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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중에 권하는 이도 있고 말리는 이도 있어, 해가 높이 솟아오를 때까지 결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좌중에 권하는 이도 있고 말리는 이도 있어, 해가 높이 솟아오를 때까지 결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진무(鎭撫) 안의(安義)가 와서 알리기를, “동풍이 마침 알맞으니 떠날 만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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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鎭撫) 안의(安義)가 와서 알리기를,“동풍이 마침 알맞으니 떠날 만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박중알과 최중중 등도 또한 떠나기를 권하였습니다.  
 
박중알과 최중중 등도 또한 떠나기를 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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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마침내 작별을 고하고 배에 올라 노를 저어 5리쯤 가니, 군인(軍人) 권산(權山)과 허상리(許尙理) 등이 모두 말하기를,  
 
신은 마침내 작별을 고하고 배에 올라 노를 저어 5리쯤 가니, 군인(軍人) 권산(權山)과 허상리(許尙理) 등이 모두 말하기를,  
  
“오늘은 바람이 불다가 잦아들기도 하고, 먹구름이 꼈다가 개기도 하니 이처럼 바람이 고르지 못한 날에 이처럼 파도가 사나운 바다를 건넌다면 후회할 일이 있을 듯합니다. 청컨대 별도포로 돌아가서 순풍을 기다렸다가 다시 떠나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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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람이 불다가 잦아들기도 하고, 먹구름이 꼈다가 개기도 하니 이처럼 바람이 고르지 못한 날에 이처럼 파도가 사나운 바다를 건넌다면 후회할 일이 있을 듯합니다. 청컨대 별도포로 돌아가서 순풍을 기다렸다가 다시 떠나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안의는 “하늘의 날씨는 사람이 미리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에 구름이 걷히고 하늘을 볼 수 있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이 바다를 건넌 사람으로서 민간의 배가 뒤집혀 침몰되는 일은 잇달아 일어났지만, 왕명을 받든 조신(朝臣)으로서는 오직 전 정의현감(産義縣監) [http://www.culturecontent.com/dictionary/dictionaryView.do?cp_code=cp0602&dic_seq=264 이섬(李__)]45 외에 배가 표류하거나 침몰된 적이 드물었던 것은, 모두 임금의 덕이 지극히 높음을 실제로 하늘이 알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다 보면 일이 끝이 없는 법입니다. 어찌 길을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감으로써 시일을 천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는, 돛을 펼치고 가도록 소리쳐 명했습니다.  
 
안의는 “하늘의 날씨는 사람이 미리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에 구름이 걷히고 하늘을 볼 수 있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이 바다를 건넌 사람으로서 민간의 배가 뒤집혀 침몰되는 일은 잇달아 일어났지만, 왕명을 받든 조신(朝臣)으로서는 오직 전 정의현감(産義縣監) [http://www.culturecontent.com/dictionary/dictionaryView.do?cp_code=cp0602&dic_seq=264 이섬(李__)]45 외에 배가 표류하거나 침몰된 적이 드물었던 것은, 모두 임금의 덕이 지극히 높음을 실제로 하늘이 알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다 보면 일이 끝이 없는 법입니다. 어찌 길을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감으로써 시일을 천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는, 돛을 펼치고 가도록 소리쳐 명했습니다.  
  
겨우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DdvV&articleno=11803420&categoryId=659545&regdt=20151010150545 대화탈도(大火脫島)]를 지났는데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배가 거요량(巨要梁)을 향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올라가서 바람을 따라 [https://www.yna.co.kr/view/AKR20160620038200056 추자도(秋子島)][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327471#cb]에 정박하면 매우 빠르게 갈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으나, 권산은 그 말을 듣지 않고 키를 잡고 바람 부는 대로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8827 수덕도(秘德島)]49를 지나서 서쪽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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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DdvV&articleno=11803420&categoryId=659545&regdt=20151010150545 대화탈도(大火脫島)]를 지났는데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배가 거요량(巨要梁)을 향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올라가서 바람을 따라 [https://www.yna.co.kr/view/AKR20160620038200056 추자도(秋子島)][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327471#cb]에 정박하면 매우 빠르게 갈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으나, 권산은 그 말을 듣지 않고 키를 잡고 바람 부는 대로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8827 수덕도(秘德島)]지나서 서쪽으로 갔습니다.
  
