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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漂流海中。是日乍陰乍雨。東風微順。海色深靑。大靜縣監鄭嗣瑞,訓導盧警聞臣遇喪。馳來弔慰。與崔角,朴重幹,倭學訓導金繼郁,軍官崔仲衆,鎭撫金仲理等十餘人。學長金存麗,金得禮,校生二十餘輩。俱送別于浦口。存麗,得禮等止臣行曰。老僕生長海國。諳經水路。漢挐山陰雨不調。必有風變。不可乘船。且家禮。始聞親喪遂行。註云。日行百里。不夜行。雖哀戚猶避害也。夜行尙不可。況過此大海。其可不愼乎。座中或勸或止。日高不決。鎭撫安義來告曰。東風正好。可以去矣。重幹,仲衆等亦勸行。臣遂告別登船。棹過五里。軍人權山,許尙理等皆曰。今日。風勢若作若輟。雲霾若卷若舒。當如此風候不順之日。行如此波濤險惡之海。恐有後悔。請還于別刀浦。待風復行。未爲晩也。安義曰。天之氣候。非人預料。頃刻之間。安知有披雲覩天之理乎。抑過此海者。私船覆沒。接踵相繼。惟奉 王命朝臣前旌義縣監李暹外。鮮有漂流敗沒者。則都是 上德至重。實天所知也。況謀之衆口。事未有濟。豈可登程而復路。以致稽緩乎。叱令張帆而行。纔過大火脫島。舟中人皆以謂舟向巨要梁。截海而上。順風泊楸子島。甚駛也。權山不聽其言。執其舵從風所指。過愁德島而西。海氣晦冥。風弱雨作。將近楸子島藏船處。汐勢甚急。天又昏黑。督令格軍艪之。軍人皆曰。若此日發船。誰之過歟。皆懷逆心。不聽從以力艪。退流至草蘭島。依西岸下矴而泊。夜三更。尙理曰。此島雖碍東風。三面通闊。不合泊船。今又有北風之漸。進退無據。將奈何。且此船不在初泊處。漸却入海中。所泊之矴。怕或已破。今計莫若擧矴稍前。繫之于岸。待天明棹入楸子可也。遂擧矴。果破矣。棹之未及近岸。爲北風所逆。驅出無依之處。雨猶不止。風浪交惡。隨濤上下。莫知所適。



바다에서 표류하였습니다.

이 날은 흐리다 비 오다 하며 동풍이 조금 불고, 바다 물빛은 짙은 청색이었습니다.

대정현(大靜縣)감(監) 정사서(鄭嗣瑞)와 훈도(訓導) 노경(盧警)은 신이 친상 당한 것을 듣고 달려와 조문하고, 최각(崔角)·박중알, 왜학훈도(倭學訓導) 김계욱(金繼郁), 군관(軍官) 최중중(崔仲衆), 진무(鎭撫) 김중리(金仲理) 등 10여 인과 학장(學長) 김존려(金存麗)·김득례(金得禮) 및 향교생도 20여 명과 함께 포구에서 송별해 주었습니다.

존려와 득례 등은 신이 떠나는 것을 말리면서 말하기를, “저희 늙은이들은 섬에서 자라 바닷길을 잘 압니다.

한라산에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며 날씨가 고르지 못하면 반드시 바람의 변화가 생기니 배를 타서는 안 됩니다.

《가례(家禮)》 [1]의, 친상(親喪)을 듣자마자 길을 떠나라4는 조목의 주(註)에도, '하루에 100리를 가되 밤길은 가지 말아야 하니 비록 슬프더라도 몸을 해치는 일은 피해야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밤길을 가는 것도 안 되는데, 하물며 바다 건너는 것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좌중에 권하는 이도 있고 말리는 이도 있어, 해가 높이 솟아오를 때까지 결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진무(鎭撫) 안의(安義)가 와서 알리기를,“동풍이 마침 알맞으니 떠날 만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박중알과 최중중 등도 또한 떠나기를 권하였습니다.

신은 마침내 작별을 고하고 배에 올라 노를 저어 5리쯤 가니, 군인(軍人) 권산(權山)과 허상리(許尙理) 등이 모두 말하기를,

“오늘은 바람이 불다가 잦아들기도 하고, 먹구름이 꼈다가 개기도 하니 이처럼 바람이 고르지 못한 날에 이처럼 파도가 사나운 바다를 건넌다면 후회할 일이 있을 듯합니다. 청컨대 별도포로 돌아가서 순풍을 기다렸다가 다시 떠나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안의는 “하늘의 날씨는 사람이 미리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에 구름이 걷히고 하늘을 볼 수 있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이 바다를 건넌 사람으로서 민간의 배가 뒤집혀 침몰되는 일은 잇달아 일어났지만, 왕명을 받든 조신(朝臣)으로서는 오직 전 정의현감(産義縣監) 이섬 외에 배가 표류하거나 침몰된 적이 드물었던 것은, 모두 임금의 덕이 지극히 높음을 실제로 하늘이 알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다 보면 일이 끝이 없는 법입니다. 어찌 길을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감으로써 시일을 천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는, 돛을 펼치고 가도록 소리쳐 명했습니다.

