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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 년이라 달갑게 | + |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 |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 |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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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 |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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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 |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 | ||
− | + |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 | |
− |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 + |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fo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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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 | |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ref>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ref> |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ref>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ref> | ||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ref>불교 용어, 번뇌</ref>未 |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ref>불교 용어, 번뇌</ref>未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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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 |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 | ||
− | --->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 + | --->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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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 수락산사( | + | <font color="blue">'''3-1. 수락산사(水落山寺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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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 |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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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 |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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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 | ||
+ |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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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ref>곳곳, 온 나라 땅, 우주</ref>及塵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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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 | ||
+ |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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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 | ||
+ |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fo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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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 | ||
<font color="blue">'''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 | <font color="blue">'''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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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 | + | <font color="blue">'''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ref>산삼</ref>戲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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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천 년 지난 뒤에 | + |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 |
− | + |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 | |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 |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 | ||
− | 머리에 | + |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fo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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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당이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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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0일 (수) 10:55 판
목차
Contents
연구 목적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그가 후대에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개성있고 매력적인 글씨체 덕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산 사람이 아니다. 그의 제자가 추사의 사후에 <담연재시고>를 편찬하며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글씨만 잘 쓰는 자가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자였다.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사체'의 유명세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시와 문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는 여러 장소를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았다.
그는 평소 답사를 좋아하였다. 이는 그가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한 것,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를 찾아가 풀섶에서 비편을 주운 것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천성이 산천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그는, 여행만큼이나 벗과의 교류를 좋아했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러 갔고,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면 보러 와달라고 애걸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편지로라도 벗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다양한 공간에서의 다양한 벗들과의 교류 속에, 김정희의 학문과 시와 글씨와 인생은 무르익었다.
본 연구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언급되는 서울지역(북둔, 석경루,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을 대상으로 한다.
각 공간의 속성정보와, 그 공간에 거주하거나 방문했던 인물들을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연구대상인 공간 또는 인물이 언급되는 『완당전집』내 다른 텍스트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각 텍스트의 의의, 텍스트에 담긴 김정희의 생각과 가치관을 찾아내고 해석해보고자 한다.
연구 대상
1-1. 석경루에서 서옹의 운에 차하다[石瓊樓 次犀翁韻]
골짝 속엔 청사의 말고삐라면 / 谷裏靑絲騎
산중에는 죽피(竹皮)의 관이로구려 / 山中紫荀巾
꽃을 보니 모두 다 예전의 나무 / 看花皆昔樹
잔을 잡으니 역시 묵은 사람만 / 把酒亦陳人
변해가는 연기구름 아깝다지만 / 久惜煙雲變
새로운 광경도 늘 그리웠다네 / 每懷光景新
싫도록 유련해라 이 비 좋으니 / 流連今雨好
길거리엔 붉은 티끌 많아 / 街陌多紅塵
1-2. 석경루에서 여러 제군과 운을 나누다[石瓊樓與諸公分韻]
십 년이라 달갑게 계수의 무리되니 / 十載甘爲靑桂群
돌도 말을 아는 듯 새도 글을 능히 하네 / 石如解語鳥能文
정자엔 옛 친구들 모여 지금 친구 아니라면 / 亭還舊雨[1]非今雨
처마엔 아침 구름 잔 구름과 교대하네 / 簷放朝雲遞宿雲
평범한 구학에 나를 두어도 마땅한데 / 邱壑[2]尋常容置我
화정이라 반 분을 그대와 함께 하네 / 華亭一半許同君
헝클어진 짚신 버선은 본래 일이 많으니 / 紛紛鞵襪元多事
지폐산 천태산도 여기에 다 있구나 / 地肺天胎此十分
1-3.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
이 집(방)에 들어오면 항상 비가 오는 것 같으니 / 入室常疑雨
번뇌없는 고요함은 잔잔하게 퍼지는 물소리 같다네 / 無煩[3]繪水聲
맑은 숲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고 / 晴林朝合爽
구석진 골짜기에는 밤에도 빛이 나네 / 陰壑夜生明
정중하게 명맥을 이어온 명산이여 / 鄭重名山[4]業
가볍게 나부끼는 그 풍경은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 飄然[5]不世情
서늘한 솔바람이 뼛속으로 스며드니 / 松風涼到骨
시 한 수 지을 마음은 맑기만 하네 / 詩夢百般淸
완당전집에는 김정희가 황산 김유근, 동리 김경연과 어울린 흔적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완당이 젊은 시절 어울렸던 벗들이다.