 
바다가 어두컴컴해지면서 바람은 약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다가 어두컴컴해지면서 바람은 약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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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닻을 올려보니 과연 끊어져 있었습니다. 노를 저었으나 미처 해안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북풍을 맞아 기댈 데가 없는 곳으로 몰려나오게 되었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를 않고 풍랑이 사나워 파도를 따라 오르내리니, 향하는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닻을 올려보니 과연 끊어져 있었습니다. 노를 저었으나 미처 해안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북풍을 맞아 기댈 데가 없는 곳으로 몰려나오게 되었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를 않고 풍랑이 사나워 파도를 따라 오르내리니, 향하는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기후
 
*시간
 
*지리(바다물빛)
 
*지리(풍랑)
 
*인명
 
*풍습(조문)
 
*의견
 
*유학
 
*유학(충군)
 
*경천
 
*갈등
 
*지명
 
  
 
3rd Day. At sea. This day was cloudy and sometimes rainy. The wind was from the east and slightly favorable. The sea was deep green.  
 
3rd Day. At sea. This day was cloudy and sometimes rainy. The wind was from the east and slightly favorable. The sea was deep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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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we raised the anchor, and it was, indeed, broken. Rowing, we could not draw near the shore and were driven off by the north wind to an unprotected part. It rained on, never stopping, the wind beating upon the water. We rose and fell with the waves and did not know where we were going.  
 
Then we raised the anchor, and it was, indeed, broken. Rowing, we could not draw near the shore and were driven off by the north wind to an unprotected part. It rained on, never stopping, the wind beating upon the water. We rose and fell with the waves and did not know where we were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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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흐리다 비 오다, 바람이 불다가 잦아들기도 하고, 먹구름이 꼈다가 개기도 하니, 바다가 어두컴컴해지면서 바람은 약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 하늘도 캄캄하여졌으므로, 비는 여전히
41. 조선시대의 관직으로 일본어 통역을 맡았다. 태조2년(1393)에 司譯院에 정품관 2명을 두었다. 사역원 외에 왜인들의 到泊處인 경상도의 釜山浦와 琴浦에도 각각 종9품의 倭學訓導를 두어 통역을 맡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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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해가 높이 솟아오를 때까지, 밤 3경()
42. 조선시대 鄕校에서 교육을 담당한 교원을 말한다. 500戶 이상 郡縣의 향교에서는 生員과 進士 가운데 訓導官을 임명하고, 500戶 이하 郡縣에는 學長을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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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표류
43. 冠婚喪祭의 각종 儀式을 규정한 朱子의《家禮)를 말한다. 朱熹의 編著로 알려졌지만 朱熹의 사후에 제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朱子學的 儀禮의 典範으로 간주되어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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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관직): 대정현(大靜縣監) 정사서(鄭嗣瑞), 훈도(訓導) 노경(盧警), 최각(崔角)·박중알, 왜학훈도(倭學訓導), 김계욱(金繼郁), 군관(軍官) 최중중(崔仲衆), 진무(鎭撫) 김중리(金仲理), 학장(學長) 김존려(金存麗), 김득례(金得禮) 및 향교생, 군인(軍人) 권산(權山)과 허상리(許尙理), 안의, 정의현감(産義縣監) 이섬, 곁군[格軍]
44. 《家禮》의 원문은 “始聞親喪, , 易服, 遂行”으로서, 여기에서는 “곡을 하고, 상복으로 갈아입은 뒤”라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家禮》 권7, 喪禮, 奔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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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45-旌義縣監 李__은 成宗14년(1483) 2월 29일에 朝天館을 떠났다가 폭풍을 만나 표류했으나, 다행히 중국 揚州 長沙鎭에 표착하였다. 일행 47명 중 14명이 굶어 죽고, 33명은 北京을 거쳐 조선으로 귀환하였다. 돌아온 뒤 〈行錄)을 지어 바쳤는데, 그 내용이 《朝鮮成宗實錄》 14년 8월22일조에 기록되어 있다. 살아 돌아온 공으로 다섯 資級이 승진되었는데, 이는 당시 軍功 1등이 세 __자급인 점을 감안하면 아주 파격적인 것이어서, 이에 대한 비판여론이 조정에서 일어나기도 하였다. 司果에 임명되었으며, 15년 (1484)에는 滿浦僉節制使가 되었고, 그 후 訓鍊院의 僉正과 副正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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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 포구에서 송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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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동풍, 바다 물빛=짙은 청색, 물살이 아주 급해지고, 북풍, 풍랑이 사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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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습(조문): 친상 당한 것을 듣고 달려와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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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습: 한라산에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며 날씨가 고르지 못하면 반드시 바람의 변화가 생기니 배를 타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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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한라산, 대화탈도(大火脫島), 거요량(巨要梁), 수덕도(秘德島), 추자도(秋子島), 수덕도(秘德島), 초란도(草蘭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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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가례(家禮), 임금의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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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의현감(産義縣監) 이섬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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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 하늘의 날씨, 하늘이 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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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물: 돛, 닻, 닻줄,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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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반항, 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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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최부): 독려

