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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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嘉興府。是日晴。泝三塔灣。過三塔鋪至龍淵。勝境之前。有三大塔臨河岸。地之得名以此。又過龍王廟,嘉禾遞運所,趙氏貞節門,社稷壇,香珠橋。至西水驛。驛前建石柱。作屋廊於河中百餘步。纜舟於廊下。驛丞何榮以詩三絶見遺。臣亦和之。榮另將菜饌乾鷄八帶魚等物以贈曰。我朝郞中祁順,行人張謹。曾使朝鮮。著皇華集。國人賡和。徐居正居首列也。其詩有曰。明皇若問三韓事。文物衣冠上國同。今見足下。誠千載一遇。蒙不棄。復承和詩。謹奉薄禮。少助舟中一膳。希目入。幸甚。臣曰。祁郞中文章淸德。人所欽慕。今爲甚麽官職。張行人亦任甚麽職事。榮曰。祁郞中見貶。爲貴州石阡府知府。今已卒矣。張行人被罪。今充錦衣衛之軍。因問曰。徐居正今爲寧馨官職。臣曰。爲議政府左贊成。榮曰。居正文章。亦海東人物也。自西水驛。過一大橋。至嘉興府。卽古携李城越敗吳之地。城中有府治及秀水,嘉興兩縣之治。河抱城。自東南而南而西而北。其屋宇宏壯。景物繁華。亦與寧波府同。臣自城南。過松靑閘。至唐丞相陸贄故里。里在城西。有旌門在河之畔。又經安洋門,雲程門,丹兵橋,永福橋,松靑巡檢司。夜又冒雨順風。達曙至平望驛而泊。



가흥부(嘉興府)를 지났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삼탑만(三塔灣)을 거슬러 올라가 삼탑포(三塔鋪)를 지나 경치 좋은 용연(龍淵) 앞에 이르니, 큰 탑 셋이 강가에 있었습니다. '삼탑'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또 용왕묘(龍王廟), 가화체운소(嘉禾遞運所), 조씨정절문(趙氏貞節門), 사직단(社稷壇), 향주교(香珠橋)를 지나 서수역(西水驛)에 이르렀습니다.

서수역 앞에 돌기둥을 세워 강 가운데에다 100여 보쯤에 행랑집을 지었는데, 배를 행랑 아래에 닻줄로 매어 두었습니다. 역승 하영(何榮)이 시 세 절구를 지어 주므로 신도 화답하였습니다.

하영은 채찬(菜饌), 건계(乾雞), 팔대어(八帶魚) 등 물품을 특별히 가져다주면서 말하기를, “우리 조정의 낭중(郞中) 기순(部順)과 행인(行人) 장근(張謹)이 일찍이 조선에 사신으로 가서 《황화집(皇華集)》을 지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를 지어 화답했는데 서거정(徐居正)[1]이 맨 첫줄에 있었습니다.[2] 그의 시에, 영명한 황제께서 삼한(三韓)의 일을 묻는다면, 문물과 의관은 상국(上國)과 같다고 하오'라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족하를 뵈니, 진실로 천년 동안에 한 번 만나게 되는 좋은 기회인데, 저를 내치지 않으시고 다시 화답하는 시를 얻는 은혜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삼가 변변치 못한 예물을 드리오니 배 안에서 드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눈에 찬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기(郁) 낭중의 문장과 고매한 덕은 사람들이 흠모하는 바인데, 지금은 무슨 관직이며, 장(張) 행인은 어떤 일을 맡고 있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기 낭중은 귀주(貴州) 석천부(石F府)의 지부(知府)로 폄직(反職)을 당하였는데, 지금은 벌써 돌아가셨습니다. 장 행인은 죄를 받아 지금은 금의위(錦衣衛)의 군인으로 충당되었습니다.”

이어서 묻기를, “서거정[3]은 지금 무슨 벼슬을 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의정부(議政府) 좌찬성(左贊成)입니다.”

