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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2일 (토) 08:20 판
初四日, 澳入大洋中, 是日, 雨大風, 驚濤浪, 狱天鼓海, 帆席盡破, 舟以二槽高大,尤易傾撓,勢將覆壓,命肖厅寶操斧去之,高以福鏈草芭附之舟尾以黎講,當午雨稍寧,東風又大作, 載傾载浮, 聽其所之, 臀眼間已入西海. 稍工指東北, 望有島若一點彈丸於漂渺間, 曰: “彼疑乃黑山島也. 過此以往, 四無島嶼, 水天相接, 汗漫無涯之海.”人皆知攸措, 僵卧舟中.
臣令安義督軍人以取露治船等事. 有軍人高迴者作聲曰: “濟州海路甚險, 凡往來者, 皆待風累朔. 至如前敬差官, 在朝天館, 在水精寺, 通計凡三朔以候, 然後乃行. 今此行當風雨不定之時, 不占一日之候, 以至此極, 皆自取也.”
餘軍皆曰: “執已如此, 取露治船, 雖竭心力, 終亦必亡. 吾寧用力而死, 莫如安队以待死.” 皆掩耳不從命, 或歐之亦不起. 宋真殘劣之甚者, 被國而怒, 曰:“長壽哉! 此船也. 等至於破, 何不速破!”
程保曰: “濟州人心, 外凝毒, 預慢(民)[原]悍, 以死為輕, 故其言類如此.” 臣意亦以謂溺死已決矣, 尚蒙天助, 幸不至於溺, 必漂流無定, 以至死日, 無如之何, 又憤軍人怠惰,遂點檢同舟人,則從者程保、金重、李禎、孫孝子、崔(巨) 巨] 伊山、莫金、萬山及濟州牧使所定送鎮撫安義、記官李孝枝、總牌 許尚理、領船權山、稍工金高面、格軍金怪山·肯斤寶·金仇迴·玄山·金石貴·高以福·金朝迴·文迴·李孝台·姜有·夫命同·高內乙 同·高福·宋真·金都終·韓每山·鄭實、護送軍金粟·金真音山·高迴·金松·高保終·梁達海·朴終回·金得時·任山海、官奴權松·姜內·李山·吳山等,合自身凡四十三人,臣招安義問曰:“我一人,非官員例,從者至煩,甚為未便,濟州人乘紅者至三十五人,何也?”
安義曰:“我牧使所以盡心者,對以敬差官之禮,且運紅,必用聚力,然後可行,况海路复遠,如於蔚島等處,水賊盛行,護送不可不嚴也.”
臣曰:“過海時,當精擇運紅人及水路語習者,則數雖少可矣,今此同舟人,皆懈怠暴藍者,虛張名數,而無其實,使船漂流,致之死地,徒增痛哭耳.”
叫謂軍人等曰:“我奔初喪,情不可少留,人或有勸之行,為人子者,其可頃刻需“滯乎?汝等之同我見漂,實由於我,然勢亦使之然也.况好生惡死,人情所同,汝等豈無欲生之心哉?舟或破碎或沈覆則已矣,觀舟今堅緻,未易至破,若不遇石嶼,能修補刮水,幸或風定波恬,則雖流至他國,可以得生,今汝等亦有父母,有妻兒, 有昆季親戚,皆望汝生,畏其不壽,汝等則不念其情,不愛其身,徒以给我之心,率相解體,自歸死地,惑之甚者,
尚理等十餘人曰:“軍人皆頑鈍無識之徒,故其用心不通若此,然人各有心,我等當"竭力從事,艷而後已,”夜風雨不止,巨濤尤甚,激入舶髓,隨人隨取,量可二更,驚濤鼓蕩,襄駕篷屋. 丹半沈,衣服行李,盡見沾滿,凍寒砭骨,命在瞬息,臣握李植手,枕程保膝,金重、孝子傍臣左右,狼藉以待死,傍有一人結項將絕,李楨解其結, 則乃吳山也,巨伊山、莫金等,竭力汲水,水猶不减,臣以謂舟尚完固,則
p. 354 自上激射, 自隙漏入之水, 不汲則坐待沈沒, 汲之則底有生理, 勉强而起, 叫權松贊爆得火,卷首席以烘之,又叫斤寶、高福、高面等,親檢綽漏處,以補塞之,又解衣分給權山、高面、巨伊山、怪山、尚理等,以勸勉所事. 程保、金重、孝子等散衣服,分諸軍人,軍人若仇迴、文迴、都終、每山、玄山等爭感奮出死力,刮水殆盡,舟僅獲全,不移時,舟又入石嶼錯亂中,權山運船不知所向,尚理、仇迴等,執篙無所施,幸賴天風驅出,得免碎破.