겨우 대화탈도(大火脫島)를 지났는데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배가 거요량(巨要梁)을 향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올라가서 바람을 따라 추자도(秋子島)[2]에 정박하면 매우 빠르게 갈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으나, 권산은 그 말을 듣지 않고 키를 잡고 바람 부는 대로 수덕도(秘德島)를 지나서 서쪽으로 갔습니다.

바다가 어두컴컴해지면서 바람은 약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추자도의 배 정박할 곳에 가까이 갈 즈음에 물살이 아주 급해지고 하늘도 캄캄하여졌으므로, 곁군[格軍]을 독려하여 노를 젓도록 하였습니다.

군인들이 모두, “이 같은 날씨에 배를 출발시킨 것은 누구 잘못입니까?”라고 말하고는, 모두가 거역하는 마음을 품고 힘껏 노를 저으라는 말을 따르지 않아, 뒤로 흘러 내려 초란도(草蘭島)에 이르러 서쪽 해안에 의지해서 닻을 내리고 정박하였습니다.

밤 3경(更)이 되자 허상리가 말하기를,

“이 섬은 비록 동풍을 막고 있지만 3면이 트여 있어 배를 정박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지금 또 북풍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는 데 기댈 곳이 없게 될 것이니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한 이 배는 처음 정박한 곳에 있지 않고 도리어 점점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으니 내린 닻줄이 이미 끊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계책으로는 닻을 올려 조금 앞으로 나아가 해안에 매어 두었다가, 날이 밝기를 기다려 노를 저어 추자도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닻을 올려보니 과연 끊어져 있었습니다. 노를 저었으나 미처 해안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북풍을 맞아 기댈 데가 없는 곳으로 몰려나오게 되었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를 않고 풍랑이 사나워 파도를 따라 오르내리니, 향하는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3rd Day. At sea. This day was cloudy and sometimes rainy. The wind was from the east and slightly favorable. The sea was deep green. Chong Sa-so, Junior Director of Taejšng District, and No Kyong, Superintendent of Education, had heard that there had been a death in my family and came in haste to express their sympathy. More than ten men – Ch’oe Kak, Pak Chung-han, Kim Kye-uk (the Superintendent of Japanese Studies),8 Ch’oe Chung-jung (an officer), Kim Chung-ni (a Security Officer), and others – and in addition School Masters Kim Chol-lyð and Kim Tủng-nye and over twenty students saw us off at the river mouth. Chol-lyo and Tùng-nye tried to stop me from going, saying, “We old men were born and grew up by the sea, and we know much about the sea lanes. When it is changeable on Mt. Halla, now cloudy, now rainy, the wind is sure to shift, and it will be impossible to sail boats. Not only that, the commentary under ‘Travel on First Hearing of a Relative's Death' in the Chia li says, 'One travels one hundred li by day, but not at all by night. Though grief is great one still avoids injury.210 If night travel is improper, how much more could crossing this great sea be disrespectful!".

Some of those in the room urged me on, some held me back. The sun was high, and I had not decided. Security Officer An Ui came and told me, “The east wind is just right. You can go.” Then Chung-han, Chung-jung and others also urged me to go. Finally I took my leave and got into the boat. When we had rowed five li, Kwon San, Hð Sang-ni and other soldiers said to me, “Today first the wind waxes, and then it wanes; the clouds and fog roll in, and then they scatter. We fear that if on a day of such unsteady winds you travel in a heavy sea like this one, you will regret it later. Let us turn back to Pyõlto-p'o and wait for [a more favorable] wind before starting again. We shall not lose too much time that way.”

An Ui said, “Heaven's weather is not something people can forecast. How do you know that the clouds will not scatter and that we shall not see fair skies again soon? Moreover, private boats that cross this sea capsize and sink one after another, but the ministers of the Court who have received the King's command (except Yi Sõm, the former Junior Director of Sõnŭi District11) seldom go adrift or sink. All that is because His Majesty's virtue is extremely great and is known to Heaven. Anyway, with suggestions from everyone, the matter will never be settled. How can we set out only to return and delay?” He shouted a command to set sail.

Shortly after we passed Taehwat’al Island, all the men in the boat thought that if the boat headed for Sinyoryang and cut across the sea upwind, we should land at Ch’uja Island very quickly. Kwon San would not listen to them. He grasped the tiller and went with the wind. We passed Ch’udok Island and went west. The sea was dark, the wind weak. It began to rain. As we were approaching the harbor of Ch’uja Island, the evening tide was very swift, and the sky was dark. When the overseer gave orders to the troops, all the soldiers at the oars said, “Whose fault is it that we sailed on a day like this?” They nursed rebellion and would not obey and man the oars.

