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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김삿갓 소나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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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전자지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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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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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2009-04-03
 
|지정번호=2009-04-03
 
|지정일자=2009년 05월 14일
 
|지정일자=2009년 0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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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이야기'''===
{{나무이야기|안동시 북후면 신전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전 오른쪽 길가에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바로 김삿갓 소나무 안내판이다. 안내판에서 50m 정도 소로를 따라 들어가면 김삿갓 나무를 만날 수 있다. 김삿갓 소나무는 2009년 안동시에 의해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당시 수령은 약 400년, 높이는 10m, 나무 둘레는 3m로서 두 사람이 손을 맞잡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컸다고 한다. 거리를 두고 나무를 바라보면 수많은 가지들이 타원형을 그리며 서로 얽혀 늘어진 모습이 마치 삿갓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 아래로 발길을 옮기면, 하단의 뿌리쪽을 돌무덤이 덮어 감싸고 있어 대지를 꽉 움켜잡아 세찬 비바람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다. 이 나무에 김삿갓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마치 삿갓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나무의 외형도 한 몫을 하였지만, 그 전에 김삿갓이 이 나무 아래에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탓이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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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이야기|‘열매가 쥐똥같이 생겼다하여 쥐똥나무, 잎으로 떡을 싸는데 쓴다하여 떡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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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나무는 모양에 따라 이름이 붙기도 하고, 생김새나 색깔, 생태나 냄새에 따라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그 중 안동시에는 특이한 이름의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김삿갓 소나무이죠.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 마을 입구를 따라 들어서면 수많은 가지들이 서로 얽혀 늘어진 모습이 마치 삿갓을 쓰고 있는 것 같은 소나무가 보입니다. 이 나무에 김삿갓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마치 삿갓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나무의 외형도 한 몫을 하였지만, 그 전에 김삿갓이 이 나무 아래에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라고 불리는 김병연(金炳淵)은 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이다. 1811년 홍경래의 난 당시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했기 때문에 반역죄로 능지처사를 당하였고 집안이 멸문되었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김병하(金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그러나 김익순에 대한 문제는 본인에게만 묻고 가문을 폐문한다는 조정의 결정이 알려지면서 모친과 함께 황해도 곡산을 떠나 할머니가 계시는 광주를 거쳐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걸쳐 영월에 정착하게 된다. 양반가의 기풍을 갖춘 김병연의 어머니 함평 이씨는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가문의 내력에 대한 소상한 진상을 알지 못한채 학업에 열중한 김병연은 훗날 영월도호부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를 하였으나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집안내력에 대한 일들을 전해 듣고, 과문에서 자신이 비판한 김익순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에 충격을 받은 김병연은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이다. 그는 전국을 방랑하면서 곳곳에서 즉흥적으로 시를 지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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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이 전국을 돌아다니던 가운데 이곳 인근의 석탑사를 가다가 나무 아래 잠시 쉬었다가 간 뒤로 소나무의 모양이 삿갓처럼 변했다는 것이 김삿갓 소나무의 구전 전설이다. 영월에서 안동의 소산마을로 향하던 김삿갓은 학가산 자락에 저녁 노을이 질 무렵 소백산 높은 고개를 넘어 영주 부석사에 도착했을 것이다. 