큰 바다 가운데로 표류해 들어갔습니다.
이 날은 우박이 내리고 큰바람이 불었습니다.
놀란 파도와 무서운 물결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해면을 내리치니 돛이 모두 부서져 버렸습니다.
배는 높고 큰 돛대 2개 때문에 쉽게 기울어져 뒤집어질 기세였으므로 소근보(肖斤寶)53에게 도끼로 돛대를 제거하게 하고, 고이복(高以福)에게 거적을 읽어 선미(船尾)에 붙여 파도를 막게 하였습니다.
정오가 되어 비는 조금 그쳤으나 동풍이 또 크게 일어나 배는 기울어졌다 떠올랐다 하였으며, 그 가는대로 맡겨두었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서해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뱃사공이 동북쪽을 가리키기에 바라보니, 마치 한 점 탄환과 같은 섬이 아득한 곳에 있었습니다.
뱃사공이, “저것이 아마 흑산도(黑山島)[1][2][3][4]54일 것입니다.
이곳을 지나서 앞으로 간다면 사방에 섬이라고는 없고 물과 하늘이 서로 닿아 있는 끝없이 넓은 바다뿐입니다”라고 말하니, 사람들은 모두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배 안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신이 안의를 시켜 군인들에게 취로(取露)[5]하는 일, 배를 수리하는 일 등을 독려하도록 하였습니다.
군인 고회(高廻)란 자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제주는 바닷길이 매우 험난해서 왕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여러 달씩 순풍을 기다려! 전 경차관(敬差官) 같은 분으로 말하면 조천관(朝天節)에 있다가 수정사(水精寺)에 있다가 하며 모두 합쳐 석 달이나 기다린 뒤에야 길을 떠났거든, 지금 이 행차는 비바람이 고르지 않은 때 하루의 날씨도 살펴보지 않고 이러한 극한 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것은 모두 자초한 일이야!”라고 하였습니다.
나머지 군인들은 모두, “상황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취로를 하고 배를 수리하는 데 몸과 마음을 다하더라도 끝내는 반드시 죽고 말 것이야. 애를 쓰다가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편안히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편이 나아”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두 귀를 막고 명령에 따르지 않았으며, 혹은 때려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송진(宋眞)은 모자라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자라, 맞으면서 성내 말하기를,
“명도 길구나, 이 배는! 파선되기만을 기다리는데, 왜 빨리 파선되지 않는 거야! 어차피 부서지게 될 것이라면 왜 빨리 부서져 버리지 않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정보가 말하기를, “제주도 사람들은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독하며 고집스럽고 사나워, 죽음을 가벼이 여기므로 그들의 말투가 이와 같습니다 56 라고 하였습니다.
