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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은 그 무리와 함께 배에서 내려서 성에 들어가고 신 등은 해안에 머물게 하였는데,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적용은 그 무리와 함께 배에서 내려서 성에 들어가고 신 등은 해안에 머물게 하였는데,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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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th Day. Arrival at Yüeh-ch’i Police Station [Hsün-chien ssu]. This day was cloudy, with dust blowing.
 
25th Day. Arrival at Yüeh-ch’i Police Station [Hsün-chien ssu]. This day was cloudy, with dust blowing.

2019년 10월 15일 (화) 18:25 판

二十五日,到越溪巡檢司,是日陰霾,李昂、許清、王国及莊也尹也,俱这臣于海上,昂握臣手,曰:“我與足下千載一時,萬里一見,一別兩地,無復再見,”臣於船上敘別,曰:“僕之來也,將軍以百千兵甲,環城擁圓,雄旗凌亂,鼓轟馳,則將軍之示遠人嚴矣;僕之寓館也,升堂禮莫怠,饋食意益师, 開心見誠, 一見如舊, 則將軍之待遠人寬矣;及偿之去也,步出城西,遠送海曲, 扶僕登船,鼓辭以別,則將軍之送遠人厚矣,僕一遠人也,相逢未一日也, 而嚴以示之,寬以待之,厚以別之,其意固有在也,盖我朝鮮,地雖海 外,《冠文物,悉同中國,則不可以外國視也,況今大明一統,胡越為家, 則 p.378 一天之下,皆吾兄弟,豈以地之遠近,分內外哉?况又我國恪事天朝,貢獻不怠,故天子亦禮以待之,仁以撫之,懷紋之化,至矣盡矣,而僕朝鮮之臣也,將軍亦天子分關之臣也,則其體天子字小之心,而待遠人至於此極,斯不亦忠矣乎哉?其間情意之篤,則僕既感之深矣,然不得一日之暇,與將軍及莊、尹兩官人,從容談話,展布所懷,百歲之間,萬里之外,雲樹之望,渴維“其已?”又別許清,曰:“將軍與王足下,遇我於蒲宰之里,我於飢渴之極,生我於萬死之餘,以至杜賣場,以至桃诸所,以至於此城,崎嶇數百[里]”之地,扶護七八日之間,其恩情之篇,不勝枚悉,一別之後,會面難期,增黯然,“遂告別,與翟勇同舟過大海,勇謂臣曰:“浮此海而去,西可望天台山,今年雲霧四塞,不得觀望”云云,夕至(淨)(寧海縣之越溪巡檢司,城在山巔,軍卒皆帶甲,列立海傍,勇與其徒,下入城,留臣等于海岸,莫知所為.

월계순검사(越溪巡檢司)192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날은 흐리고 어두웠습니다.

이앙, 허청, 왕광 및 성이 장이니 윤이니 하는 분들이 모두 신을 바다에서 전송하였습니다.

이앙은 신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나와 족하는 천 년 만에 만 리 밖에서 한번 만났다가 곧 헤어지니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배 위에서 작별을 고하며 말하기를,

“제가 올 적에는 장군께서 수백 내지 천여 명의 군인으로 성을 둘러싸 깃발이 어지럽게 펄럭이고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으니, 이는 장군께서 먼 지방 사람에게 위엄을 보이신 것입니다. 제가 사관(舍館)에 머물 적에는 당(堂)에 오르게 하였는데, 예절이 틀림없고 음식을 대접하는데 뜻이 더욱 두터웠으며 마음을 터놓고 성의를 보여서 처음 보고도 옛 벗과 같이 친밀하였으니, 이는 장군께서 먼 지방 사람을 관대하게 대하신 것입니다. 제가 떠날 적에는 성 서쪽까지 걸어 나오고 멀리 바다 모퉁이까지 전송하며 저를 부축하여 배에 태우고 글을 지어 작별하였으니, 이는 장군께서 먼 지방 사람을 보내심이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일개 먼 지방 사람인데 서로 만난 지 하루가 못되었는데도 엄함으로써 위엄을 보이고 관대함으로써 응대하고 두터움으로써 작별하였으니, 그것은 반드시 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대개 우리 조선은, 땅은 비록 바다 밖에 있으나 의관, 문물은 모두 중국과 같으니 외국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물며 지금 명나라가 통일을 이루어 북방의 호(胡)와 남방의 월(越)도 일가가 되었으니, 한 하늘 아래에서 모두가 형제입니다. 어찌 지역의 거리로 안팎을 나누겠습니까? 하물며 또 우리나라는 천조(天朝)를 정성으로 섬겨 공물 바치는 일을 게을리 아니한 까닭에 천자께서 예절로써 대우하고 인애로써 어루만져 주셨으니, 감싸고 안정시켜 주신 덕화(德化)는 지극하였습니다. 또 저는 조선의 신하요, 장군은 천자(天子)의 지방을 맡은 신하인데 천자의 자소지심(字小之心)을 체현하여 먼 나라 사람을 대우하심이 이처럼 지극하시니 이 또한 충(忠)이 아니겠습니까?

그동안의 두터운 온정은 제가 이미 깊이 느낀 바이지만 하루도 장군 및 장(莊), 윤(尹) 두 관인과 함께 조용히 담화하며 회포를 풀 짬을 얻지 못하였으니, 백년 한 평생을 만리 밖에서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이 어찌 그치겠습니까?"194라고 하였습니다.