2019년 10월 19일 (토) 21:27 판

初三日,漂流海中,是日,午陰乍雨,東風微頁,海色深青,大靜具系監鄭圖瑞、訓導虛警, 聞臣遇喪, 來吊間,與崔角、朴重幹、倭學訓導金體郁、軍官崔仲眾、鎮撫金仲理等十余人、學長金存麗、金“得體、校生二十餘非,俱送別于浦口,存麗、得體等止臣行, 曰: “老僕生長海國,請經水路,漢拏山陰雨不調, 必有風變, 不可乘船. 且 家禮》 ‘始聞親__密行’註云:“日行百里, 不夜行, 雖哀戚猶避害也.’ 夜行尚不可, 況過此大海, 其可不慎乎?” 座中或動或止, 日高不決. 鎮撫安義來告日: “東風正好,可以去矣!” 重醇、仲__等亦勸行. 臣遂告別登船, 掉過五里, 軍人權山、許荷理等皆

日:“今日,風勢若作若,雪寵若卷若舒,當如此風候不順之日,行如此波譯險惡之海,恐有後悔,請還于别刀浦,待風復行,未為晚也,女義曰:“天之氣候,非人預料,頃刻之間,安知有披雲觀天之理乎!抑過此海者,私覆 沒,接踵相繼,唯奉王命朝臣前擁義縣監李暹外,鮮有漂流敗沒者,則都 是上德至重,无所知也,況謀之聚口,事未有濟,豈可登程而復路,以 致稽緩乎?”合張帆而行,經過大火脱島,府中人皆以謂向(巨}[E]要 梁,截海而上,順風泊概子島,甚駛也,桂山不聽其言,執其能從風所指,過 愁德島而西,海氣晦冥,風雨作,將近桃子品藏船處,沙勢甚急,天又昏 黑,督合格軍體之,軍人皆曰:“若此日發工,誰之過敗?”皆懷逆心,不聽從 以力船,退流至草菌岛,依西岸下可而泊,夜三更,尚理曰:“此島雖碍東風, 三面通,不合泊船,今又有北風之漸,進退無據,將乃何?且此船不在初 泊處, 漸却入海中,所泊之,伯或已破,今計莫若學们稍前,製之于岸,待 天明掉入狱子可也,遂舉,果破矣,梓之未及近岸,為北風所逆,驅出無 依之處,雨猶不止,風浪交惡,隨濤上下,莫知所適,

바다에서 표류하였습니다.

이 날은 흐리다 비 오다 하며 동풍이 조금 불고, 바다 물빛은 짙은 청색이었습니다.

대정현(大靜縣)감(監) 정사서(鄭嗣瑞)와 훈도(訓導) 노경(盧警)은 신이 친상 당한 것을 듣고 달려와 조문하고, 최각(崔角)·박중알, 왜학훈도(倭學訓導) 김계욱(金繼郁), 군관(軍官) 최중중(崔仲衆), 진무(鎭撫) 김중리(金仲理) 등 10여 인과 학장(學長) 김존려(金存麗)·김득례(金得禮) 및 향교생도 20여 명과 함께 포구에서 송별해 주었습니다.

존려와 득례 등은 신이 떠나는 것을 말리면서 말하기를, “저희 늙은이들은 섬에서 자라 바닷길을 잘 압니다.

한라산에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며 날씨가 고르지 못하면 반드시 바람의 변화가 생기니 배를 타서는 안 됩니다.

《가례(家禮)》 [1]의, 친상(親喪)을 듣자마자 길을 떠나라4는 조목의 주(註)에도, '하루에 100리를 가되 밤길은 가지 말아야 하니 비록 슬프더라도 몸을 해치는 일은 피해야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밤길을 가는 것도 안 되는데, 하물며 바다 건너는 것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좌중에 권하는 이도 있고 말리는 이도 있어, 해가 높이 솟아오를 때까지 결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진무(鎭撫) 안의(安義)가 와서 알리기를,“동풍이 마침 알맞으니 떠날 만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박중알과 최중중 등도 또한 떠나기를 권하였습니다.