신도 또한 물에 빠져 죽을 것이 분명하지만, 혹시 하늘의 도움을 입어 다행히 물에 빠져 죽지 않더라도, 정처 없이 표류하다가 죽는 날에 이르게 될 것이니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군인들의 게으른 행동에 분개하다가 마침내 배에 같이 탄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종자(從者)인 정보(程保)·김중(金重)·이정(李)·손효자(孫孝子)·최거이산(崔巨伊山)·막금莫金)·만산(__山)과 제주목사가 보낸 진무(鎭撫) 안의(安義), 기관(記官) 이효지(李孝枝), 총패(總牌)[6]58 허상리(許尙理), 영선(領船)[7]59 권산(權山), 사공 김고면(金高面), 곁군 김괴산(金怪山)·소근보(肖近寶)·김구질회(金仇此廻)·현산(玄山)·김석귀(金石貴)·고이복(高以福)· 김조회(金朝廻)·문회(文廻)·이효태(李孝台)·강유(姜有)·부명동(夫命同)·고내을동(高內乙同)·고복(高福)·송진(宋眞)·김도종(金都終)·한매산(韓每山)·정실(鄭實), 호송군(護送軍)[8] 김속(金栗)·김진음산(金眞音山)·고회(高廻)·김송(金松)·고보종(高保終).양달해(梁達海)·박종회(朴終回)·김득시(金得時)·임산해(任山海), 관노(官奴) 권송(權松)·강내(內)·이산(李山)·오산(吳山) 등과 저까지 합해서 모두 43명이었습니다.
신이 안의를 불러 묻기를, “나는 한 상제(喪制)로서 관원의 격식에 따를 처지가 아닌데 종자(從者)가 너무 많아 마음이 몹시 편치 않다. 제주 사람으로서 배를 탄 사람이 35명이나 되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하니 안의가 말하기를, “우리 목사(牧使)께서 마음을 다한 것은 경차관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또 큰 배를 부리는 데는 반드시 많은 사람들의 힘을 써야만 항해가 가능합니다. 하물며 바닷길이 아득하게 멀 뿐더러 울도(蔚島)[9] 등지와 같은 곳은 해적이 많으니 호송을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말하기를, “바다를 건널 때는 배를 부리는 자와 바닷길을 잘 아는 자만 가려 뽑으면 비록 수가 적어도 괜찮다. 지금 이 배를 같이 탄 사람은 모두 게으르고 사나운 자들로서 인원수만 늘려놓았지 그 실속이 없다. 배가 표류되어 사지(死地)에 이르게 되면 통곡 소리만 더할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소리를 질러 군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초상(初喪)을 당하여 달려가는 몸이라 잠시도 머물러 있을 수 없는 형편인 데다 사람들 중에 떠나기를 권하는 이도 있었다. 자식 된 자로서 잠깐 동안이라도 지체할 수 있었겠는가? 너희들이 나와 함께 표류를 당한 것은 실로 나 때문이지만, 형세가 또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하물며 살고 싶고 죽기 싫은 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데 너희들도 어찌 살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배가 혹시 부서졌거나 뒤집어졌다면 끝장이지만 살펴보건대 지금 배는 단단하여 쉽사리 부서지지는 않겠다. 만약 돌섬에만 부딪히지 않는다면 수리해 가며 물을 퍼낼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바람이 가라앉고 파도가 잠잠해진다면 비록 표류해서 다른 나라에 이르더라도 살아날 수가 있다. 지금 너희들도 또한 부모와 처자가 있고 형제와 친척도 있어서, 모두가 너희가 살아있기를 바라고 일찍 죽을까 걱정할 것이다. 너희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 몸도 아끼지 않으며, 오직 나를 탓하는 마음으로 서로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스스로 죽을 곳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제 정신을 잃음이 심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상리 등 10여 인이 말하기를, “군인들은 모두 고루하고 우둔하며 무식한 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씀이 이와 같이 막혔으나, 사람마다 마음가짐이 다르니 저희는 마땅히 죽을 때까지 힘껏 일하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밤에도 바람과 비는 그치지 않고 큰 파도는 더욱 심하여 배 안으로 부딪쳐 들어왔으나 물이 들어오는 대로 퍼내었습니다. 밤 2경이 쯤 되니 성난 파도가 출렁대면서 봉옥(蓬屋)(거적으로 만든 집)) 위로 넘나들었습니다. 배는 반쯤 가라앉아 의복과 행장은 모두 물에 젖었습니다. 추위는 뼈를 깎아내는 듯하였고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습니다. 신은 이정의 손을 잡고 정보의 무릎을 베고 누웠습니다. 김중과 효자는 신의 양쪽에서 어지러이 쓰러져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한 사람이 목을 매어 숨이 끊어지려 할 때 이정이 그 목맨 것을 풀고 보니 바로 오산이었습니다.