또 허청에게 작별하며 말하기를,

“장군은 왕광 족하와 함께 나를 포봉(蒲峯)이란 마을에서 만나보고, 지극히 배고프고 목마른 나를 배부르게 먹이고, 나를 죽을 지경에서 살려주고, 두독장과 도저소 및 이 성에 이르기까지 산길이 험준한 수백 리의 땅에서 7-8일 동안을 돕고 보호해 주셨으니, 그 은정(恩情)의 두터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한 번 작별한 뒤에는 서로 만남을 기약하기 어려우니 슬픔이 더할 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작별을 고하고 적용과 함께 배를 타고 큰 바다를 건넜습니다.

적용은 신에게, “이 바다를 떠가노라면 서쪽으로 천태산이 보이는데, 지금은 구름과 안개로 사방이 막혀서 바라볼 수가 없겠습니다”라고 운운하였습니다.

저녁에 영해현(寧海縣)의 월계순검사195에 도착하였습니다.

성은 산꼭대기에 있었고, 군졸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바닷가에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적용은 그 무리와 함께 배에서 내려서 성에 들어가고 신 등은 해안에 머물게 하였는데,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 지명
  • 인명
  • 심리(아쉬움)
  • 모화
  • 심리(유대감)
  • 유학
  • 심리(그리움)
  • 심리(고마움)
  • 지리

25th Day. Arrival at Yüeh-ch’i Police Station [Hsün-chien ssu]. This day was cloudy, with dust blowing.

Li Ang, Hsü Ch’ing, Wang K’uang, Chuang, and Yin escorted me to the sea. Ang took my hands and said, “There was one chance in a thousand years that you and I, from places far apart, would ever meet. Parted we shall not see each other again.” I got into the boat and took my leave with these words: “When I came, General [Chiang-chün], you lined the wall and filled the gates with thousands of arms and shields. Masses of pennants fluttered. Gongs and drums rumbled. You displayed your might to a stranger, General. “When I lodged at the inn, you went up to the main hall and performed the ceremony faultlessly. You served us food in great abundance. The sincerity in your heart was apparent; at a glance, it was as if we were old friends. You treated a stranger generously, General. “As I leave, you walk out west of the city, escorting me a long way to a nook of the sea. You help me into the boat and say good-bye to me. You accompany a stranger kindly, General. “I am a stranger, we have not been acquainted a day. Yet you have shown me your might, treated me generously, and taken leave of me kindly. Certainly that shows your feelings that though my Korea is beyond the sea, its clothing and culture being the same as China's, it cannot be considered a foreign country. That is especially so now, with Great Ming's unification and Hu and Yüeh under one roof. All under Heaven are my brothers; how can we discriminate among people because of distance? That is particularly true of my country, which respectfully serves the Celestial Court and pays tribute without fail. The Emperor, for his part, treats us punctiliously and tends us benevolently. The feeling of security he imparts is perfect. "But I am a Korean minister. You, too, General, are the Emperor's minister outside the gates, and you embody the Emperor's love of the humble. Is it not also loyal service to treat a stranger to this extent? The magnanimity of your feelings in this period I have felt deeply. Though I have not had a day's free time to talk at leisure with you, General, and the two officials Chuang and Yin, to reveal what is in my heart, I shall always remember you, as long as I live and no matter how far away I am.” Then I took leave of Hsü Ch’ing, saying to him, "You, General, and your Wang K’uang met me at the village of P’u-fêng, filled me in the last stage of my hunger and thirst, and put life into me when I should long before have died. Over many li of dangerous ground, to Tu-tu-ch'ang,48 to T’ao-chu Chiliad, and to this town, for seven or eight days you have helped and protected me. The extent of your kindness is immeasurable. Once we have parted, it is unlikely that we shall meet again, and I am sadder for that.” I then bade them leave and, riding in the same boat as Chai Yung, went across a sea. Yung said to me, “When one sails out into this sea, Mt. T'ien-t'ai is visible in the west, but it happens to be cloudy and foggy everywhere now, and we shall not get to see it.” In the evening we arrived at Yüeh-ch'i Police Station, Ning-hai County. The town was at the top of a mountain, and troops, all wearing armor, lined the shore. Yung and his staff got out of the boat and went into the town, leaving us on the shore. I do not know what they did.

192.巡檢司는 洪武 연간 각지의 關津과 要害에 설치한 부서로서 姦細·私鹽業者·逃軍 ·逃囚 및 文引이 없는 수상한 자의 검문과 체포 등 지방의 치안을 담당했다. 巡檢과 副巡檢을 두었는데 모두 종9품이었다. 《諸司職掌》 권5, 兵部. 193. 小國을 아끼고 어루만진다는 뜻이다. 용례로는 《左傳》 昭公 傳十六年의 “僑聞爲國非不能事大, 字小之難” 등이 있다. 194. 원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그리워함을 비유하여 표현한 雲樹之望'의 출전은 杜甫의 詩〈春日憶李白)의 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이다. 어찌 그치겠습니까'의 원문인 ‘붉維其已'의 출전은 《詩經》國風 邯風 綠衣이다. 195. 2002년 7월 최부의 후손 催秉一 선생 등이 寧海縣 越溪鄕 越溪村의 希望初等學校 구내에 〈崔溥漂流事蹟碑)를 건립하였다. 碑文은 北京大學의 葛振家 교수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