신은 마침내 작별을 고하고 배에 올라 노를 저어 5리쯤 가니, 군인(軍人) 권산(權山)과 허상리(許尙理) 등이 모두 말하기를,

“오늘은 바람이 불다가 잦아들기도 하고, 먹구름이 꼈다가 개기도 하니 이처럼 바람이 고르지 못한 날에 이처럼 파도가 사나운 바다를 건넌다면 후회할 일이 있을 듯합니다. 청컨대 별도포로 돌아가서 순풍을 기다렸다가 다시 떠나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안의는 “하늘의 날씨는 사람이 미리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에 구름이 걷히고 하늘을 볼 수 있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이 바다를 건넌 사람으로서 민간의 배가 뒤집혀 침몰되는 일은 잇달아 일어났지만, 왕명을 받든 조신(朝臣)으로서는 오직 전 정의현감(産義縣監) 이섬(李__)45 외에 배가 표류하거나 침몰된 적이 드물었던 것은, 모두 임금의 덕이 지극히 높음을 실제로 하늘이 알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다 보면 일이 끝이 없는 법입니다. 어찌 길을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감으로써 시일을 천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는, 돛을 펼치고 가도록 소리쳐 명했습니다.

겨우 대화탈도(大火脫島)를 지났는데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배가 거요량(巨要梁)을 향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올라가서 바람을 따라 추자도(秋子島)[2]에 정박하면 매우 빠르게 갈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으나, 권산은 그 말을 듣지 않고 키를 잡고 바람 부는 대로 수덕도(秘德島)를 지나서 서쪽으로 갔습니다.

바다가 어두컴컴해지면서 바람은 약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추자도의 배 정박할 곳에 가까이 갈 즈음에 물살이 아주 급해지고 하늘도 캄캄하여졌으므로, 곁군[格軍]을 독려하여 노를 젓도록 하였습니다.

군인들이 모두, “이 같은 날씨에 배를 출발시킨 것은 누구 잘못입니까?”라고 말하고는, 모두가 거역하는 마음을 품고 힘껏 노를 저으라는 말을 따르지 않아, 뒤로 흘러 내려 초란도(草蘭島)에 이르러 서쪽 해안에 의지해서 닻을 내리고 정박하였습니다.

밤 3경(更)이 되자 허상리가 말하기를,

“이 섬은 비록 동풍을 막고 있지만 3면이 트여 있어 배를 정박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지금 또 북풍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는 데 기댈 곳이 없게 될 것이니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한 이 배는 처음 정박한 곳에 있지 않고 도리어 점점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으니 내린 닻줄이 이미 끊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계책으로는 닻을 올려 조금 앞으로 나아가 해안에 매어 두었다가, 날이 밝기를 기다려 노를 저어 추자도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닻을 올려보니 과연 끊어져 있었습니다. 노를 저었으나 미처 해안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북풍을 맞아 기댈 데가 없는 곳으로 몰려나오게 되었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를 않고 풍랑이 사나워 파도를 따라 오르내리니, 향하는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3rd Day. At sea. This day was cloudy and sometimes rainy. The wind was from the east and slightly favorable. The sea was deep green. Chong Sa-so, Junior Director of Taejšng District, and No Kyong, Superintendent of Education, had heard that there had been a death in my family and came in haste to express their sympathy. More than ten men – Ch’oe Kak, Pak Chung-han, Kim Kye-uk (the Superintendent of Japanese Studies),8 Ch’oe Chung-jung (an officer), Kim Chung-ni (a Security Officer), and others – and in addition School Masters Kim Chol-lyð and Kim Tủng-nye and over twenty students saw us off at the river mouth. Chol-lyo and Tùng-nye tried to stop me from going, saying, “We old men were born and grew up by the sea, and we know much about the sea lanes. When it is changeable on Mt. Halla, now cloudy, now rainy, the wind is sure to shift, and it will be impossible to sail boats. Not only that, the commentary under ‘Travel on First Hearing of a Relative's Death' in the Chia li says, 'One travels one hundred li by day, but not at all by night. Though grief is great one still avoids injury.210 If night travel is improper, how much more could crossing this great sea be disrespectful!".