거이산과 막금 등이 힘을 다하여 물을 퍼내었으나 물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신은 배가 아직 튼튼하므로, 위로 세차게 쏟아져 들어오는 물과 틈에서 새어드는 물을 퍼내지 않는다면 앉아서 배가 침몰되기를 기다리는 셈이겠지만, 물을 퍼낸다면 살아날 길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지로 일어나서 큰 소리로 권송을 불러 부싯돌을 쳐서 불을 지피고 짚자리를 말아 때게 하였습니다. 또 근보 · 고복·고면 등을 큰 소리로 불러 물이 새는 곳을 직접 찾아낸 다음 이를 막도록 하였습니다. 또 옷가지를 풀어 권산·고면 · 거이산 · 괴산 · 상리 등에게 나누어주며 맡은 일에 힘쓰도록 하였습니다. 정보 · 김중·손효자 등도 또한 여러 군인들에게 의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군인들 중에 구질회·문회 · 도종·매산 · 현산과 같은 사람은 감격하여 죽을힘을 다해 다투어 물을 거의 다 퍼내니 배가 겨우 무사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배가 또 돌섬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권산은 배를 움직이며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를 알지 못했고, 상리와 구질회 등은 상앗대를 잡고도 어찌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바람에 힘입어 내몰려 나와, 부서지는 것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 기후
- 지명
- 인물
- 갈등
- 의견
- 도덕
- 의연(리더십)
4th Day. Drifting into the Open Ocean. This day there were rain and hail. High winds roiled the sea. Terrible waves swelled into the sky and churned the ocean. The sails were completely ripped. The masts, being tall, were in danger of breaking and crushing the [superstructure] of the boat. I ordered San Kŭn-bo to take his axe and cut them down. Ko I-hok bound straw mats to the stern of the boat to ward off the waves. At noon, the rain abated somewhat, and a strong east wind rose again. We went heeling and pitching along, and I realized immediately that we had already entered the Western Sea. The helmsman pointed to the northeast. I saw there an island like a pellet of shot on the horizon. He said, “That may be Hủksan Island.” After we went past it, there was no island in any direction. Water and sky met in endless space. All the men, not knowing what to do, lay down prone in the boat. I commanded An ti to direct the soldiers to do such things as bail out the water and repair the boat. One soldier, Ko Hoe, shouted, “The Cheju sea lanes are very dangerous. Everyone who travels in them waits months for the wind. In the case of the former commissioners, they waited as long as three months at Choch’on-gwan and Sujong Temple before they went. This present voyage comes just at the time of unsettled wind and rain. We did not forecast the weather for a single day, and we have come to this extremity. We have brought it all upon ourselves.” | All the other soldiers said, “That is so. Even if we exhaust our will and strength bailing water and repairing the ship like this, in the end we still shall die. Rather than use up our strength and die, let us lie easy and wait for death.” They all closed their ears and would not obey orders. They would not even get up when whipped. Song Chin, a great shirker, being beaten grew angry. He said, “A long-lived one, this ship! Since she is going to break up sooner or later, why doesn't she do it quickly?” Chòng Po said, “Cheju men appear to be stupid, but inside they are wicked. They are obstinate, rude, rebellious, and cruel, and they take death lightly. That is why they talk like that.” I, too, thought that we were sure to drown. If we received help from Heaven and were fortunate enough not to drown, then surely we should drift indefinitely until the day we died. What else could be? I was also exasperated at the insolence of the troops. Then I counted over the men in the boat. There were my staff – Chòng Po, Kim Chung, Yi Chong, Son Hyo-ja, Ch'oe