이 입주해있었으며,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 등 상업지역이 발달해서 피난민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장소였다. 또한 부둣가는 바다를 통해서 사람과 물류가 왕래할 수 있는 장소이며, 부둣가 근처에 있는 술집들은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쌓였던 시름과 회포를 푸는 곳이었다.

(중략)

황순원의 「곡예사」에서는 주인공 나(황순원)와 그 가족들이 등장한다. 가족들이 함께 피난을 왔다는 점에서 「밀다원 시대」의 이중구와 같이 가족과의 생이별한 슬픔은 없지만 잠잘 곳을 구하지 못하는 생활의 고통을 겪는다(황순원, 2012). 곡예사의 주무대는 임시 거처인 토성동 경남중학교 뒤쪽의 변호사 집이다. 방을 비우라는 변호사 가족들의 고압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갈 데 없는 피난민 신세인 황순원 가족들은 애걸하면서 하루 하루를 버틴다. 황순원의 아내는 남은 옷가지를 팔러 국제시장에 장사를 나가며, 첫째 아이인 동아와 둘째 아이인 남아는 서면까지 가서 미군들을 상대로 껌과 담배를 파는 장사를 한다. 몰락하는 자신의 신세가 애처로웠지만 부민동 개천둑에서 막내인 철부지 진아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황순원은 자신의 가족들이 임시수도 부산을 무대로 재주를 부리는 곡예사임을 떠올린다. 이처럼 곡예사에 등장하는 장소는 변호사집, 부둣가, 국제시장, 동아극장 앞거리, 부민동 개천둑으로서 밀다원 시대의 이중구가 활동한 권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략)

첫째는 피난시절 삶과 생활의 현장이다. 이 주제에서는 임시수도 부산에서 삶의 역경을 노동과 장사로 이겨나갔던 장소들이 배치될 수 있다. 완월동 제면소,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 대청동 뒷골목 등이다. (후략)


각주

  1. 부산광역시 스토리텔링 원형정보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