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일선

North Korea Humanities

김준호(GNU2025)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2월 2일 (화) 21:47 판 (참고자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김준호(GNU2025))이 작성했습니다.




선우일선(鮮于一扇)
선우일선.jpg
출처 : https://music.osulgil.com/entry/선우일선의-생애와-히트곡
 
한글명 선우일선 한자명 鮮于一扇 영문명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1919년 몰년 1990년 출신지 평안남도 대동군 룡성면 전공 민요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선우일선은 한국의 가수이다. 일제강점기에 데뷔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교육인으로 활동했다.[1] 데뷔곡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1936년 전후 가수로서 전성기를 맞았다.[2] 1935년 삼천리지에서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1위 왕수복, 2위 선우일선, 3위 이난영, 4위 전옥, 5위 김복희가 선정될 만큼 그때의 선우일선의 인기는 왕수복, 이난영 등과 더불어 대단했습니다.[3] 「꽃을 잡고」와 대표작「조선팔경가」는 모두 수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하며,「태평연」이나「능수버들」등도 지금까지 신민요의 고전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4]


생애


출생과 교육

현재의 평양직할시 룡성구역인 평안남도 대동군 룡성면 출신이다.[5] 가수가 되기 전에는 최창선(崔昌善)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나, 이 이름이 본명인지 가명인지는 분명하지 않다.[6] 선우일선은 유명한 선비인 선우돈암인물의 후손인데, 할머니의 환갑잔치에서 본 기생 이화중선의 춤과 노래에 반해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권번단체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7] 편모 슬하에서 어렵게 자라다가 3년제 평양기생학교기관에 입학하여 기생이 되었다.[8]


데뷔 이후

소리를 잘 하는 기생으로 알려져 1933년 포리돌레코드기관 문예부장 왕평인물에게 발탁되면서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9] 당시 왕평은 폴리돌에서 왕수복인물과는 조금 다른 민요청을 가진 가수를 구하던 중 선우일선의 우아한 고음미청과 청아한 육성을 보고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한다.[10] 1934년 김안서인물작사, 이면상인물작곡의 신민요 <꽃을잡고작품>로 데뷔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서도소리 명창 김주호인물와 함께 녹음한 <영감타령작품>역시 많은 인기를 얻었다.[11] 신민요의 고전으로 오랫동안 널리 불리게 된 〈조선팔경가작품〉를 비롯하여, 1940년대까지 〈압록강 뱃노래작품〉(원제:압록강 뗏목 노래),〈바람이 났네작품〉와 같은 히트곡을 계속 내면서 인기를 유지했다.[12]


광복이후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 고향인 평양공간에 머물렀고, 평양음악대학기관 성악학부 민족성악 교원이 되었다.[13] 1955년 조선작곡가동맹중앙위원회단체의 민요악보화 사업에도 상당히 관여한 것으로 보이며, 1958년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14] 이후 제자들을 양성하며 말년을 보내다가 1989년 평양에서 생을 마감하였다.[15]


연구


꽃을 잡고

폴리돌레코드사에서 1934년 6월 발매한 "꽃을 잡고"는 신민요로 분류되지만 그간에 발표되던 신민요와는 그 느낌이 매우 다른 독특한 그러면서 수준 높은 선율을 보여주는 곡으로 데뷔와 함께 인기가수로 발돋움하는데 큰 기여를 한 곡이다.[16] <꽃을잡고>의 음계는 ‘솔-라-도-레-미’의 전통적 경토리이며, 종지음이 도(G)이고 ‘솔-도(D-G)’로 종지선율이 완전4도 상행으로 종지된다는 점에서 신경토리에 해당된다.[17] 기록에 의하면 이 노랫말은 김소월의 스승인 시인 김억이 작사했다.[18]



조선팔경가

왕평(편월)이 작사하고 형석기가 작곡해 1935년 폴리돌에서 발표된 <조선팔경가>는 선우일선의 대표적인 신민요이며 동살풀이 장단으로 매우 흥겹게 부르는 노래이다.[19] 그러나 <조선팔경가>는 남북한에서 공히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는 곡이면서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원곡대로 전승되지 않고 있는 아픔을 가진 신민요이기도 하다.[20] 먼저 가사의 경우 <조선팔경가>에 등장하는 8가지 경치인 금강산 일만이천봉, 한라산, 석굴암 아침경, 해운대 저녁달, 부전고원, 평양모란봉(금수산), 백두산천지, 압록강뗏목 중 정치적인 이유로 남북한 모두에서 가사와 곡명이 바뀌어 전하고 있다.[21] 북한은 <조선팔경가>를 민요로 분류하고 있으며, 원래 팔경 중 남한에 있는 한라산, 석굴암, 해운대 대신 백두산, 총석정 해돋이, 동해의 푸른 물로 3경을 바꿔 부르고 있으며, 또한 8경 대신 6경으로 축소해 부르고 있다.[22] 남한에서는 한국전쟁 직후 황금심이 킹스타 레코드에서 음반취입을 하면서 <조선팔경가>를 <대한팔경>으로 명칭을 바꾸고, 부전고원과 평양 모란봉 대신 경포대 노을과 낙산사 저녁종으로 3경을 바꿨으며 8경 대신 6경으로 축소하였다.[23]