Some of those in the room urged me on, some held me back. The sun was high, and I had not decided. Security Officer An Ui came and told me, “The east wind is just right. You can go.” Then Chung-han, Chung-jung and others also urged me to go. Finally I took my leave and got into the boat. When we had rowed five li, Kwon San, Hð Sang-ni and other soldiers said to me, “Today first the wind waxes, and then it wanes; the clouds and fog roll in, and then they scatter. We fear that if on a day of such unsteady winds you travel in a heavy sea like this one, you will regret it later. Let us turn back to Pyõlto-p'o and wait for [a more favorable] wind before starting again. We shall not lose too much time that way.” An Ui said, “Heaven's weather is not something people can forecast. How do you know that the clouds will not scatter and that we shall not see fair skies again soon? Moreover, private boats that cross this sea capsize and sink one after another, but the ministers of the Court who have received the King's command (except Yi Sõm, the former Junior Director of Sõnŭi District11) seldom go adrift or sink. All that is because His Majesty's virtue is extremely great and is known to Heaven. Anyway, with suggestions from everyone, the matter will never be settled. How can we set out only to return and delay?” He shouted a command to set sail. Shortly after we passed Taehwat’al Island, all the men in the boat thought that if the boat headed for Sinyoryang and cut across the sea upwind, we should land at Ch’uja Island very quickly. Kwon San would not listen to them. He grasped the tiller and went with the wind. We passed Ch’udok Island and went west. The sea was dark, the wind weak. It began to rain. As we were approaching the harbor of Ch’uja Island, the evening tide was very swift, and the sky was dark. When the overseer gave orders to the troops, all the soldiers at the oars said, “Whose fault is it that we sailed on a day like this?” They nursed rebellion and would not obey and man the oars. We drifted off to Ch'oran Island, dropped anchor off the west bank, and moored. In the third watch of the night, Sang-ni said, “This island blocks the east wind, but we are open to the waves on three sides; it is not suitable. Now, too, the wind is shifting to the north. We can neither go on nor retreat; it is a bad position to be in. The boat, moreover, is not where we first moored it. It is gradually drawing off into the sea. I am afraid the anchor with which we moored may already have broken. Under the circumstances it is best to raise the anchor, go forward a bit, and make fast to the shore. It will then be possible to wait for the sky to clear and row into Ch’uja.” Then we raised the anchor, and it was, indeed, broken. Rowing, we could not draw near the shore and were driven off by the north wind to an unprotected part. It rained on, never stopping, the wind beating upon the water. We rose and fell with the waves and did not know where we were going.

  • 기후: 흐리다 비 오다, 바람이 불다가 잦아들기도 하고, 먹구름이 꼈다가 개기도 하니, 바다가 어두컴컴해지면서 바람은 약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 하늘도 캄캄하여졌으므로, 비는 여전히
  • 시간: 해가 높이 솟아오를 때까지, 밤 3경(更)
  • 사건: 표류
  • 제도(관직): 대정현(大靜縣監) 정사서(鄭嗣瑞), 훈도(訓導) 노경(盧警), 최각(崔角)·박중알, 왜학훈도(倭學訓導), 김계욱(金繼郁), 군관(軍官) 최중중(崔仲衆), 진무(鎭撫) 김중리(金仲理), 학장(學長) 김존려(金存麗), 김득례(金得禮) 및 향교생, 군인(軍人) 권산(權山)과 허상리(許尙理), 안의, 정의현감(産義縣監) 이섬, 곁군[格軍]
  • 인명
  • 의전: 포구에서 송별
  • 지리: 동풍, 바다 물빛=짙은 청색, 물살이 아주 급해지고, 북풍, 풍랑이 사나워
  • 풍습(조문): 친상 당한 것을 듣고 달려와 조문
  • 풍습: 한라산에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며 날씨가 고르지 못하면 반드시 바람의 변화가 생기니 배를 타서는 안 됩니다.
  • 지명: 한라산, 대화탈도(大火脫島), 거요량(巨要梁), 수덕도(秘德島), 추자도(秋子島), 수덕도(秘德島), 초란도(草蘭島)
  • 유학: 가례(家禮), 임금의 덕
  • 역사: 정의현감(産義縣監) 이섬 표류
  • 경천: 하늘의 날씨, 하늘이 알기 때문
  • 기물: 돛, 닻, 닻줄, 노
  • 심리: 반항, 거역
  • 심리(최부): 독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