다시 내성천의 맑고 깨끗한 모래톱을 두 발로 밟으며 안동 땅 석탑골로 접어들었으리라. 그는 학가산 북쪽 연화봉 기슭에 자리 잡은 석탑사(石塔寺)의 방단형적석탑(方壇形積石塔) 또한 둘러보았을 것이다.이어 고개를 넘어 신전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가운데 오른편에 자리한 커다란 소나무 그루를 만났을 것이며, 마치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커다란 외형에 감탄사를 절로 터뜨렸을 것이리라. 김삿갓이 이 소나무 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며 쉬어간 뒤로 소나무의 모양이 삿갓처럼 변해서 ‘김삿갓’ 소나무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구전되는 김삿갓 소나무의 전설이다. 일설에 의하면, 김삿갓은 이 곳에서  서남쪽으로 아스라히 바라보이는 학가산 유선봉(遊仙峰) 위의 구름을 바라보며 ‘유산음(遊山吟)’ 시 수를 읊었다고 한다.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신뢰할만한 근거가 매우 부족하기는 하나, 소나무의 모양과 함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묘한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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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한평생을 돌아다닌 방랑시인으로 알려진 김삿갓. 그의 본래 이름은 김병연(金炳淵)으로, 호는 난고(蘭皐)입니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좋아했던 그는 장원급제를 조선 후기의 인재이기도 합니다. 김삿갓이 과거시험을 보러갔을 때, 글의 주제는 ‘홍경래의 난’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홍경래의 난은 조선 후기 최대의 민란이었고, 나라 전체를 뿌리째 흔든 사건이었죠. 이에 김삿갓은 반란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은 정가산과 무관임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포기하고 항복해 버린 김익순을 비교하였고, 김익순은 ‘백 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비겁자’라는 생각으로 글을 써내려나갔습니다. 그리고 글로 장원을 받은 것이죠. 하지만 장원급제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김삿갓의 어머니는 김익순이 바로 김삿갓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죠.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알게 된 김삿갓은 자신이 대역죄인의 자손이라는 것도, 할아버지를 욕보이며 장원급제를 것도 괴로운 사실이었을 겁니다. 이에 김삿갓은 자신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큰 삿갓을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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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상에 돌아다니는 블로그, 뉴스 등의 내용을 임의로 조합해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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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시작을 한 김삿갓은 수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그런 김삿갓이 전국을 돌아다니던 가운데 안동 인근의 석탑사를 가다가 나무 아래 잠시 쉬었다가 간 뒤로 소나무의 모양이 삿갓처럼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전설이 안동 김삿갓 나무 이름의 유래입니다. 영월에서 안동의 소산마을로 향하던 김삿갓은 학가산 자락에 저녁노을이 질 무렵 소백산 높은 고개를 넘어 영주 부석사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내성천을 지나, 석탑골로 접어 들어, 학가산 북쪽 연화봉 기슭에 자리 잡은 석탑사(石塔寺)의 방단형적석탑(方壇形積石塔) 또한 둘러보았을 것입니다. 이어 고개를 넘어 신전마을로 들어서는 가운데 오른편에 자리한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나 감탄사를 절로 터뜨렸을 김삿갓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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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가객 김삿갓은 바람처럼 이 땅의 산수를 넘나들며 백성들의 어렵고 힘든 삶을 보고, 백성의 벗이 되어 그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시를 썼습니다. 또 백성을 괴롭히는 양반들을 풍자하는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소나무의 모양과 함께 이러한 김삿갓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묘한 재미를 일으킬 것입니다. 마을의 수호신처럼 자리하고 있는 안동 김삿갓 소나무는 2009년 안동시가 지정한 보호수로, 당시 수령은 약 400년, 높이는 10m, 나무 둘레는 3m로서 두 사람이 손을 맞잡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컸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매해 정월마다 김삿갓 소나무를 신목으로 삼아 마을의 안녕과 가족들의 건강을 빌며 마을동제를 지냈다고도 합니다. 김삿갓의 시가 백성들을 위로한 것처럼, 김삿갓 소나무는 마을의 신목으로 자리해 마을의 평안을 살펴왔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자취가 스며든 안동의 김삿갓 소나무는 불의를 몰아내고, 백성들의 애환을 위로한 인간 김삿갓을 닮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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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8일 (수) 03:21 기준 최신판

