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수오재기(守吾齋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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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ckquote| | + | {{Blockquote|수오재(守吾齋)라는 것은 큰 형님이 그 집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에 의심하며 말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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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물이 나와 굳게 맺어져 있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는 나[吾]보다 절실한 것이 없으니, 비록 지키지 않은들 어디로 갈 것인가. 이상한 이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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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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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장기(長鬐)로 귀양온 이후 홀로 지내면서 정밀하게 생각해 보았더니, 하루는 갑자기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음과 같이 스스로 말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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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체로 천하의 만물이란 모두 지킬 것이 없고, 오직 나[吾]만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내 밭을 지고 도망갈 자가 있는가. 밭은 지킬 것이 없다. 내 집을 지고 달아날 자가 있는가. 집은 지킬 것이 없다. 나의 정원의 꽃나무ㆍ과실나무 등 여러 나무들을 뽑아갈 자가 있는가. 그 뿌리는 땅에 깊이 박혔다. 나의 책을 훔쳐 없애버릴 자가 있는가. 성현(聖賢)의 경전(經傳)이 세상에 퍼져 물과 불처럼 흔한데 누가 능히 없앨 수 있겠는가. 나의 옷과 식량을 도둑질하여 나를 군색하게 하겠는가. 천하의 실이 모두 내가 입을 옷이며, 천하의 곡식은 모두 내가 먹을 양식이다. 도둑이 비록 훔쳐간다 하더라도 한두 개에 불과할 것이니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없앨 수 있겠는가. 그런즉 천하의 만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유독 이른바 나[吾]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여 드나듦에 일정한 법칙이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으나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도하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화가 겁을 주어도 떠나가며, 심금을 울리는 고운 음악 소리만 들어도 떠나가고, 새까만 눈썹에 흰 이빨을 한 미인의 요염한 모습만 보아도 떠나간다. 그런데, 한 번 가면 돌아올 줄을 몰라 붙잡아 만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나[吾] 같은 것이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매고 빗장과 자물쇠로 잠가서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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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은 자이다. 어렸을 때, 과거(科擧)가 좋게 보여서 과거에 빠져 들어간 것이 10년이었다. 마침내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아가 검은 사모[烏帽]에 비단 도포를 입고 미친 듯이 대낮에 큰길을 뛰어다녔는데, 이와 같이 12년을 하였다. 또 처지가 바뀌어 한강을 건너고 조령을 넘어, 친척과 분묘(墳墓)를 버리고 곧바로 아득한 바닷가의 대나무 숲에 달려와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에는 나[吾]도 땀이 흐르고 두려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나의 발뒤꿈치를 따라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나[吾]에게 말하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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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네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에게 홀려서 끌려온 것인가? 아니면 해신(海神)이 부른 것인가? 자네의 가정과 고향이 모두 초천(苕川)에 있는데, 어찌 그 본고장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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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했다. 끝끝내 나[吾]라는 것은 멍한 채로 움직이지 않으며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얼굴빛을 보니 마치 얽매인 곳이 있어서 돌아가고자 하나 돌아가지 못하는 듯하였다. 마침내 붙잡아서 함께 이곳에 머물렀다. 이때 나의 둘째 형님 좌랑공(佐郞公)께서도 그의 나[吾]를 잃고 나를 쫓아 남해(南海) 지방으로 왔는데, 역시 나[吾]를 붙잡아서 함께 그곳에 머물렀다. 유독 나의 큰 형님만이 그의 나[吾]를 잃지 않고 편안히 단정하게 수오재(守吾齋)에 앉아 계시니, 어찌 본디부터 지키는 것이 있어 나[吾]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큰형님께서 그의 거실에 이름붙인 까닭일 것이다. 큰 형님께서는 항상 말하시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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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께서 나에게 태현(太玄)이라고 자(字)를 지어 주셔서, 나는 오로지 나의 태현을 지키려고 하여, 이것으로써 나의 거실에 이름을 붙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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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하시지만, 이것은 핑계대는 말씀이다. 맹자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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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킴은 무엇이 큰가? 몸을 지키는 것이 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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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하였으니, 그 말씀이 진실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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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디어 내 스스로 말한 것을 써서 큰 형님께 보이고 수오재(守吾齋)의 기(記)로 삼는다. | ||
|출처= 정약용, 『다산시문집』(1982). | |출처= 정약용, 『다산시문집』(198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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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6일 (월) 19:4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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