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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 鳥數飛也, 學之不已, 如鳥數飛也.<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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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謝氏<ref>謝氏: 사량좌(謝良佐). 1050∼1103. 자(字)는 顯道, 이정(二程)의 문하에서 배웠다. 유초(游酢), 여대림(呂大臨), 양시(楊時)와 함께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일컬어졌으며, 상채학파(上蔡學派)의 비조이며 상채선생(上蔡先生)으로 불렸다.</ref>曰, "時習者<small>'''는'''</small> 無時而不習<small>'''이니'''</small> 坐如尸<small>'''는'''</small> 坐時習也<small>'''요'''</small> 立如齊<small>'''는'''</small> 立時習也<small>'''니라'''</small>."<ref>坐如尸, 立如齊: 『禮記』「曲禮」</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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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氏<ref>尹氏: 윤순? 윤돈?(尹焞). 1071-1142년. 북송 하남(河南) 사람. 자는 언명(彦明) 또는 덕충(德充)이고, 호는 화정(和靖)이며, 윤원(尹源)의 손자다. 젊었을 때 정이(程頤)를 사사(師事)했다. 원우(元祐) 4년(1089) 거인(擧人)이 되어 응거(應擧)했는데, 시제(試題)가 원우(元祐)의 제신(諸臣)들을 주륙(誅戮)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돌아와 다시는 응시하지 않았다. 흠종(欽宗) 정강(靖康) 초에 종사도(種師道)가 천거하여 경사(京師)에 와 화정처사(和靖處士)란 호를 하사받았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초에 숭정전설서(崇政殿說書)와 예부시랑(禮部侍郞) 겸 시강(侍講), 휘유각대제(徽猷閣待制) 등을 역임했다. 상서하여 금나라와의 화의를 극력 반대하다가 치사(致仕)를 요청했다. 학문적으로는 내성함양(內省涵養)을 중시하고 박람(博覽)을 추구하지 않았다. 저서에 『논어맹자해(論語孟子解)』와 『화정집(和靖集)』, 『문인문답(門人問答)』이 있다. -임종욱, 김해명(2010), 『중국역대인명사전』.</ref>曰, "學<small>'''은'''</small> 在己<small>'''하고'''</small> 知不知<small>'''는'''</small> 在人<small>'''하니'''</small> 何慍之有<small>'''리오'''</small>."<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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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程子曰, "樂<small>'''은'''</small> 由說而後得<small>'''이니'''</small> 非樂<small>'''이면'''</small> 不足以語君子<small>'''니라'''</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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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8일 (화) 01:0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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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


一章


○學之爲言, 效也. 人性皆善, 而覺有先後,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 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
○習, 鳥數飛也, 學之不已, 如鳥數飛也.
○說, 喜意也, 旣學而又時時習之, 則所學者熟而中心喜說, 其進, 自不能已矣.
○程子曰, "習 重習也 時復思繹하여 浹洽於中이면 則說也니라." 又曰, "學者 將以行之也 時習之 則所學者在我이니라."
○謝氏[1]曰, "時習者 無時而不習이니 坐如尸 坐時習也 立如齊 立時習也니라."[2]

○朋 同類也 自遠方來近者可知니라
○程子曰, "以善及人하여 而信從者衆이라 可樂이니라." 又曰, "說 在心하고 主發散이니 在外니라."

○慍 含怒意. 君子 成德之名이라.
○尹氏[3]曰, "學 在己하고 知不知 在人하니 何慍之有리오."
○程子曰, "雖樂於及人이나 不見是而無悶이라야 乃所謂君子니라. 愚謂 及人而樂者 順而易하고, 不知而不慍者 逆而難이라. 故 惟成德者能之. 然이나 德之所以成 亦由學之正, 習之熟, 說之深而不已焉耳니라."
○程子曰, "樂 由說而後得이니 非樂이면 不足以語君子니라."

二章



「爲政」




주석, Footnote

  1. 謝氏: 사량좌(謝良佐). 1050∼1103. 자(字)는 顯道, 이정(二程)의 문하에서 배웠다. 유초(游酢), 여대림(呂大臨), 양시(楊時)와 함께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일컬어졌으며, 상채학파(上蔡學派)의 비조이며 상채선생(上蔡先生)으로 불렸다.
  2. 坐如尸, 立如齊: 『禮記』「曲禮」
  3. 尹氏: 윤순? 윤돈?(尹焞). 1071-1142년. 북송 하남(河南) 사람. 자는 언명(彦明) 또는 덕충(德充)이고, 호는 화정(和靖)이며, 윤원(尹源)의 손자다. 젊었을 때 정이(程頤)를 사사(師事)했다. 원우(元祐) 4년(1089) 거인(擧人)이 되어 응거(應擧)했는데, 시제(試題)가 원우(元祐)의 제신(諸臣)들을 주륙(誅戮)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돌아와 다시는 응시하지 않았다. 흠종(欽宗) 정강(靖康) 초에 종사도(種師道)가 천거하여 경사(京師)에 와 화정처사(和靖處士)란 호를 하사받았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초에 숭정전설서(崇政殿說書)와 예부시랑(禮部侍郞) 겸 시강(侍講), 휘유각대제(徽猷閣待制) 등을 역임했다. 상서하여 금나라와의 화의를 극력 반대하다가 치사(致仕)를 요청했다. 학문적으로는 내성함양(內省涵養)을 중시하고 박람(博覽)을 추구하지 않았다. 저서에 『논어맹자해(論語孟子解)』와 『화정집(和靖集)』, 『문인문답(門人問答)』이 있다. -임종욱, 김해명(2010), 『중국역대인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