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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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高郵州。是日陰。雞報時。發盂城驛。過高郵州。州卽古邗州。邗溝一名寒江。回抱南北水路之要衝。州城枕大湖。湖卽高郵湖也。江湖之勝。人物之繁。亦江北一澤國。蓋夏禹時江淮未通。故禹貢沿于江海。達于淮泗。至吳王夫差。始開邗溝。隋人廣之。舟楫始通焉。又至西河塘。塘在湖邊。木栅長七十有餘里。湖中有島。島有七公廟。望之微茫如仙觀焉。又過樊將軍廟,前總鋪,塘頭鋪,巡檢司,張家鋪,井亭鋪,塘灣鋪。至界首驛。驛與遞運所。東西相對。陳萱以軍吏。隨楊旺而來。稍解文字。故旺任以書手。萱貪婪無比。奸詐莫甚。至是怒我軍人金粟。訴諸旺。旺拿粟決杖十餘。臣令程保告于旺曰。指揮當護送我等而已。擅自決杖。我異國人亦有法文乎。我有軍衆。實同盲啞。雖或違誤。便當開說。在所矜恤。反爲傷打。非 上國護送遠人之道也。旺不能答。傅榮密告於臣曰。楊公元是北京人。調來杭州衛。他不讀書不暗事。我屢次諫他。他不聽我們說。敢行悖理之事。不足責他云云。又冒雨行。過子嬰淺。沿界首大湖。湖邊亦有長堤。過巡檢司,槐角樓。夜泊范水鋪前。



고우주를 지났습니다.

이 날은 흐렸습니다.

첫 닭이 울 무렵 우성역을 떠나 고우주를 지났는데, 고우주는 곧 옛날의 한주(邗州)였습니다.

한구(邗溝)는 한강(寒江)이라고도 부르는데, 남북의 수로를 둘러싸고 있는 요충이었습니다.

고우주의 성은 큰 호수에 임해 있으니 호수는 곧 고우호(高郵湖)였습니다.

강호의 경치가 뛰어나고 사람과 재물은 많아 또한 강북의 수향(水鄕)이었습니다.

대개 하(夏)나라 우왕(禹王) 때는 양자강과 회수[1][2][3][4][5]가 서로 통하지 못했던 까닭에 우공에는 강과 바다를 따라서, 회수와 사수(泗水)에 도달한다'고 했고, 오왕 부차(夫差) 때에 이르러 비로소 한구(弔構)를 개통했으며, 수나라 사람이 이를 넓혀서 뱃길이 비로소 개통되었던 것입니다.

또 서하당(西河塘)에 이르니 서하당은 호숫가에 있었는데 목책의 길이가 70여 리나 되었습니다.

호수 가운데에는 섬이 있고 섬에는 칠공묘(七公廟)가 있었는데, 바라보니 아득하게 바라보이는 것이 도관(道觀)과 같아 보였습니다.

또 번장군묘(樊將軍廟)·전총포(前總鋪)·당두포(塘頭鋪)·순검사(巡檢司)·장가포(張家鋪)·정정포(井亭鋪)·당만포(塘灣鋪)를 지나서 계수역(界首驛)에 이르니, 역은 체운소와 동쪽 서쪽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진훤은 군리(軍吏)로서 양왕을 따라왔는데, 조금 문자를 터득했기 때문에 양왕이 서수(書手)를 맡겼습니다.

진훤은 욕심 많기가 비할 데 없었고 아주 간사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우리 군인 김속(金喪)에게 노염을 품어 양왕에게 호소하니, 양왕이 김속을 잡아다 곤장 10대에 처하였습니다.

신은 정보를 시켜서 양왕에게 고하기를,

“지휘께서는 우리들을 호송하면 될 뿐인데, 마음대로 우리 이국인에게 곤장을 때리니 그런 법규가 있습니까? 우리 군인들은 실로 장님과 벙어리 같습니다. 더러 잘못이 있더라도 알도록 깨우쳐 주며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인데 도리어 구타하니 상국(上國)이 먼 나라 사람을 호송하는 도리가 아닙니다”라고 하니, 양왕은 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

부영이 신에게 몰래 알려주기를, “양공(楊公)은 본디 북경사람으로서 항주위(杭州衛)로 배치되었는데 글을 읽지 못하여 사리를 알지 못합니다. 내가 여러 번 그에게 간하였으나 그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에 어긋난 일을 행하니, 책망할 거리도 못 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비를 무릅쓰고 가서 자영천(子要淺)을 지나 계수대호(界首大湖)를 따라가니, 호숫가에 또한 긴 제방이 있었습니다.

