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오

North Korea Humanities

정동은(JB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12일 (수) 07:13 판 (졸업 후)

인물(Person) 목록으로 이동하기



유진오 (兪鎭午)
유진오.jpg
출처 : 유진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글명 유진오 한자명 兪鎭午 영문명 가나명 이칭 현민(玄民)
성별 남성 생년 1906년 몰년 1987년 출신지 서울 전공 법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대한민국 해방 이후의 법학자, 소설가, 교육자, 초대 법제처장,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의 초안을 기초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애


어린시절

1906년 5월 13일 서울특별시 구로구[1]에서 출생했으며 아버지는 궁내부 제도국 참사관 유치형(兪致衡)이다. 본관은 기계(杞溪), 호는 현민(玄民)이다.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와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경성제국대학기관 예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후 경성제국대학 조선학생 모임인 문우회(文友會)를 조직했다. 1926년 4월 동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한 후 1931년까지 좌익 모임인 경제연구회를 조직해서 활동했다. 1927년경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 1927년 5월 단편소설 「스리」를 『조선지광』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졸업 후

1929년 3월 경성제국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4월부터 1933년 3월까지 동대학 법문학부 조수로 있으면서 예과에 강사로 나갔다. 1929년 조선졸업생 모임인 낙산구락부를 조직하여 『신흥』을 발간했다. 1930년 만주를 여행한 후 「마적」, 「귀향」, 「송군 남매와 나」 등을 발표했다. 1931년 9월 경제연구회 구성원을 중심으로 조선사회사정연구소를 설립했다.
1932년부터 보성전문학교에 법과 강사로 출강하였으며, 이후 국제법과 국제정치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같은 해 5월을 전후하여 근로대중의 이익을 표방하는 극단 메가폰을 결성했다. 1933년 4월부터 보성전문학교 전임강사가 되었고, 1937년 교수가 되었다. 1933년 10월부터 『동아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김강사와 T교수」, 「창랑정기(滄浪亭記)」와 같은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1939년 『유진오 단편집』을 간행했다.


제목3


제목4


제목5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Timeline


  • [▶Time라인스프레드시트URL삽입 Timeline Google Spreadsheet]

▶Timeline임베딩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대한제국 한성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