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득

North Korea Humanities

이주영(JB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5일 (수) 15:07 판

인물(Person) 목록으로 이동하기



임순득(任淳得)
임순득.jpg
출처 : 한국문학과 디지털인문학
 
한글명 임순득 한자명 任淳得 영문명 Im Sundeuk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1915년 몰년 2003년 출신지 전라북도 전주시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임순득은 한국 최초의 여성 비평가이다.


생애


'한국 최초 여성 비평가'의 탄생

'한국 최초 여성 비평가' 라고 불리는 임순득은 아버지 '임명호(任命鎬, 1878-1950)'와 어머니 '미상 (전주 이씨(1877-?))' 사이의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임순득의 출생은 전북 고창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종합문예지 <문예연구> 2022년 가을호-기획특집에서 최명표 문학평론가는 임순득의 출생지가 전주임을 바로잡았다. 아버지인 임명호는 양반으로서 1934년 시점에서 재산이 5,000원 정도이며 빚이 없다 했으니, 경제적으로 상당히 여유있는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임순득은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마친 뒤 서울로 와서 1929년 4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임순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들은 어떤 학습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큰 오빠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작은오빠 임택재는 고창고보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간 상태이다. 이에 임순득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진학했다.


두 번의 퇴학

임순득이 이화여고보 1학년 때인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1930년 1월에는 이화여고보의 주도로 서울여학생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이후 1930년대 전반기는 학생들의 동맹휴학 투쟁이 매우 활발했고 또 그런 운동과정에서 학교를 나온 많은 학생들이 노동운동이나 농촌운동으로 뛰어들었다. 임순득은 아직 1학년이어서 서울여학생만세운동 과정에서 뚜렷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그 이후의 동맹휴학 투쟁에는 주모자로 나서서 이화여고보에서 퇴학을 당하고, 또 동덕여고보에 편입해서도 마찬가지로 동맹휴학을 주도하는 등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임순득, 작가가 되다

임순득은 1933년 여름 동덕여고보를 퇴학당한 뒤, 1937년 2월 '일요일'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작가로 등단하고 자기 시대의 '여류작가 논의'를 비판하면서 '여류작가'도 여성 이전에 작가임을 강조하는 논쟁적인 글을 발표한 것을 포함해 연이어 세 편의 평론을 발표하였다. 어떤 경로를 통해 작가와 평론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했는지에 관해서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연구


단편소설 '일요일'


오빠의 죽음


해방과 여성문학의 새로운 시작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임순득 Institution: 고창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임순득 Institution: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A worksAt B
Person: 임순득 Group: 근우회 A isMemberOf B



===Timeline===ㅡㄹ


  • [▶Time라인스프레드시트URL삽입 Timeline Google Spreadsheet]

▶Timeline임베딩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