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엽

North Korea Humanities

이시은(C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5일 (수) 01:1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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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엽(金沼葉)
출처 :
 
한글명 김소엽 한자명 金沼葉 영문명 Kim So-Yop 가나명 이칭
성별 남자 생년 1912년 몰년 출신지 경기도 개성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시인. 소설가. 본명은 김병국(金炳國)이다. 개성상업학교 4년을 수료하고 중국 상해 신광외국어학교 영문과 2년을 중퇴하였다.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광복기에 활동한 문학 단체의 하나. 1946년 2월 조선 문학 건설 총본부와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 동맹이 함께 전국 문학가 대회를 개최하면서 발족하였다. 홍명희를 비롯한 이병기, 이태준, 김남천 등이 활동하였고, 1946년부터 1948년까지 기관지 ≪문학≫을 발행하였으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회원들의 전향과 월북 따위로 사실상 해산되었다.-https://ko.dict.naver.com/#/entry/koko/1f2f93101dcf49fcb4eff171f7b524b7)에 가담한 뒤 월북하였다.


생애


제목1

개성상업학교를 수료한 뒤 1930년 중국 상하이의 신광외국어학교 영문과를 중퇴했다.


제목2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한 후 월북하였다. 1930년 『동광』에 시 「배우에게」, 「흙 한 줌 쥐고」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단편 「도야지와 신문」이 2등으로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시보다는 소설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대표작으로 「폐촌」(1935), 「고요한 정원」(1935), 「가물치」(1935), 「딱한 자식」(1936), 「양(楊)서방」(1937), 「초라한 풍경」(1939), 「갈매기」(1940), 「청춘」(1946), 「세월」(1949) 등을 꼽을 수 있다. 1942년 소설집 『갈매기』를 간행했다. 김소엽은 식민지 농촌의 수탈상을 고발하는 소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였다. 농촌 사회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차원의 문제에서 출발해 당대 사회상에 접근하고 있기에 현실성을 확보한 장점이 있으나 구조적인 차원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http://xn--zb0b2hu97a1ya31wlzk6ku.org/?mod=document&uid=467&page_id=30)


시인이 된 김소엽

1930년『동광』에 시 「배우에게」·「흙 한 줌 쥐고」를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단편 「도야지와 신문」이 2등으로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였다.(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533)


제목3


제목5





연구


황진이 무덤 참배와 손질

광복을 맞은 뒤, 모춘기 의 일행은 약속대로 다시 황진이 무덤을 찾았다.거기다 준비해 온 빗돌을 무덤 둘레를 손질한 것이다. 1946년 봄 일이었다. 다만 그때는 지난 번 함께 갔던 자영이 빠지고 김소엽과 극작가 이수령, 화가 김태형 세 사람이 걸음을 같이했다. 검정색 빗돌 앞뒤에 글을 새기는 일은 이전 약속에 따라 이수령이 맡았다. 앞면에는 ‘절기 황진이지묘'라 썼고, 뒤에는 대표 시조 한 수를 넣었다.70) 청춘 은 바로 그러한 실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개성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광복기 김소엽을 비롯한 지역 청년의 문화실천 활동에 대한 의욕과 자부심을 드러내는 한 방식이었던 셈이다.(출처 논문p.227)


제목2

1934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지주와 관의 수탈에 저항하는 농민의 모습을 그린 <도야지와 신문>이 당선된 이후 소설가로 활동했다.(http://nks.ac.kr/Word/View.aspx?id=1229)


제목3

대표작으로는 193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폐촌>을 꼽을 수 있다. 일제의 어민 수탈이 심해지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어민들의 사정을 그린 이 작품은 자연스러운 필치로 그려낸 리얼리즘의 전형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http://nks.ac.kr/Word/View.aspx?id=1229)

점순은 부지런하고 심지가 곧은 한 갯마을의 처녀이다. 아버지는 어부였으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실종되었고 지금은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어업을 생계의 주요 수단으로 삼고 있던 그 마을은 일본의 수산회사가 들어서면서 당국이 개인적인 조업 행위를 금지한 이후 날로 퇴락하고 만다. 일부 어민들은 고용어부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작농으로 전업한다. 최저 수준의 생계마저 유지하기 어려운 그들은 부업으로 돼지를 키우기도 하는데 그 먹이를 대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중에도 점순은 비교적 쉽게 먹이를 구하는데 그 이유는 술공장의 작은 주인이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고 모주를 우선적으로 배급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작은 주인은 어느 날 그녀를 겁탈하려는 몰염치한 행위를 자행하지만 그녀는 완강히 저항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보릿고개 철이 되어 돼지는 물론 사람조차도 먹을 것이 부족하게 되자 돼지는 날로 여위어갔으므로 농민들은 보다 못하여 헐값에 팔아 넘긴다.

보리가 채 익기도 전에 보릿대를 반나마 잘라 먹던 농민들은 하나씩 둘씩 마을을 뜨게 된다. 누구는 간도로, 또 누구는 강원도로 이주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서울의 홍등가로 팔려 가는 처녀조차 있다. 마침내 견디다 못한 점순도 정미소 공원이 되기 위하여 마을을 뜨는 것으로 작품은 끝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폐촌 [廢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리고 「서울」(조선문학 속간 3∼4, 1936.8.∼9.)·「누님」(조선문단 속간 6, 1936.11.)·「성열이 부처」(풍림 1, 1936.12.)·「양서방」·(조광 19, 1937.5.)·「함정」(조선문학 재속간 14, 1937.8.)·「그늘 밑에서」(조광 31, 1938.5.) 등을 발표하였다. 이 무렵의 중요 작품은 황폐한 농촌의 삶과 인간미의 소멸과정을 밀도있게 그려낸 「폐촌」과 「가물치」를 들 수 있다.(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533)


제목4

1930년 말기에는 「바다는 얼어 붙고」(조선문학 19, 1939.6.)·「파탄(破綻)」(문장 임시증간 7, 1939.7.)·「초라한 풍경」(조광 45, 1939.7.)·「수류탄」(조광 47, 1939.9.)·「갈매기」(조광 54∼55, 1940.4∼5.)·「한교기(閑郊記)」(문장 23, 1941.2.)·「산성」(춘추 26, 1943.3.) 등을 발표하였다.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삶이 소설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533)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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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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