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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만찬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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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만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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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ffeac1;" | ''<b>"처음에는 냉혈적이던 그들이 시시각각 녹아나서 떠날 때는 여심에 도취되는 등 매우 재미를 보고 갔다."</b>''<ref>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 조호연, 「[여적]워커힐의 북한 손님」, 경향신문, 2018.02.2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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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ffeac1;" | ''<b>"처음에는 냉혈적이던 그들이 시시각각 녹아나서 떠날 때는 여심에 도취되는 등 매우 재미를 보고 갔다."</b>''<ref>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 조호연, 「[여적]워커힐의 북한 손님」, 경향신문, 2018.02.27. <smal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2272033005</smal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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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적십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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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ttps://www.uniedu.go.kr/uniedu/home/brd/bbsatcl/nsrel/view.do?id=16240&mid=SM00000535&limit=10&eqViewYn=true&page=8 남북적십자회담]</b>==
:*남북적십자회담은 1000만 남북 이산가족들의 인간적 고통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재결합을 주선해 주기 위하여 남·북적십자사 간에 열린 회담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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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1932 남북적십자회담]은 1000만 남북 이산가족들의 인간적 고통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재결합을 주선해 주기 위하여 남·북적십자사 간에 열린 회담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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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ffeac1;" | ''<b>"북한 적십자 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밤 워커힐에서 우리 측 이범석 수석대표가 베푼 만찬회에 참석, 국악과 민속예술에서부터 인기가수의 노래와 무용 등 다채로운 무대를 보고 경탄했습니다."</b>''<ref>"대한뉴스 제 897호-제 2차 남북 적십자 회담", ''KTV 대한늬우스'', 2016.11.22. https://www.youtube.com/embed/Hm-Z1RSKeBE?rel=0&start=173&end=21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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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background-color:#ffeac1;" | ''<b>"북한 적십자 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밤 워커힐에서 우리 측 이범석 수석대표가 베푼 만찬회에 참석, 국악과 민속예술에서부터 인기가수의 노래와 무용 등 다채로운 무대를 보고 경탄했습니다."</b>''<ref>"대한뉴스 제 897호-제 2차 남북 적십자 회담", ''KTV 대한늬우스'', 2016.11.22. <small>https://www.youtube.com/embed/Hm-Z1RSKeBE?rel=0&start=173&end=217</smal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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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의 적십자 대표단이 왔을 때도 양상이 비슷했다. 북의 대표단을 워커힐호텔로 데려가 무희들이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캉캉춤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고고클럽에 데려가기도 했다. 남쪽의 ‘자유’를 맛보여주기 위해서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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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적십자 대표단이 왔을 때도 양상이 비슷했다. '''북의 대표단을 워커힐호텔로 데려가 무희들이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캉캉춤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고고클럽에 데려가기도 했다. 남쪽의 ‘자유’를 맛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당시 남측이 북쪽에 불어넣으려고 한 ‘자유’는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었다. 남쪽 인사들은 이처럼 다분히 속물적인 자유의 분위기를 북에 보이려 했고, 북쪽 사람들이 이를 맛보면 이념적인 세뇌상태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본성과 감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이는 남북대화의 쟁점이었던 인도주의와 통일(정치)논쟁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남쪽에서 ‘인간적’이라는 의미는 종종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ref>홍석률, 『분단의 히스테리』, 창비, (2012), 265-266.</ref>
당시 남측이 북쪽에 불어넣으려고 한 ‘자유’는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었다. 남쪽 인사들은 이처럼 다분히 속물적인 자유의 분위기를 북에 보이려 했고, 북쪽 사람들이 이를 맛보면 이념적인 세뇌상태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본성과 감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이는 남북대화의 쟁점이었던 인도주의와 통일(정치)논쟁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남쪽에서 ‘인간적’이라는 의미는 종종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ref>홍석률, 『분단의 히스테리』, 창비, (2012), 265-26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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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워커힐 호텔에서 보여준 '무희들이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캉캉춤'이 바로 '''[[워커힐 하니비 쇼]](워커힐 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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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시기에 외화벌이의 일환으로 조선호텔을 리모델링하고 1969년에 '웨스틴 조선호텔'로 재출범하면서 지하에 외국인만을 상대로 한 '클럽 투모로우'를 오픈하였는데,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고고클럽'''이다.<ref>선성원, 「유신시절등장한 아이러니 고고클럽」, 다음 블로그, 2019.06.18. <small>http://blog.daum.net/huskysun46/55</small></ref> 그러나 고고클럽은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3%A0_%EB%8C%84%EC%84%9C 고고 댄서]와 함께 유신 시절을 대표하는 '타락의 온상'이 되었다.<ref>신종수, 「타락의 온상…「고고·클럽」」, 중앙일보, 1974.11.04. <small>https://news.joins.com/article/1390588</smal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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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남북 적십자회담 때 이곳을 방문한 북한 대표단이 '''화려한 시설과 쇼'''를 보고 '''퇴폐적인 자본주의 문화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는 얘기가 있다.<ref>송상근, 「[책갈피 속의 오늘]1962년 워커힐호텔 준공」, 동아닷컴, 2008.12.26. <small>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81226/8676324/1</smal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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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각주'''</small>==
 