---> 의의/해석 : 유배당하고, 병들었던 김정희의 말년 작품과는 달리, 완당의 젊은시절 황산, 동리와 어울리며 쓴 시를 보면 비교적 밝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큰 고난 없이 시, 그림, 학문 연구 등에 열중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황산 동리와 더불어 석경루에서 자다[與黃山東籬 宿石瓊樓]에서 그러한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다.
1-4. 중흥사에서 황산시에 차함[重興寺次黃山]
...
십년 동안 항상 그대와 함께 하였으니 / 十年筇屐每同君 옷 위에는 늘어진 구름이 몇 점 배어 있네 / 衣上留殘幾朶雲[6] 과연 우리들은 모두 번뇌가 다 없어졌는가 / 吾輩果無諸漏[7]未
...
북한산 중흥사에 놀러 갔다가 김유근(황산)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
---> 김유근은 안동 김씨의 핵심인사로, 세도정치의 상징인 김조순의 아들이다. 김유근과 김정희는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위 시에서는 10년동안이나 김유근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그들의 두터운 우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
2-1. 북둔에서 도화를 구경하다[北屯看桃花]
성 동쪽 매우 가까운 곳에 / 城東尺五地
온 숲 가득 일제히 꽃[8]이 피었네 / 花發萬林齊
불승도 곧 깨우칠 것 같고, / 佛乘[9]如將悟
선원도 또렷하여 흐릿하지 않으니/ 仙源[10]了不迷
서로 교차한 시내에는 푸른 이끼가 모여있고, / 乳苔叉磵合
격산의 검은 눈썹은 나직하구나/ 眉黛[11]鬲山[12]低[13]
마을의 조촐한 띠집은 그림같으니 / 罨畵[14]村茅潔
장차 땅을 빌려 깃들 것이다 / 行當[15]借地棲
성안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는 북둔의 복숭아꽃이 만개하니 그 정경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여 부처가 되는 길도 당장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선원처럼 뚜렷하여 그곳을 찾느라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다고 하고 있다.
---> 의의/해석 : 성북동의 복숭아꽃을 구경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성북동 풍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풀에 일제히 꽃이 핀 모습과 파란 이끼, 격산의 검은 눈썹과 같이 다양한 색채어를 사용해서 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2-2.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 구호하다[北屯賞花 出郭口號]
여러 집 산곽에 아지랑이 갓 걷히니 / 數家山郭翠微開
눈부시게 타올라라 시내 낀 붉은 노을 / 炙眼蒸紅夾磵栽
낯에 부는 번풍이 술 기운을 올리는 듯 / 吹面番風[16]如被酒
비가 멎어 갠 하늘 기운이 음력 4월에 가깝구나/ 嫩晴[17]天氣近恢台[18]
김정희가 북둔에서 꽃을 구경하고 성을 벗어나면서 지은 것이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성북동의 저녁을 표현하고 있다.
3-1. 수락산사(水落山寺1)
세상을 도는 바람의 신은 뭇 미혹의 길잡이인데 / 轉世風輪[19]導衆迷
표말을 앞에 두고 동쪽 서쪽 긴가민가 / 却將表所眩東西
말 잊은 지 오래라 사방 산이 고요한데 / 久忘言說千山寂
누군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을 보내니 새 한 마리가 운다 / 誰遣機緣[20]一鳥啼
열관과 정계는 밝게 보면 평등하니 / 平等熱關仍淨界[21]
황벽나무와 조계산를 거침없이 오간다네 / 朅來黃蘗與曹溪
땅과 산, 물과 불이 마치 선에서 이치를 깨닫는듯 / 土山水火如拈解[22]
이 일은 그대에게 양보하네 / 且讓輸君此着低
3-2. 수락산 절(水落山寺2)
나는 저 해와 달을 쳐다볼 때 / 我見日與月
그 모습이 늘 새롭다고 느낀다네 / 光景覺常新
만물의 형상은 제각각으로 존재하니 / 萬象各自在
온 우주의 것들이 그러하다네 / 刹刹[23]及塵塵
누가 알까 태고의 땅에 / 誰知玄廓處[24]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 한 것을 / 此雪同此人
허공에서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 같고 / 虛籟錯爲雨
봄의 화려한 환영은 이룰 수 없네 / 幻華[25]不成春
손안에 백억 보물은 / 手中百億寶
이웃에서 빌린 거라면 소용이 없네 / 曾非乞之隣
---> 수락산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
3-2. 승가사에서 동리와 함께 해붕화상을 만나다[僧伽寺 與東籬會海鵬和尙]
그늘진 골짜기에는 비가 내리기 일쑨데 / 陰洞尋常雨
아스라히 보이는 저 봉우리 한송이 푸르구나/ 危峯一朶靑
솔바람은 불어서 탑 쓸어주고 / 松風吹掃榻[26]
북두칠성 물 길어 병에 담아 돌아가네 / 星斗汲歸甁
돌은 본래 모습을 입증하는데 / 石證本來面
새는 글자 없는 경전을 더럽히는구나 / 鳥參無字經[27]
이끼 낀 비석은 속절없이 긁히고 깎여서 떨어져가니 / 苔趺[28]空剝落
규전을 누가 다시 새길 건지. / 虯篆[29]復誰銘
1816년 7월, 김정희의 나이 31에 친구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찾은 날을 그린 시이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들러 당시에 고승인 해봉화상을 만난다. 해붕과 인연을 맺은 두 편의 글 중 하나이다.