기본정보

안동 김삿갓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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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동 김삿갓 소나무 전면(답사팀 촬영)
과명 소나무과 학명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 수종 소나무 나이 400살 높이 10m 둘레 3m
지정번호 2009-04-03 지정일자 2009년 05월 14일 유형 노목 품격명 시군나무 지목명 임야
관리기관 안동시청 소재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 202 위도 36.674159 경도 128.638974



이야기

Quote-left green.png ‘열매가 쥐똥같이 생겼다하여 쥐똥나무, 잎으로 떡을 싸는데 쓴다하여 떡갈나무…’

이렇듯 나무는 모양에 따라 이름이 붙기도 하고, 생김새나 색깔, 생태나 냄새에 따라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그 중 안동시에는 특이한 이름의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김삿갓 소나무이죠.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 마을 입구를 따라 들어서면 수많은 가지들이 서로 얽혀 늘어진 모습이 마치 삿갓을 쓰고 있는 것 같은 소나무가 보입니다. 이 나무에 김삿갓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마치 삿갓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나무의 외형도 한 몫을 하였지만, 그 전에 김삿갓이 이 나무 아래에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한평생을 돌아다닌 방랑시인으로 알려진 김삿갓. 그의 본래 이름은 김병연(金炳淵)으로, 호는 난고(蘭皐)입니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좋아했던 그는 장원급제를 한 조선 후기의 인재이기도 합니다. 김삿갓이 과거시험을 보러갔을 때, 글의 주제는 ‘홍경래의 난’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홍경래의 난은 조선 후기 최대의 민란이었고, 나라 전체를 뿌리째 흔든 사건이었죠. 이에 김삿갓은 반란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은 정가산과 무관임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포기하고 항복해 버린 김익순을 비교하였고, 김익순은 ‘백 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비겁자’라는 생각으로 글을 써내려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글로 장원을 받은 것이죠. 하지만 장원급제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김삿갓의 어머니는 김익순이 바로 김삿갓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죠.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알게 된 김삿갓은 자신이 대역죄인의 자손이라는 것도, 할아버지를 욕보이며 장원급제를 한 것도 괴로운 사실이었을 겁니다. 이에 김삿갓은 자신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큰 삿갓을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시작을 한 김삿갓은 수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그런 김삿갓이 전국을 돌아다니던 가운데 안동 인근의 석탑사를 가다가 나무 아래 잠시 쉬었다가 간 뒤로 소나무의 모양이 삿갓처럼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전설이 안동 김삿갓 나무 이름의 유래입니다. 영월에서 안동의 소산마을로 향하던 김삿갓은 학가산 자락에 저녁노을이 질 무렵 소백산 높은 고개를 넘어 영주 부석사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내성천을 지나, 석탑골로 접어 들어, 학가산 북쪽 연화봉 기슭에 자리 잡은 석탑사(石塔寺)의 방단형적석탑(方壇形積石塔) 또한 둘러보았을 것입니다. 이어 고개를 넘어 신전마을로 들어서는 가운데 오른편에 자리한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나 감탄사를 절로 터뜨렸을 김삿갓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풍류가객 김삿갓은 바람처럼 이 땅의 산수를 넘나들며 백성들의 어렵고 힘든 삶을 보고, 백성의 벗이 되어 그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시를 썼습니다. 또 백성을 괴롭히는 양반들을 풍자하는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소나무의 모양과 함께 이러한 김삿갓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묘한 재미를 일으킬 것입니다. 마을의 수호신처럼 자리하고 있는 안동 김삿갓 소나무는 2009년 안동시가 지정한 보호수로, 당시 수령은 약 400년, 높이는 10m, 나무 둘레는 3m로서 두 사람이 손을 맞잡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컸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매해 정월마다 김삿갓 소나무를 신목으로 삼아 마을의 안녕과 가족들의 건강을 빌며 마을동제를 지냈다고도 합니다. 김삿갓의 시가 백성들을 위로한 것처럼, 김삿갓 소나무는 마을의 신목으로 자리해 마을의 평안을 살펴왔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자취가 스며든 안동의 김삿갓 소나무는 불의를 몰아내고, 백성들의 애환을 위로한 인간 김삿갓을 닮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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