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North Korea Humanities

이주헌(C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5월 20일 (월) 12:01 판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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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白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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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90134
 
한글명 백석 한자명 白石 영문명 Baek Seok 가나명 시라무라 기코(白村夔行) 이칭 사슴
성별 생년 1912년년 몰년 1996년년 출신지 평안북도 정주군 전공 영어사범과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일제강점기와 북한의 시인이자 번역가이다.


생애


유년기와 청소년기 (1912-1930)

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백기행이다. 그의 집안은 비교적 유복한 편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백시박(白時璞)은 한의사였다. 정주 오산학교에 입학하여 근대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학교는 독립운동가인 이승훈이 설립한 곳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실시했다. 이 시기에 문학에 대한 관심이 싹텄으며, 다양한 책을 읽으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다.


도쿄 유학과 문단 데뷔 (1930-1936)

도쿄 유학: 1930년에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에 입학하여 공부했다. 일본에서 유학하며 서구 문학과 현대 문학의 흐름을 접했다. 문단 데뷔: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이어서 「여우난곬족」,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 다수의 시를 발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문학적 활동과 피난 생활 (1936-1945)

문학 활동: 1936년에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들인 「팔원」, 「초동일기」 등을 발표했다. 피난 생활: 1940년대 중반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작가로서의 활동은 다소 주춤했으나, 그는 여전히 문학적 열정을 잃지 않았다.


해방과 전후 활동 (1945-1953)

광복 후 활동: 1945년 해방 후 다시 활발히 활동을 재개했다. 이 시기에 시와 수필을 통해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상황이 복잡해졌다.

북한에서의 생활: 전쟁 중에 북한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후로는 북한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문학보다는 교육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며 시 쓰기를 계속했다.


만년과 사후 (1953-1996)

만년: 전쟁 후에는 북한에서 문화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였으며, 시보다는 교육과 문화 행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정치적 이유로 문학 활동이 제약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문학에 대한 열정을 유지했다. 사후:백석은 1996년 1월 7일에 평양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는 이후 남한에서도 재조명되었으며,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은 그의 시가 지닌 서정성과 언어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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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