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

North Korea Humanities

구연우(K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11일 (화) 18:3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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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曺雲)
조운.jpg
출처 : https://www.simin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56454
 
한글명 조운 한자명 曺雲 영문명 Cho Un 가나명 이칭 주현(柱鉉)
성별 남성 생년 1898년 몰년 미상년 출신지 전라남도 영광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이다. 대표작으로는 「불살너주오」, 「초승달이 재넘을 때 」 등이 있다.


생애


출생

1900년 6월 26일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면 도동리 136번지에서 본관이 창녕인 아버지 조희섭(曺喜燮)과 어머니 광산 김씨의 6남매 중 넷째이자, 외아들로 출생하였다.[1]


독립운동의 시작과 망명

그의 독립운동은 1919년 영광 삼일만세운동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영광의 삼일만세운동은 조병현, 조철현(曺喆鉉)인물, 위계후(魏啓厚)인물, 김형모 등, 그의 형제와 가족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독립운동으로 1919년 1919년 3월 10일, 3월 14일에 1, 2차에 걸쳐 전개되었다. 조운도 삼일만세운동에 참가한 덕분에 일경에 쫓기게 되었다. 그래서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1919년 6월 17일 경성 덕흥태에 모여 위계후, 고경진, 유성기, 김형모 등과 중국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고, 위계후, 조철현, 노준 등과 만주 망명길에 올랐으나 신의주에서 국경의 삼엄한 경비를 뚫지 못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1920년 다시 시도한 끝에 망명에 성공하였다. 이 때 위계후 등이 모금한 독립자금을 형 조철현과 함께 신한촌 이동휘(李東輝)인물 군대에 전달한 전달책을 수행하였다.[2]


본격적인 문학활동과 재혼

망명의 소임을 마치고 귀국 후 1922년 4월 5일 <동아일보>에 자유시 「불살라 주오」를 발표하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섰고 여러 지면으로 확장해서 작품을 발표했다. 1929년에 보통학교 교사인 노함풍(魯咸豊)과 재혼하였다. 1925년 장성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영광보통학교와 법성보통학교 등을 거쳐 영광 관내의 보통학교 교사였던 노함풍은 결혼 전에 이미 일제의 감시대상인물이었다.


지역문화운동


제목5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조운 Person: 노함풍 A hasSpouse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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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 이동순, 「시인 조운과 가족들의 민족운동과 의미」, 한국문화융합학회, 『문화와 융합』 40(3), 2018.






주석


  1. 이동순, 「시인 조운과 가족들의 민족운동과 의미」, 한국문화융합학회, 『문화와 융합』 40(3), 2018, p.403.
  2. 이동순, 위의 글, p.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