하영이 말하기를, “서거정[4][5]은 문장가로서 해동의 인물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서수역에서 큰 다리 하나를 지나 가흥부[6]에 이르니, 곧 옛날의 휴리성(携李城)으로서 월(越) 나라가 오(吳) 나라를 격퇴시켰던 이었습니다.

성 안에 부치와 수수현(秀水縣), 가흥현(嘉興縣) 두 현의 치소가 있었습니다.

강은 성을 둘러싸, 동남쪽에서 남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돌아 북쪽으로 갔습니다.

그 가옥의 크고 웅장함과 문물의 번화함은 또한 영파부와 같았습니다. 신은 성 남쪽에서 삼청갑(杉靑)을 지나 당 나라 승상 육지(陸)가 옛날에 살던 마을에 이르니, 마을은 성의 서쪽에 있었으며, 정문(産門)은 강가에 있었습니다.

또 안양문(安洋門)· 운정문(雲程門)·단병교(丹兵橋)·영복교(永福橋)·송청순검사(松靑巡檢司)를 지났습니다.

밤에 또 비를 무릅쓰고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가서 새벽에 평망역(平望驛)에 도착하여 정박하였습니다.




15th Day. Passing Chia-hsing Prefecture. This day was fair.

We went from Three Pagodas Bay to Hsi-shui Station.] Stone pillars had been erected in front of the station, making an arcade into the river over five hundred feet long. We tied the boats to the foot of the arcade. Ho Jung, the Station Master, addressed three quatrains of a poem to us, and I, in turn, answered them. Ho Jung also presented to us fish and meat delicacies, dried chicken, eight-band fish, and other things. He said, “Senior Secretary [Langchung] Ch’i Shun42 and Messenger [Hsing-jen] Chang Chin of our Court went on an embassy to Korea and wrote Huang hua chi. The people of the country wrote verses in response to it, So Ko-jong being foremost among them. His poem had the lines, 'If the glorious Emperor asks about the Three Han,/Their rites, music, and clothes are the same as those of China.' My meeting you now is truly a rare occasion, and you have even condescended to give me a poem in response. Respectfully I offer you some poor gifts to eke out your provisions in the boat. If you will receive them, I shall be extremely fortunate.” I said, “Senior Secretary Ch'i's literary accomplishments and virtue are much admired. What is his position now? And what post is Messenger Chang filling?" Jung said, “Senior Secretary Ch’i was demoted to Prefect of Shih-ch’ien Prefecture, Kuei-chou. He is dead now. Messenger Chang was charged with wrongdoing and is now banished to the Imperial Bodyguard.” Then he asked me, “What position does So Kō-jong now hold?” I said, “He is Fourth State Councillor.” Ho Jung said, “So Ko-jong, by virtue of his writing, is one of Korea's distinguished men.” From Hsi-shui Station we passed one big bridge and came to Chia-hsing Prefecture, which was the old Hsi-li-ch'eng, the place where Yüeh defeated Wu.44 Inside the wall were the prefectural capital and the seats of Hsiu-shui and Chia-hsing counties. The river cradled the wall, going from southeast south, west, and then north. The houses were handsome and the scenery splendid, the equals of Ning-po Prefecture. From south of the wall, I passed Shan-ch’ing Lock and came to the native village of Lu Chih, a Minister of T’ang. The village was west of the wall, and there was a banner gate on the bank of the river. We passed [five places]. At night we braved the rain and went with the wind till dawn, coming to P’ing-wang Station, where we stopped.




