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한

North Korea Humanities

전지영(CNU2025)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2월 5일 (금) 19:35 판 (영점 기준 예산 제도)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전지영(CNU2025))이 작성했습니다.




김용한(金容瀚)
바바파파.jpg
출처 :
 
한글명 김용한 한자명 金容瀚 영문명 Kim, Yong-Han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1929년 몰년 1983년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 전공 경제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해방 이후 물가정책국장, 과학기술처 차관 등을 역임한 관료. 1956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군산남중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1] 1957년 국무원의 수습행정원을 시작으로 행정관료의 길을 걸어 1982년 과학기술처기관 차관으로 발탁될 때까지 줄곧 경제기획업무를 맡았다.[2]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재무부 예산국에서 근무하였고, 이후 계속 경제기획원에 몸담아 왔는데,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예산국 사무관, 같은 해 기업예산과장, 1969년 예산총괄과장, 경제기획국 투자과장, 1970년 경제협력국 경제협력2과장, 1971년 경제조정관실 서기관, 1973년 부이사관, 1974년 예산국 예산심의관, 1977년 물가정책국장, 예산국장, 1979년 예산실장 등을 맡았다. [3] 그리고 20여년에 걸친 경제기획원기관에서의 실무경험과 기여가 인정되어 1982년 과학기술처기관 차관으로 발탁되었다.[4] 차관 재직 중 과학기술처기관의 예산편성 및 확보에 특히 심혈을 기울였으나 1983년 버마 아웅산폭발사건사건 때 순직하였다.[5]


생애


경제기획원 시절

경제기획원기관 시절 예산실장이 된뒤에는 영점기준 예산편성을 추진하는 등 과도기의 재정운용에 있어서 주역을 맡았다. [6] 제로 베이스는 우리 실정에 꼭 맞는 말이 아님을 말하며 영점기준예산을 강조했다. [7] 예산제도와 그 實際(실제)서적라는 저서를 냈고 소위 影占 (영점)기준에 따른 새로운 예산편성개혁작업을 추진하다 과기처차관으로 영전했다. [8]


과학기술처 시절

예산경험이 두터워 5차5개년 계획의 핵심프로젝트인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처기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9] 차관 재임 시에는 과학기술개발기금조성에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10] 1981년 과학기술처기관로 옮긴 후 1년 9개월동안 컴퓨터 반도체 등 첨단기술분야의 재정-예산을 뒷받침하는 정책책임자로 큰역할을 해왔다. [11] 정부투자기관이 기술개발을 민간에 이전해 활용하게 하고 민간기업의 자율적인 투자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며 투자의 확대는 수요에 맞춰 늘린다는 기술개발투자촉진법을 추진했다. [12]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기술개발투자조성심의회를 설치하여 운영할 계획임을 밝혔다. [13]


사후

대핵공장을 추진할 때 실무자로 참여하면서 기획관료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4] 예산의 면도날이라고 불리며 기술개방정책을 확산하는데 큰 몫을 했다. [15] 생전에 강조했던 영점기준예산 편성방식을 1982년 도입하자 긴축기조는 1983년과 1984년에도 이어졌고 일반회계 예산규모를 사실상 동결하였다. [16] 이러한 재정긴축은 1986년까지 지속되어 추곡수매가 인상억제 및 유가안정과 더불어 1982년 이후 물가를 급격히 안정시키는데 기여하였다. [17] 재정긴축은 또한 정부채무의 증가를 억제함으로써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거시경제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18]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 28분 버마 아웅산폭발사건사건으로 순직하셨다. [19]





연구


영점 기준 예산 제도

예산제도와 그 실제라는 저서를 내며 예산제도에 연구를 기울였다. [20] 1964년에 미국 시라큐스 대학기관의 예산관계 세미나에 3개월간 다녀왔고 1965년에 수료했다. [21] [22] 기획원 예산실은 각 부처와 국회의 반발을 예산 개혁 작업이라는 명분으로 정면 돌파했다. [23] 영점 기준 예산 제도의 도입을 목표로 예산실장을 반장으로 예산국장과 과장 전원으로 구성되는 예산개혁작업 공동심의회에서 부처별 예산을 항목별로 재검토를 했다. [24] 긴축 재정의 분위기는 1983년 예산 편성에도 이어졌고 1984년의 예산안은 아예 세출 예산 편성부터 전년 수준으로 동결했다. [25]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Person: 홍아무개 A hasSon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Book: ○○○ Person: 홍길동 A creator B



Timeline


  • [▶Time라인스프레드시트URL삽입 Timeline Google Spreadsheet]

▶Timeline임베딩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김용한 (金容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김용한 (金容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김용한 (金容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김용한 (金容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김용한 (金容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南悳祐經済우등생」더이상없나」, 『조선일보』, 1983.10.13. 02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7. "零點예산 표현이적절"」, 『경향신문』, 1981.12.25. 05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8. 金容瀚 科技處次官 豫算밝은 살림군」, 『동아일보』, 1982.01.05. 02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9. …經濟部處에새바람」, 『경향신문』, 1982.02.06. 05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0. 豫算다루다 科技處로 옮겨온「物價通」金容瀚 科技處차관」, 『동아일보』, 1983.10.10. 10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1. 틈만 있으면 책보는 학구파 金容瀚 과기처차관」, 『조선일보』, 1983.10.11. 06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2. 金科技處차관 기술개발 促進 관계법 제정추진」, 『경향신문』, 1983.07.22. 05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3. 김용한(과학기술처), 「기술개발 투자촉진에 관한 법률안」, 『과학과 기술』 제16-6호, 1983.01, 21~23쪽, 『DBpia』online,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14. 아쉬움남기고간 經濟엘리트들 투철했던「公僕召命意識」」, 『경향신문』, 1983.10.10. 05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5. 金容瀚 과기처차관 經濟에 밝은"기술관료"」, 『경향신문』, 1983.10.10. 10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6. 한국경제 60년사 편찬위원회, 『한국경제 60년사』, 한국개발연구원, 2010.
  17. 한국경제 60년사 편찬위원회, 『한국경제 60년사』, 한국개발연구원, 2010.
  18. 한국경제 60년사 편찬위원회, 『한국경제 60년사』, 한국개발연구원, 2010.
  19. 全大統領방문 버마서 大爆發事故 徐부총리등 16명 殉職」, 『동아일보』, 1983.10.10. 01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20. 김용한, 장영우, 『예산제도와 그 실제』, 대한재무협회, 1963
  21. 金容瀚씨 企劃院物價政策局長 豫算·經協분야 두루거쳐」, 『매일경제』, 1977.09.13. 02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22. 틈만 있으면 책보는 학구파 金容瀚 과기처차관」, 『조선일보』, 1983.10.11. 06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23. 김흥기, 『(경제기획원 33년) 영욕의 한국경제』 김흥기편, 매일경제신문사, 1999, 304쪽
  24. 김흥기, 『(경제기획원 33년) 영욕의 한국경제』 김흥기편, 매일경제신문사, 1999, 304쪽
  25. 김흥기, 『(경제기획원 33년) 영욕의 한국경제』 김흥기편, 매일경제신문사, 1999, 3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