태평연

선우일선의 신민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인 <태평연>은 <창부타령작품> 선율에 왈츠의 느낌을 입힌 신민요로 전형적인 경토리로 이뤄진 빠른 굿거리 장단의 곡이다.[24] 1936년에 폴리돌에 발표되었고 남강월 작사에 정사인 작곡의 곡이며 재발매가 될 만큼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25] 그런데 해방 후 북한에서는 <어화우리 농민들아>로 바뀌어 불리고 있고, 남한에서는 <태평가>라는 이름으로 곡명과 가사가 바뀐 채 경기민요로 널리 불리고 있는 등 각각 남북한을 대표하는 민요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26]



영감타령

서도지방에서 전승되는<마누라타령>을 개작한 것으로 보이는 신속요<영감타령>은 1969년 반야월 작사, 고봉산 작곡, 하춘화와 고봉산이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부른 <잘했군 잘했어>로 바뀌면서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27] 많은 이들이 하춘화의<잘했군 잘했어>를 원곡으로 생각할 정도로 인기를 얻은 반면52) 서도명창 김주호 특유의 재담조 넉살이나 선우일선 특유의 구수한 민요조의 느낌은 사라지고 대신 트롯트 음악이 강한 느낌으로 변모했다.[28]‘라-도-미-솔’ 단 4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영감타령>은 향토민요로 존재하던 속요를 편곡하였다 하여 신속요, 신민요라 부르기도 한다.[29]



능수버들

<능수버들>은 경기민요<흥타령>계통의 신민요로, 신반경토리와 신경토리의 복합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30] 전통적인 요소가 강한 <능수버들>역시 신반경토리와 신경토리의 복합형으로 만들어진 창작민요로서 <흥타령(천안삼거리)>를 모본으로 하고 있다.[31] 이 능수버들 역시 현재 남북한에서 대표적인 민요로 소개되고 있으며 선율이나 장단에 커다란 변화가 없는 반면 남한의 경우 토속민요로 둔갑되거나 나훈아, 김영임 등 가수나 국악인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면서 가사가 대폭 바뀌고, 음악 역시 조금은 저속한 느낌으로 편곡되어 전하고 있다.[32]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선우일선 Institution: 평양기생학교 A graduates B
Person: 선우일선 Institution: 포리돌레코드 A worksAt B
Person: 선우일선 Institution: 평양음악대학 A worksAt B
Person: 선우일선 Group: 권번 A isMemberOf B
Institution: 평양기생학교 Location: 평양 A isLocatedIn B
Institution: 평양음악대학 Location: 평양 A isLocatedIn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선우일선(鮮于一扇)online,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이장춘, "평양기생출신 인기가수 선우일선과 조선팔경",『티스토리-이장춘』online, 작성일: 2010년 12월 07일.

왕수복과 쌍벽을 이룬 신민요 가수 선우일선online, 지역N문화

머거주기, "꽃을 잡고 / 김억 작사 선우일선 노래", 『네이버블로그-음악과함께』online, 작성일: 2024년 05월 13일.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첫발자욱, "가요(3040)/꽃을 잡고 - 선우일선", 『네이버 블로그 - 淺香朴詩(천향박시)의 Par king Lot』online, 작성일: 2023년 06월 30일.






주석


  1.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2. 선우일선(鮮于一扇)online, 한국민족대백과사전
  3. 이장춘, "평양기생출신 인기가수 선우일선과 조선팔경",『티스토리-이장춘』online, 작성일: 2010년 12월 07일.
  4. 선우일선(鮮于一扇)online, 한국민족대백과사전
  5.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6.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7. 왕수복과 쌍벽을 이룬 신민요 가수 선우일선online, 지역N문화.
  8.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9.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10.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1.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2.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13. 선우일선online, 위키백과, 작성일: 2025년 04월 07일.
  14.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5.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6. 첫발자욱, "가요(3040)/꽃을 잡고 - 선우일선", 『네이버 블로그 - 淺香朴詩(천향박시)의 Par king Lot』online, 작성일: 2023년 06월 30일.
  17.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8. 머거주기, "꽃을 잡고 / 김억 작사 선우일선 노래", 『네이버블로그-음악과함께』online, 작성일: 2024년 05월 13일.
  19.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0.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1.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2.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3.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4.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5.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6.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7.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8.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29.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0.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1.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2. 한윤정, 「선우일선의 신민요 연구」, 서울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