3-3. 해붕 대사의 영에 제하다[題海鵬大師影]
海鵬之空兮。非五蘊皆空。之空卽諸法空相。空卽是色之空。人或謂之空宗非也。不在於宗。又或謂眞空似然矣。吾又恐眞之累其空。又非鵬之空也。鵬之空卽鵬之空。
...
尙記鵬眼細而點。瞳碧射人。雖火滅灰寒。瞳碧尙存。見此三十年後落筆。呵呵大笑。歷歷如三角道峰之間。
해붕이 말하는 공(空)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의 공이 아니라 공즉시색(空則是色)의 공이다. 혹자는 그를 공(空)의 종(宗)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혹자는 또 진공(眞空)이라고 하니, 그럴듯하다. 그러나 진(眞)이 공(空)을 얽맨다면 그 또한 해붕의 공이 아니다. 해붕의 공은 곧 해붕의 공일 뿐이다.
...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눈이 가늘고 검어서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꿰뚫는 듯한 해붕의 모습이다. 그는 비록 재가 되었지만 푸른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보고서 껄껄 웃는 모습이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에서 뵐 때처럼 역력하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해서체로 쓴 글이다.
---> 의의/해석 : '공(空)'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임에도 그 서체와 문장력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4-1. 청계산 나무꾼이 영아(靈稏)를 얻었다기에 희작하다[淸溪山樵人得靈稏[30]戲作]
사천 년 지난 뒤에 늙은이의 도끼날이 / 四千年後老樵斤
장작을 패다 자연스럽게 옛 글을 분별했네 / 析木天然辨古文
신령한 풀 인형을 이따금 캐들고서 / 靈卉人形時斸得
머리에 소나무 잎 얹고 외로이 홀로 떠있는 구름을 내려다보네 / 擔頭五葉傲孤雲
완당이 과천으로 돌아온 뒤 인근 산인 청계산을 대상으로 쓴 시이다.
--->
4-2. 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
...
小棠東門之役。大肆力。收我大小墨字。盈笥不足。又僮肩頳而墳矣。粤一月。又理山屐[31]。從我淸溪山中。復借禪榻[32]。紙窓燈火。佛幌[33]甚適。
...
...
소당(김석준)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ㆍ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하나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껴 또 아이 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지팡이와 신발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
김정희가 김석준의 부탁으로 글씨를 쓴 것이 상자 하나 가득했다. 글씨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 김정희였으나 김석준을 위해서는 상자를 옮기는 종의 어깨가 부어오를 정도로 글을 많이 써 주었다. 한 달이 지나서 김석준이 청계산으로 따라왔을 때에도 글씨를 더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4-3.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
君之來如盈。君之去如虛。
...
去後消息。果復何如。看何等書。臨摹[34]何等法墨。與何等人相見。何等啜茗。何等燒香。何等評畫。又何等飮食。風雨凄然。山川緜邈。靑燈一穗。照人不寐於此間寤言何等。夢醒何等。何等思想。亦有及於靑冠山中。對榻聯枕臥。數鷄鳴時耶。
...
賤狀如君在時。毫無一寸長。草木殘年。去益顢干。種種醜態。人當吐之。雖如君嗜痂[35]恐難與之修飾之也。顧影亦笑。旬間再期。且須牢記。都留不儩。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
떠난 뒤 근황은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를 임모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 비바람이 으스스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하나의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때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산, 관악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치기도 하는가.
...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는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니, 남이 온갖 추태를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다. 아무리 그대 같은 깊은 애정이 아니라면 더불어 같이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안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애정을 담아 쓴 편지이다.
---> 의의/해석 : 문장 하나하나마다 김석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정희는 평소에 "책은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아꼈는데, 김석준에게는 자신의 귀중한 책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아끼는 벼루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희는 김석준의 시와 글씨 모두를 아주 극찬하였다. 완당전집 7권에 보면, 소당(김석준)의 글이 최고의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김석준의 부탁이라면 궤짝으로 글을 써 줄 정도로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김석준을 통해서 추사의 글을 구하기도 했다.