Kõisan, Makkům, and Mansan- ;, and those assigned by the Prefect of Cheju to escort us - Security Officer An Ui, Recorder Yi Hyo-ji, Keeper of the Seals Hỏ Sang-ni, Ship Captain Kwon San, Helmsman Kim Ko-myon, Privates Kim Koe-san, San Kūn-bo, Kim Kujilhoe*, Hyon San*, Kim Sok-kwi, Ko I-hok, Kim Cho-hoe, Munhoe*, Yi Hyo-t'ae, Kang Yu, Pu Myong-dong, Ko Naeŭltong*, Ko Pok, Song Chin, Kim To-jong, Han Mae-san, Chồng Sil; Escort Troops Kim Sok, Kim Chinằmsan*, Ko Hoe, Kim Song, Ko Po-jong, Yang Tal-hae, Pak Chong-hoe, Kim Tủk-si, Im San-hae; and public slaves Kwon Song, Kang Nae, Yi San, and O San*. Altogether there were forty-three men, including me. I called An Ui and questioned him: “I am a man in mourning. I am not in official standing. It is extremely awkward to have so many men aboard. How is it that the Cheju men on board come to thirty-five?” An Ủi said, “What our Prefect was at great pains to do was to meet the protocol for a commissioner. Sailing a large boat, furthermore, takes the work of many, and when the sea route is long and, as at Wi Island and other places, pirates are active, the escort must all the more be strong.” I said, “It is possible to cross the sea successfully with only a few sailors and navigators, if they are carefully chosen. These men, now, are all lazy and insolent. In numbers they swell the roster, but in fact they are nothing. If the boat should drift and we all die, their presence would only increase the number of wailing [widows and orphans].” I called out to the troops, “I am hurrying into my first mourning. My feelings permit not even a slight delay. Since someone did urge me to go, as a son can I delay for a moment? It is true that you have been cast adrift on the sea because of me, but circumstances are also responsible. "Since it is common nature to all men to love life and hate death, how can you not want to live? "If the boat breaks up or sinks, that will be all. My view is that the boat is now sound and tight. Probably it will not break up easily, and if we do not strike a rocky island, we can repair it and bail out the water. If by luck the wind settles and the waves calm down, we may drift to another country, but we shall save our lives. You, too, have fathers, mothers, wives, children, brothers, and relatives, who hope that you will live and fear that you might die; yet, without considering their feelings or the danger to your own lives; you have refused to work because you think I am to blame. It is the height of stupidity to bring death upon yourselves thus.” Over ten men, including Sang-ni, said, “The troops are a gang of stubborn ignoramuses. That is why they reason in such an absurd fashion. But everyone has his own way of thinking. We shall work with all our strength until we die.” During the night, the wind and rain did not stop. The waves were enormous. They washed into the bow and stern, and as they came in, we bailed them out. In, perhaps, the second watch, terrifying waves swelled up and straddled the mat shelter. The boat half sank. The clothing and baggage were soaked through, and freezing cold pierced us to the bone. Our fate lay in the moment. I took Yi Chong's hand and pillowed my head in Chòng Po's lap. Kim Chung and Hyo-ja were at my left and right sides. Thus sprawled about, we waited to die. A man nearby was trying to hang himself and was about to die when Yi Chong untied him. [The man] proved to be O San.
