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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방가나의꿈.png| | + | 황순원의 문학 활동은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신문에 발표하는 데서 출발한다. 첫 시집 <방가(放歌)>(1934), 제2시집 『골동품(骨董品)』이 그 결실이다. 1929년, 오산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입해 졸업한 후 와세다 제2고등원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 연구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한다. 황순원은 이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그동안 쓴 시들을 모아 <방가>를 펴냈다. 이 책은 단체의 이름으로 펴낸, 그의 첫 시집이다. |
+ | 이 시집에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양주동이 쓴 서문과 시 27편이 실렸다. 두 작품집의 시적 정서는 초기 단편에 그대로 이어져서, 신변적 소재를 중심으로 하는 주정적 세계를 보여준다.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다닐 무렵에는 이해랑·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단체인 학생예술좌(學生藝術座)를 만들기도 했으나 희곡작품을 남기지는 않았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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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순원 에세이 ‘말과 삶과 자유’ 속의 시집 <방가>'''=== | ||
+ | * 황순원 에세이 ‘말과 삶과 자유’ 발췌문 | ||
+ | “나는 판을 달리할 적마다 작품을 손봐 오는 편이지만, 해방 전 신문 잡지에 발표된 많은 시의 거의 다를 이번 전집에서도 빼버렸고, 이미 출간된 시집 <방가>(放歌)에서도 27 편 중 12편이나 빼버렸다. 무엇보다도 쓴 사람 자신의 마음에 너무 들지 않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읽힌다는 건 용납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빼버리는 데 조그만치도 미련은 없었다. 이렇게 내가 버린 작품들을 이후에 어느 호사가가 있어 발굴이라는 명목으로든 뭐로든 끄집어내지 말기를 바란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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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방가> 해제'''=== | ||
+ | [[파일:방가나의꿈.png|220픽셀|섬네일|오른쪽|시집<방가>의 시 '나의 꿈']] | ||
+ | * 황순원의 첫 시집. | ||
+ | *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하여 동경에서 간행 | ||
+ | * 대표 수록시 : 「나의 꿈」, 「우리의 가슴은 위대하나니」, 「젊은이여」 등 27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전체적으로 민족적 자긍심을 향한 젊은이들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의 시가 주축을 이루고있다. 저자는 自序에서 '이 詩集은 나의 세상을 향한 첫 부르지즘이다. 나는 이 부르지즘을 보담더 크게,힘차게, 또한 깁게 울리게 할 앞날을 갖어야 하겠다'라고 쓰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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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매에 등장한 시집 <방가>'''=== | ||
+ | 서울옥션블루의 '책이 된 예술, 예술이 된 책'을 주제로 한 경매에서 한국근현대문학 주요 작가 시집 및 소설집 약 600여권이 미술품 경매에 나왔다. 그 중에는 황순원의 시집 <방가>역시 경매에 붙여졌었다. 황순원의 <방가>는 170만-400만 원의 경매 추정가로 새 주인을 찾았다.<ref>[http://www.economytalk.kr 경매 '책이 된 예술, 예술이 된 책]</ref><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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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
2020년 6월 23일 (화) 04:44 판
시집 <방가>의 특징
황순원의 문학 활동은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신문에 발표하는 데서 출발한다. 첫 시집 <방가(放歌)>(1934), 제2시집 『골동품(骨董品)』이 그 결실이다. 1929년, 오산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입해 졸업한 후 와세다 제2고등원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 연구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한다. 황순원은 이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그동안 쓴 시들을 모아 <방가>를 펴냈다. 이 책은 단체의 이름으로 펴낸, 그의 첫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양주동이 쓴 서문과 시 27편이 실렸다. 두 작품집의 시적 정서는 초기 단편에 그대로 이어져서, 신변적 소재를 중심으로 하는 주정적 세계를 보여준다.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다닐 무렵에는 이해랑·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단체인 학생예술좌(學生藝術座)를 만들기도 했으나 희곡작품을 남기지는 않았다.
황순원 에세이 ‘말과 삶과 자유’ 속의 시집 <방가>
- 황순원 에세이 ‘말과 삶과 자유’ 발췌문
“나는 판을 달리할 적마다 작품을 손봐 오는 편이지만, 해방 전 신문 잡지에 발표된 많은 시의 거의 다를 이번 전집에서도 빼버렸고, 이미 출간된 시집 <방가>(放歌)에서도 27 편 중 12편이나 빼버렸다. 무엇보다도 쓴 사람 자신의 마음에 너무 들지 않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읽힌다는 건 용납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빼버리는 데 조그만치도 미련은 없었다. 이렇게 내가 버린 작품들을 이후에 어느 호사가가 있어 발굴이라는 명목으로든 뭐로든 끄집어내지 말기를 바란다.”
시집 <방가> 해제
- 황순원의 첫 시집.
-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하여 동경에서 간행
- 대표 수록시 : 「나의 꿈」, 「우리의 가슴은 위대하나니」, 「젊은이여」 등 27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전체적으로 민족적 자긍심을 향한 젊은이들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의 시가 주축을 이루고있다. 저자는 自序에서 '이 詩集은 나의 세상을 향한 첫 부르지즘이다. 나는 이 부르지즘을 보담더 크게,힘차게, 또한 깁게 울리게 할 앞날을 갖어야 하겠다'라고 쓰고 있다.
경매에 등장한 시집 <방가>
서울옥션블루의 '책이 된 예술, 예술이 된 책'을 주제로 한 경매에서 한국근현대문학 주요 작가 시집 및 소설집 약 600여권이 미술품 경매에 나왔다. 그 중에는 황순원의 시집 <방가>역시 경매에 붙여졌었다. 황순원의 <방가>는 170만-400만 원의 경매 추정가로 새 주인을 찾았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