순검사(巡檢司), 괴각루(槐角樓)를 지나서 밤에 범수포(范水鋪) 앞에 정박하였습니다.




25th Day. Passing Kao-yu Department [Chou]. This day was cloudy.

At cock-crow we left Meng-ch'eng Station and passed Kao-yu Department. The department had been the old Han-chou. Han-kou, also called Han River, curved round it, a strategic intersection in the north-to-south water route. The wall of the department overlooked a big lake, which was Kao-yu Lake. There, the scenery of the river and lake was splendid and the people numerous. It was another prosperous country, north of the Yangtze. In the time of Yü of Hsia (traditionally r. 2205-2197 B.C.], the Yangtze and the Huai were not yet connected. In Yü Kung, therefore, “They [tribute-bearers] followed the course of the Chiang and the sea, and so reached the Huai and the Ssu” [Legge, III: 112]. With King Fu Ch'ai of Wu, the Han-kou was first opened; when men of Sui widened it, boats first plied on it. We then came to Hsi-ho Dike [and continued on as far as Chieh-chou Station]. Ch'en Hsüan had come as a military officer with Yang Wang. Since he understood a little about writing, Yang had appointed him scribe. Hsüan was extraordinarily greedy, and there was no one more deceitful. Now he became angry at Kim Sok, a soldier of mine, and accused him of several things to Yang. Yang had Sok seized and sentenced him to more than ten lashes. I ordered Chong Po to make a statement to Yang: “The Commander is supposed to escort us and nothing more. Is there any law by which on your own authority you may sentence and flog us foreigners? The soldiers I have are the same as the blind and the dumb. Even if they sometimes make mistakes, you ought to explain to them sympathetically. On the contrary, you beat them and hurt them. That is not the way for China to escort strangers.” Yang could not answer. Fu Jung said secretly to me, “Originally His Excellency Yang was from Peking, but he was transferred to Hang-chou Garrison. He is illiterate and ignorant. I have corrected him repeatedly, but he will not listen to us and continues to act presumptuously and contrary to principles. It is not worth the effort to bring charges against him.” We went on, into the rain, past Tzu-ying-ch’ien and along Chieh-shou Great Lake. On the edge of that lake, too, was a long embankment. We passed a police station and Huai-chüeh Tower and at night stopped in front of Fanshui Stop.




二十五日

过高邮州。是日阴。鸡报时,发盂城驿,过高邮州。州即古邗州。邗沟一名寒江,回抱南北水路之要冲。州城枕大湖,湖即高邮湖也。江湖之胜,人物之繁,亦江北一泽国。盖夏禹时,江淮未通,故《禹贡》:“沿于江海,达于淮泗。”至吴王夫差始开邗沟,隋人广之,舟楫始通焉。又至西河塘,塘在湖边,木栅长七十有余里。湖中有岛,岛有七公庙,望之微茫如仙观焉。又过樊将军庙、前总铺、塘头铺、巡检司、张家铺、井亭铺、塘湾铺至界首驿。驿与递运所东西相对。陈萱以军吏随杨旺而来,稍解文字,故旺任以书手。萱贪婪无比,奸诈莫甚,至是怒我军人金粟诉诸旺,旺拿粟决杖十余。臣令程保告于旺曰:“指挥当护送我等而已,擅自决杖我异国人,亦有法文乎?我有军众实同盲哑,虽或违误,便当开说,在所矜恤,反为伤打,非上国护送远入之道也。”旺不能答。傅荣密告于臣曰:“杨公原是北京人,调来杭州卫,他不读书,不谙事。我屡次谏他,他不听我们说,敢行悖理之事,不足责他”云云。又冒雨行过子婴浅,沿界首大湖,——湖边亦有长堤,——过巡检司、槐角楼,夜泊范水铺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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