==<small>'''각주'''</small>==
 
<references/>
 
<references/>
 
===기타 하이퍼링크 북마크===
 
*[https://news.joins.com/article/1330296 이범석 수석대표 연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2%94%EC%84%9D_(1925%EB%85%84) 이범석(인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193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남북적십자회담]
 
*[https://www.uniedu.go.kr/uniedu/home/brd/bbsatcl/nsrel/view.do?id=16240&mid=SM00000535&limit=10&eqViewYn=true&page=8 남북관계지식사전(2015)>남북적십자회담]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3373&pageFlag=&sitePage=1-2-1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남북적십자회담]
 
*[https://orunkim.tistory.com/?page=217 페리스코프]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81226/8676324/1 동아닷컴 비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2272033005 워커힐의 북한손님 경향신문]
 

2020년 5월 19일 (화) 23:30 기준 최신판

〈워커힐과 박정희〉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


"처음에는 냉혈적이던 그들이 시시각각 녹아나서 떠날 때는 여심에 도취되는 등 매우 재미를 보고 갔다."[1]

  •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은 1972년 9월 12일부터 16일까지 총 4박 5일 동안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만찬회는 1972년 9월 13일 밤 워커힐호텔에서 주최되었다.
  •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만찬회주최한 사람은 당시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였던 이범석이다.
  • 북한 적십자측 대표단 일행은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만찬회에서 워커힐 하니비 쇼관람했다.

...여기에서 도출된 연결 고리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워커힐호텔──(주최)──▶워커힐 하니비 쇼◀──(관람)──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만찬회◀──(주최)──이범석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만찬회의 포함 범위는...


박정희 재임기간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남북적십자회담
예비회담 본회담
1차 2차 3차 4차 5차 6차 7차 8차 9차 10차 1차 2차 3차 4차 5차 6차 7차
11차 12차 13차 14차 15차 16차 17차 18차 19차 20차
21차 22차 23차 24차 25차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장소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사진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 사진
판문점 통일로 조선호텔
창덕궁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
(現 국립민속박물관)
워커힐 호텔 현충사 청와대 영빈관


남북적십자회담

  • 남북적십자회담은 1000만 남북 이산가족들의 인간적 고통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재결합을 주선해 주기 위하여 남·북적십자사 간에 열린 회담이다.
분류:
정치 사건 현대 남북회담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만찬회


"북한 적십자 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밤 워커힐에서 우리 측 이범석 수석대표가 베푼 만찬회에 참석, 국악과 민속예술에서부터 인기가수의 노래와 무용 등 다채로운 무대를 보고 경탄했습니다."[2]


▲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만찬회 영상
  • 북의 적십자 대표단이 왔을 때도 양상이 비슷했다. 북의 대표단을 워커힐호텔로 데려가 무희들이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캉캉춤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고고클럽에 데려가기도 했다. 남쪽의 ‘자유’를 맛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당시 남측이 북쪽에 불어넣으려고 한 ‘자유’는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었다. 남쪽 인사들은 이처럼 다분히 속물적인 자유의 분위기를 북에 보이려 했고, 북쪽 사람들이 이를 맛보면 이념적인 세뇌상태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본성과 감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이는 남북대화의 쟁점이었던 인도주의와 통일(정치)논쟁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남쪽에서 ‘인간적’이라는 의미는 종종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3]
    • 이때 워커힐 호텔에서 보여준 '무희들이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캉캉춤'이 바로 워커힐 하니비 쇼(워커힐 쇼)이다.
    • 박정희 정권 시기에 외화벌이의 일환으로 조선호텔을 리모델링하고 1969년에 '웨스틴 조선호텔'로 재출범하면서 지하에 외국인만을 상대로 한 '클럽 투모로우'를 오픈하였는데,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고고클럽이다.[4] 그러나 고고클럽은 고고 댄서와 함께 유신 시절을 대표하는 '타락의 온상'이 되었다.[5]
  • 1970년대의 남북 적십자회담 때 이곳을 방문한 북한 대표단이 화려한 시설과 쇼를 보고 퇴폐적인 자본주의 문화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는 얘기가 있다.[6]


각주

  1.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 조호연, 「[여적]워커힐의 북한 손님」, 경향신문, 2018.02.2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2272033005
  2. "대한뉴스 제 897호-제 2차 남북 적십자 회담", KTV 대한늬우스, 2016.11.22. https://www.youtube.com/embed/Hm-Z1RSKeBE?rel=0&start=173&end=217
  3. 홍석률, 『분단의 히스테리』, 창비, (2012), 265-266.
  4. 선성원, 「유신시절등장한 아이러니 고고클럽」, 다음 블로그, 2019.06.18. http://blog.daum.net/huskysun46/55
  5. 신종수, 「타락의 온상…「고고·클럽」」, 중앙일보, 1974.11.04. https://news.joins.com/article/1390588
  6. 송상근, 「[책갈피 속의 오늘]1962년 워커힐호텔 준공」, 동아닷컴, 2008.12.26.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81226/86763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