김정희가 스승이고, 김석준이 제자이긴 하지만 여러 텍스트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해보면, 김정희가 심적으로 김석준에게 의지하였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 마음놓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김정희는 유독 김석준을 많이 아꼈고, 명확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조건없는 사랑을 김석준에게 쏟을 수 있었기에 학문과 예술에 있어 더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김석준은 그 스스로도 훌륭한 시와 글씨를 많이 남겼지만,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로서 그로부터 많은 시와 글씨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그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1.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
冠嶽詩之第四句。一碧幾千年。極爲雄奇。人所易解。且或可能。至於第二句之巖松相鉤連。外看若順筆過去。一尋常接來者。此非胸中有五千卷。筆底具金剛杵。不可能。天然湊泊。雖作者亦不自知。何况凡識俗諦[36]。可能而可解也。古人妙處。專在此一境。所以古作者之異於今人也。
今汝非有眼圓境熟。能彀得此一境也。古人尙有以五千卷金剛杵。致之以人工。此則自然流出。暗合於古人。
관악산 시의 제4구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우수하고 기이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2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글로 자연스럽게 묘사된 것 같지만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이 들어 있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37]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지식과 속된 사람은 지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러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
지금 네가 안목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이 한 경지를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과 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적으로 이루는데(자기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 너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구나.
김정희의 제자인 단전이 관악산 시를 지어 보낸 것에 대해 그의 시권에 붙이는 글을 써준 것.
단전의 시구가 빼어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이를 칭찬했다.
---> 의의 : 이처럼 김정희는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시구에 대해서 피드백도 해 주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 가르치는 즐거움도 누렸다는 것이다. 또한 완당전집 5권에는 '가끔은 북쪽 벽에 기대고 앉아 스승의 예를 받기도 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라고 말했으니,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스승으로서의 삶 역시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
박현규.(2000). ≪동리우담≫의 편저자 문제. 대동한문학, 12(): 123-170
연구 방법
데이터 모델링
완당전집을 중심으로 석경루, 북둔, 수락산, 청계산, 관악산, 5개 장소를 분석할 것이다. 각 장소의 속성정보와 그 장소가 언급된 텍스트들을 연결하고, 그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확장하여 그 인물들의 속성정보, 그 인물들이 등장하는 완당전집 내 또 다른 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
데이터 샘플링
연구 데이터
(내용 서술)
연구 결과
(내용 서술)
참고 자료
(내용 서술)
주석
- ↑ '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씀. 옛 친구, 오랜 친구.
- ↑ 언덕과 골짜기라는 뜻으로 산수의 한적하고 청아한 정취, 자연에서 즐기는 삶, 은거 등을 의미하는 말
- ↑ 번뇌없는 고요함.
- ↑ 석경루가 있던 세검정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
- ↑ 가볍게 나부낌.
- ↑ 朶雲 자체가 '편지'라는 의미도 있다. 한자 한 자 한 자 그 자체로 늘어진 구름, 흰 구름 등으로 번역해야 할 지 편지로 번역해야할지 고민이다.
- ↑ 불교 용어, 번뇌
- ↑ 桃花
- ↑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부처의 교법, 부처가 되는 길
- ↑ 도교에서 신이 사는 곳(선산), 도원명이 묘사한 복숭아꽃 정원의 이상적인 모습
- ↑ 눈썹을 그리는 먹, 먹으로 그린 눈썹
- ↑ 서로 격절된 산
- ↑ 나직하다, 낮게 드리우다
- ↑ 화려한 채색 그림, 산수의 뛰어난 경치
- ↑ 마땅히, 장차
- ↑ 초봄부터 여름까지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
- ↑ 비가 멎고 차츰 개는 것
- ↑ 음력 4월
- ↑ 바람을 다스리는 신.
- ↑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
- ↑ 정(淨)하고 깨끗한 곳. 곧, 신불(神佛)을 모시는 곳.
- ↑ 선(禪)에서 이치를 깨달음
- ↑ 곳곳, 온 나라 땅, 우주
- ↑ 태고의 땅
- ↑ 화려한 환영
- ↑ 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으로 榻布(탑포)라고도 함
- ↑ 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 밖의 경전
- ↑ 이끼 낀 비석, 여기서는 진흥왕순수비를 말함
- ↑ 구불구불한 글자 모양, 전서체의 글씨
- ↑ 산삼
- ↑ 지팡이와 신발
- ↑ 참선(參禪)할 때에 앉는 의자.
- ↑ 불교 제단의 휘장
- ↑ 서화 모사의 한 방법
- ↑ 기호가 변태적이다, 취향이 괴벽스럽다. 이 글에서는 애정이 깊다고 해석해보았다.
- ↑ 속된 사람
- ↑ 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