十五日

过嘉兴府。是日晴。溯三塔湾,过三塔铺,——至龙渊胜境之前,有三大塔临河岸,地之得名以此。——又过龙王庙、嘉禾递运所、赵氏贞节门、社稷坛、香珠桥,至西水驿。驿前建石柱作屋廊于河中百余步,缆舟于廊下。驿丞何荣以诗三绝见遗。臣亦和之。荣另将菜馔、干鸡、八带鱼等物以赠,曰:“我朝郎中祁顺、行人张谨曾使朝鲜,着《皇华集》,国人赓和,徐居正居首列也。其诗有曰:‘明皇若问三韩事,文物衣冠上国同’。今见足下,诚干载一遇,蒙不弃,复承和诗,谨奉薄礼,少助舟中一膳,希目入幸甚。”臣曰:“祁郎中文章清德,人所钦慕,今为甚么官职?张行人亦任甚么职事?”荣曰:“祁郎中见贬为贵州石阡府知府,今已卒矣;张行人被罪,今充锦衣卫之军。”因问曰:“徐居正今为宁馨官职?”臣曰:“为议政府左赞成。”荣曰:“居正文章亦海东人物也。”自西水驿过一大桥,至嘉兴府,即古携李城——越败吴之地。城中有府治及秀水、嘉兴两县之治。河抱城,自东南而南而西而北,其屋宇宏壮,景物繁华,亦与宁波府同。臣自城南过杉青闸,至唐丞相陆贽故里。里在城西,有旌门在河之畔。又经安洋门、云程门、丹兵桥、永福桥、松青巡检司。夜又冒雨顺风,达曙至平望驿而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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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나라
  • 월나라

(조) p. 251

  • 손견, 손책, 손권: 오(吳, 229년 ~ 280년) 또는 동오(東吳)
  • 산월족: 산월족은 장쑤 · 안후이 남부부터 장시 · 저장 · 푸젠 · 광둥에 이르는 광대한 산악지대에서 살았다. 이 영역이 어디인가. 바로 손권의 오나라 땅이다. ‘천하의 3분의 1을 차지했다’고 하지만, 실상 오나라는 통치하기가 매우 어려운 지역이었다. 위로는 토착 호족세력이 강했고, 밑으로는 산월족 등과 민족갈등이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미개척지를 개발해야 했고, 군사적으로는 위와 촉에 대비하는 것 말고도 산월족의 내란을 토벌해야 했다. 220년 위 · 촉 · 오 삼국이 정립된 후에도 오나라는 산월족에 시달렸다. 234년 제갈각이 단양군(안후이 쉬안청)의 산월족을 토벌하겠다고 했을 때, 오나라의 신하들은 모두 단양군 평정을 만류했다.[7][8]
  • 먀오족(묘족) [9]
  • 가흥 김구와 임시정부
  • 김구, 지금 우리 돈으로 600억원의 현상금
  • 중국인 저보성(상해 항일단체 회장, 절강성장)이 김구를 도왔다.
  • 가흥 남호에 접한 저보성의 본가와 두 아들이 운영하는 종이공장, 실공장.
  • 가흥의 동쪽 첫째 며느리의 고향인 해염의 별장으로 김구 피신. 여기서 6개월 지내고 가흥 저보성의 둘째 아들 집으로.
  • 남호의 여자 뱃사공 주애보와 부부로 위장해서 지냄.
  • 가흥에서 3년 숨어 지내고 1935년 남경으로 떠남.
  • 매만가 76호. 임정식구 은거지. 남문가 일휘교 17호.
'가흥은 산이 없으나 대신 호수와 운하가 낙지발처럼 사방으로 통하며 토지는 비옥하여 각종 물산이 풍부하고 인심과 풍속이 상해와는 딴 세상이었다. 상점은 값을 속여 받지 않고 가게에 손님이 무슨 물건을 놓고 잊어버린 채 갔다가 며칠 후 찾으러 오면 잘 보관하였다가 공손히 내어준다'고 백범일지에 기술함.
  1. 동국통감
  2. 성종실록 64권, 성종 7년 2월 16일 경인 2번째기사, 1476년 명 성화(成化) 12년, 평양 선위사 임원준이 와서 복명하고 서거정이 명나라 사신에게 화답한 시를 바치다
  3. 서거정 선생의 묘가 화성에 있는 이유는?, 화성저넉, 2019.01.10
  4. 동국통감
  5. 안정복 동서강목서문
  6. 저장성, 자싱, 난후
  7. 동부의 富 떠받치는 중부의 휘상(徽商) 후손들, 신동아, 2015.07.22
  8. [https://www.youtube.com/watch?v=w7m9PZQyr_0 오나라를 끊임없이 괴롭힌 '산월족'은 어디서 왔을까?, 밀덕형, 2019.07.20]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