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명

North Korea Humanities

김재영(SNU2025)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2월 1일 (월) 22:57 판 (Timeline)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김재영(SNU2025))이 작성했습니다.




석주명(石宙明)
석주명 1938.jpg
출처 : 나비學者石宙明氏(학자석주명씨)」, 『조선일보』, 1938.11.18. 2,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한글명 석주명 한자명 石宙明 영문명 D. M. Seok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1908년 몰년 1950년 출신지 평안남도 평양시 이문리[1] 전공 농생물학[2]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우리나라 나비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적인 생물학자.[3] 1929년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기관를 졸업한 뒤 1930년 모교인 송도중학교 생물교사로 부임하여 10여 년간 근무하면서 나비 연구에만 전념해 나비박사의 별호까지 얻었고, 광복 후에 수원농사시험장 병리곤충부장, 국립과학박물관 동물학부장 등을 역임하였다.[4] 『제주도 방언집서적』, 『조선 나비 이름 유래기』, 『국제 에스페란토 소사전』 등 언어학 관련 저술과 제주도 관련 총서들을 남겼다.[5] 또 「흰배추나비의 변이곡선」, 『한국산접류연구』 등을 저술하였다.[6]


생애


출생과 학력

석주명은 1908년 11월 13일 평양 대동문 근처 이문리에서 석승서(石承瑞)인물와 김의식(石承瑞)의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7] 석승서는 평양에서 가장 큰 요릿집을 경영했기에 석주명은 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8] 여덟 살에 평양 종로공립보통학교기관에 들어가 열세 살에 졸업한 뒤 평양 숭실보통고등학교기관에 진학했다.숭실고보에 들어가 1년 반쯤 뒤 개성 송도보통고등학교기관로 전학했다.[9] 송도고보를 세운 사람은 윤치호인데, 농촌을 사랑하자는 취지로 낙농 실습을 위한 목장과 농장을 운영한 윤치호의 교육 환경의 영향으로 석주명은 낙농 사업을 하려는 꿈을 위해 송도고보를 졸업한 뒤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기관에 농학과로 유학을 갔다. [10]


곤충 공부와 언어학에 대한 관심

석주명은 가고시마 고농에서 일본곤충학회 회장을 지낸 오카지마 긴지(岡島銀次)인물 교수의 지도를 받아 곤충학을 공부했다.[11]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로 곤충병리학이 농업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12] 또 석주명은 교내 에스페란토 연구회에서 시게마쓰 다쓰이치로우(重松達一郎)인물 교수에게 에스페란토를 배웠다.[13] 석주명은 창씨 개명 속에서도 조선어 이름을 끝까지 지켜 모든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D. M. Seok(석주명의 평안도식 발음 '석두명')으로 표기했으며, 논문 개요를 에스페란토로 작성했다.[14] 국내 에스페란토 운동이 일제의 탄압을 받을 때에도 학술 교류라는 명분으로 에스페란토 사용을 고집해 한국 에스페란토 운동의 명맥을 지켰다.[15]


나비 연구

가고시마 고농을 졸업한 뒤 석주명은 모교인 송도고보의 박물교사가 된 후 나비를 채집하는 일에서부터 나비 연구를 시작했다.[16]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석주명은 기존의 도감과 자신의 채집 결과 간 큰 차이를 발견했다.[17] 많은 학자들이 소수의 표본만으로 조사하여 같은 종의 개체 변이를 새로운 학명으로 보고하거나 하는 문제들이 있었다.[18] 이에 따라 석주명은 많은 표본을 채집하여 개체변이의 범위를 밝히는데 집중적인 관심을 쏟게 되었고, 이후 개체변이 범위를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정량적 형질을 추출하고 이를 통계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고안했다.[19] 과학계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그였지만 효과적인 방법론과 이를 뒷받침한 부지런함으로 왜곡되지 않은 한국 나비상을 규명하겠다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해냈다.[20] 그는 연구에 불리한 ‘교사 겸 연구자’라는 처지를, 제자들을 활용해 조직적인 채집활동을 벌이고 학생들의 과제물까지 연구재료로 흡수하면서 자신의 연구가 지니는 강점으로 전환시켰다.[21]


인문학 연구

제주도 방언집에서 첫 결실을 맺은 그의 제주연구의 끈은 1936년 7월 나비채집을 위해 제주도를 찾을 때부터 시작되었다.[22] 통계처리를 기본으로 하는 석주명식 분류학을 위해 한반도 곳곳을 누비던 그는 지역마다 상이한 특성을 보이는 방언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특히 제주도의 특이한 방언은 그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23]이는 제주도 총서의 집필로 이어졌고, 지역학이라는 인식이 공유되기도 전에 석주명이 명명한 ‘제주도학’이 시작했던 것이다.[24]


석주명의 최후와 그 후

6.25전쟁 중에도 석주명은 연구실로 지켰으나 폭격에 국립과학관기관이 불타 표본들이 불타버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25] 10월 6일, 국립과학관 재건회의에 가던 중 석주명은 군인과 사소한 시비 끝에 총격을 받아 사망한다.[26] 전국토를 누비는 채집여행에서부터 시작한 석주명의 나비연구는 통계적 분류학과 생태학 초기단계인 분포연구를 거쳐 국학적 생물학으로 이어졌으며, 더 나아가 역사․언어연구까지 가지를 뻗쳐나갔다.[27]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당부분은 미완의 기획으로 남았지만 나비연구, 제주연구, 에스페란토 등 각각은 이후 개별적 발전의 굳건한 토대가 되었다.[28]





연구


A Synonymic List of Butterflies of Korea (조선산 나비 총목록)

조선산나비 총목록.jpg
‘왕립 아시아학회 한국지회’의 잡지인 <Transactions of the Kore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에 발표하기 위해 조선산 나비에 관해 150쪽가량의 준비한 논문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29]이 책의 제목이 ‘한국 나비의 동종이명 목록’이라는 사실은 석주명의 연구가 같은 종이지만 다른 학명으로 보고된 동종이명의 제거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30] 당시에는 한반도산 특정 생물종에 대한 종합적인 목록집 자체가 드물었고, 특히 Synonymic List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과학자가 펴낸 유일한 영문 단행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31]. 송도고보의 박물 교사였던 석주명은 이 책을 통해 일본을 넘어 구미학계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32]


제주도 방언집

제주도방언집.jpg
47년부터 출판된 '제주도 총서' 5권중 하나이다.[33] 1943년부터 1945년간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에서 근무한 2년동안 이루어진 조사,채집,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34] 제주도 방언에 아직도 남아 있는 15세기의 ‘ᄋᆞ’를 잘 반영하고 있으며, 몽골어 차용어를 비롯한 여러 특수 어휘를 수록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높다.[35] 특히, 생물학자만이 정확하게 채록할 수 있는 동물·식물 어휘를 많이 수록하였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36]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석승서 Person: 석주명 A hasSon B
Person: 석주명 Person: 오카지마 긴지 A hasMaster B
Person: 석주명 Person: 시게마쓰 다쓰이치로우 A hasMaster B
Person: 석주명 Institution: 송도보통고등학교 A gradutes B
Person: 석주명 Institution: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A gradutes B
Person: 석주명 Institution: 송도보통고등학교 A worksAt B



Time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