Kõisan, Makkům, and others worked as hard as they could bailing out water. The water seemed not to diminish. I assumed that if the boat was still sound and we did not bail out the water washing in above and leaking in through cracks, we should sit and wait and sink. If we did bail, it might be possible to survive. I forced myself to get up. I called to Kwon Song to kindle a fire by friction, roll up the mats and dry them. I also called to Kủn-bo, Ko Pok, Ko-myon, and others personally to search out the leaking places and plug them. Then I took off my clothes and divided them among Kwon San, Ko-myon, Kõisan, Koe-san, and Sangni as encouragement. Chòng Po, Kim Chung, and Hyo-ja also took off their clothes and divided them among the troops. Soldiers such as Kujilhoe, Munhoe, To-jong, Mae-san, and Hyon San, full of gratitude, exerted their utmost strength to bail all the water out of the boat. They had got it almost all out, and the boat seemed for the most part safe, when almost immediately it again headed into a rocky island. In the confusion, Kwon San, sailing the boat, had not realized where he was going. Sang-ni and Kujilhoe seized poles, but they were useless. Fortunately, we were driven off by a heaven-sent wind and avoided crashing.
46. 제주도와 추자도 사이의 서북해상에 있는 무인도이다. 돌 봉우리가 삐쭉삐쭉하고 그 꼭대기에 샘이 있지만 수목은 없고 풀만 남아 있다고 한다. 《東國輿地勝覽》 권38, 濟州牧. 47. 제주도와 전라남도 海南縣 사이에 있는 섬이다. 48. 한반도와 제주도 본 섬과의 중간에 위치하는데 제주도에서는 가장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옛적에 제주도에 가려면 반드시 이 섬에 들렸다. 예를 들어 제주에 가는 자가 羅州에서 떠나면 務安, 靈岩, 海南 등을 거쳐 이 섬에 이르고, 海南에서 떠나면 三浦에서 巨要梁과 三內島를 거치고, 康津에서 떠나면 軍營浦, 삼내도를 거치는데 모두 삼 畫夜를 가야 추자도에 이르렀다. 한편 추자도를 경유하여 鼠島와 대화탈도, 소화탈도를 지나 애월포와 朝天館에 이른다. 《東國輿地勝覽》권38, 濟州牧. 49. 추자도의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북제주 추자면에 속한다. 추자도와는 거리가 6km이며 무인도로서 사자섬 혹은 사자도라고도 한다. 50. 格軍은 '곁군'의 取音으로 조선시대의 船夫, 水夫, 雜役水夫 등 노를 젓는 군인을 가리킨다. 51. 전라남도 신안군 岩泰面 康沙里에 속하는 섬으로, 추자도의 남쪽에 있으며 목포와의 거리가 24km이다. 52. 밤 11시에서 1시 사이. 53. 姓氏의 경우에는 '소'로 읽어야 한다. 54. 전라남도 羅州에서 서쪽 水路로 900리 되는 바다에 있는 섬으로, 지금은 무안군 흑산면에 속한다. 55. 바닷물을 끓여 수증기를 받아 식수로 만드는 일. 56. 제주도 사람의 성향을 묘사한 아래의 기록이 있다. “풍속이 유별나고 군졸은 사나우며 백성은 어리석다. 기쁘면 사람 같으나 노하면 짐승 같아, 통제하기가 어렵다.” 權近, 《陽村集》권20. 57. 조선시대 지방관청의 吏屬이다. 地方官府의 6房을 담당하는 鄕吏 층으로, 고려시대에는 이들을 記官이라 하였다. 조선 초기에 이르면 官品·祿俸·科田도 받지 못하고, 綠에 平頂巾을 쓰는 행정실무자로 그 지위가 하락하였다. 58. 麗末鮮初 중앙군의 기간을 이룬 兵인 侍衛牌의 통할자이다. 시위패는 高麗末 이래 騎船軍과 함께 양인 농민으로 구성된 국방의 주요 담당 兵種으로, 일명 侍衛軍이라고 도 하였다. 正軍의 통할자를 百戶 및 千戶라 한 데 비해 시위패의 통솔자를 總牌라고 하였다. 59. 運船의 한 선박 내의 長인 漕軍을 말한다. 60. 인천에서 남서쪽 72km의 해상에 있는 섬이다. 61. 밤 9시에서 11시 사이. 62. 대를 엮어 배를 덮은 일종의 덮개로서 마치 집의 지붕과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