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식

North Korea Humanities

조유빈(P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5월 29일 (수) 01:00 판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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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식(印貞植)
인정식.jpg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글명 인정식 한자명 印貞植 영문명 Jeong-Sik In 가나명 이칭 김영호, 김수삼, 김광수
성별 생년 1907년 몰년 미상년 출신지 평안남도 용강 전공 경제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인정식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가이자 경제학자, 친일 공산주의 이론가이다. 호는 엽풍(燁豊)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공산주의 운동을 벌였으나,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파로 변절, 이후 친일 이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해방정국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에 가입하여 마르크스주의 학술운동 등에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전향하여 국민보도연맹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국 전쟁 때 부인과 딸을 남쪽에 남긴 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월북하여 북조선 농림상 장관을 맡았다.


생애


생애 초기

1907년 3월 17일 평안남도 용강에서 소작을 주면서 직접 농사도 지어 당시로서는 부농에 속하는 편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자인 조부가 개설한 시열재(時說齋)에서 천자문 등의 한학을 배우고 광량만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인 1917년 세살 위인 노미석과 중매로 결혼했다. 1921년 3월 평양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가 1925년 일본에 건너가 1926년 호세이 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1929년 11월, 경제학부 학사 학위 취득 예정을 3개월 앞두고 자퇴했다.


공산주의 활동

1927년 9월 고려공산청년회 일본총국에 가입하여 일본지회 소속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1928년 6월부터 제 고려공상당청년회 일본부 조직위원으로 활동하며 <조선청년> <레닌주의>등의 간행 일을 맡아했다. 1929년 5월 일제의 치안유지법에 의거하여 사회주의 사상 탄압을 대대적으로 개시하면서 이를 피해 국내로 귀국하였으나 6월 말 경기도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34년 가출옥했다. 출옥직후 고향에서 독서회를 조직하고 야학을 개설하고, 청소년과 농민들에게 민족의식, 공산주의를 고취하는데 힘썼다. 이후 1935년에 경성부로 상경하여 중앙일보사로 입사한 뒤 조선농업경제에 관한 다수의 평론을 발표했고 박문병과의 농업문제 논쟁을 거치며 대표적인 좌파 성향의 농업경제학자로 유명해졌다.


친일행적


광복이후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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