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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3일 (일) 00:11 판
十四日,在玉河館,是日晴,有姓名孫錦者謂臣曰:“若此夏日之長,難以經過,我甚憐之,”即魄臣以米一斗、菜一盤、鹽·醬·醋各一器,臣令程保往謝之,錦曰:“你等在陳之嘆,專是會同館官員不取票之過也,皇帝豈知若此乎?”
옥하관에 머물렀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손금(孫錦)이란 사람이 신에게, “이같이 긴긴 여름날은 지내기가 어려울 것이므로 매우 딱하게 생각합니다”라 하고는 즉시 쌀 1되, 채소 1쟁반, 소금, 장, 초 각기 1그릇씩을 보내 왔습니다.
신은 정보를 보내 사례했더니 손금이 말하기를,
“당신들이 진(陳) 땅에서 내뱉는 탄식 47은 오로지 회동관(會同館) 관원이 품신을 올리지 않은 잘못 때문입니다.
황제께서 어찌 이 같은 사실을 아시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14th Day. At Jade River House. This day was fair.
A man named Sun Chin said to me, “Long summer days like these are hard to pass; I am very sorry for you.” He presented to me one peck of rice, a plate of vegetables, and one container each of salt, soy sauce, and vinegar. I ordered Chong Po to go and thank him, and Sun Chin said, “The fact that you are short of rations is the fault of the officials of this Central Post Hotel. How can the Emperor know that matters are like th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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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論語》〈衛靈公)의 “在陳絶糧”에서 유래하는데 온갖 苦難 속에 처해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춘추시대의 陳은 현재 河南省 陳州를 수도로 하던 小國이었다. 衛國을 떠난 孔子는 黃河를 건너 동남쪽으로 향하여 山東의 小國인 曹나라로 가려 하였으나 曹나라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이에 西南으로 방향을 돌려 河南의 宋으로 간 뒤 다시 그 西南의 陳國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陳은 吳의 침략을 당하고 있던 때였던 만큼, 공자 일행은 이곳에서 식량이 떨어져 끼니를 잇기도 힘든 형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