We drifted off to Ch'oran Island, dropped anchor off the west bank, and moored. In the third watch of the night, Sang-ni said, “This island blocks the east wind, but we are open to the waves on three sides; it is not suitable. Now, too, the wind is shifting to the north. We can neither go on nor retreat; it is a bad position to be in. The boat, moreover, is not where we first moored it. It is gradually drawing off into the sea. I am afraid the anchor with which we moored may already have broken. Under the circumstances it is best to raise the anchor, go forward a bit, and make fast to the shore. It will then be possible to wait for the sky to clear and row into Ch’uja.”

Then we raised the anchor, and it was, indeed, broken. Rowing, we could not draw near the shore and were driven off by the north wind to an unprotected part. It rained on, never stopping, the wind beating upon the water. We rose and fell with the waves and did not know where we were going.




初三日

漂流海中。是日乍阴乍雨,东风微顺。海色深青。大静县监郑嗣瑞、训导卢警闻臣遇丧,驰来吊慰。与崔角、朴重干、倭学训导金继郁、军官崔仲众、镇抚金仲理等十余人,学长金存丽、金得礼、校生二十余辈,俱送别于浦口。存丽、得礼等止臣行,曰:“老仆生长海国,谙经水路。汉山阴雨不调必有风变,不可乘船。且《家礼》‘始闻亲丧遂行’注云:‘日行百里不夜行,虽哀戚犹避害也。’夜行尚不可,况过此大海,其可不慎乎?”座中或劝或止,日高不决。镇抚安义来告曰:“东风正好,可以去矣!”重干、仲众等亦劝行。臣遂告别登船。棹过五里,军人权山、许尚理等皆曰:“今日风势若作若辍,云霾若卷若舒,当如此风候不顺之日,行如此波涛险恶之海,恐有后悔。请还于别刀浦,待风复行未为晚也。”安义曰:“天之气候,非人预料,顷刻之间,安知有披云睹天之理乎?抑过此海者,私船覆没接踵相继,唯奉王命朝臣、前旌义县监李暹外,鲜有漂流败没者,则都是上德至重,实天所知也。况谋之众口,事未有济。岂可登程而复路,以致稽缓乎!”叱令张帆而行。才过大火脱岛,舟中人皆以谓:“舟向巨要梁,截海而上,顺风泊揪子岛,甚驶也。权山不听其言,执其舵,从风所指,过愁德岛而西。海气晦冥,风弱雨作。将近楸子岛藏船处,汐势甚急,天又昏黑,督令格军橹之。军人皆曰:“若此日发船谁之过欤?”皆怀逆心,不听从,以力橹,退流至草兰岛,依西岸下碇而泊。夜三更,尚理曰:“此岛虽碍东风,三面通阔,不合泊船。今又有北风之渐,进退无据,将奈何?且此船不在初泊处,渐却入海中,所泊之碇怕或已破。今计莫若举碇稍前系之于岸,待天明棹入楸子可也。”遂举碇,果破矣。棹之,未及近岸,为北风所逆,驱出无依之处。雨犹不止,风浪交恶,随涛上下,莫知所适。




  • 사건: 표류, 신이 떠나는 것을 말리면서, 닻을 올려보니 과연 끊어져 있었습니다.
  • 제도(관직): 대정현(大靜縣監), 훈도(訓導), 왜학훈도(倭學訓導), 군관(軍官), 진무(鎭撫), 학장(學長), 군인(軍人), 향교생, 정의현감(産義縣監), 곁군[格軍]
  • 인명: 정사서(鄭嗣瑞), 노경(盧警), 최각(崔角)·박중알, 김계욱(金繼郁), 최중중(崔仲衆), 김중리(金仲理), 김존려(金存麗), 김득례(金得禮), 권산(權山)과 허상리(許尙理), 안의, 이섬
  • 의전: 포구에서 송별
  • 기후: 흐리다 비 오다, 바람이 불다가 잦아들기도 하고, 먹구름이 꼈다가 개기도 하니, 바다가 어두컴컴해지면서 바람은 약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 하늘도 캄캄하여졌으므로, 비는 여전히
  • 시간: 해가 높이 솟아오를 때까지, 밤 3경(更)
  • 지리: 동풍, 바다 물빛=짙은 청색, 물살이 아주 급해지고, 북풍, 풍랑이 사나워
  • 지명: 한라산, 대화탈도(大火脫島), 거요량(巨要梁), 수덕도(秘德島), 추자도(秋子島), 수덕도(秘德島), 초란도(草蘭島)
  • 역사: 정의현감(産義縣監) 이섬 표류
  • 풍습(조문): 친상 당한 것을 듣고 달려와 조문
  • 풍습: 한라산에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며 날씨가 고르지 못하면 반드시 바람의 변화가 생기니 배를 타서는 안 됩니다.
  • 유학: 가례(家禮), 임금의 덕
  • 경천: 하늘의 날씨, 하늘이 알기 때문
  • 기물: 돛, 닻, 닻줄, 노
  • 심리: 반항, 거역
  • 심리(최부): 독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