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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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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0일 (수) 22:25 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최여림(SNU2025))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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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영(金駿泳)
김준영.jpg
출처 : , ManiaDB_김준영(작곡)online, maniadb.
 
한글명 김준영 한자명 金駿泳 영문명 Kim Jun-yeong 가나명 이칭 아사히나 노보루(朝比奈昇)
성별 생년 1907년 몰년 1961년 출신지 황해도 옹진 전공 작곡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김준영(金駿泳, 1907년 ~ 1961년)은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작곡가이다.[1] 그는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배제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쿄의 도요음악학교기관에서 수학하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1] 이후 조선중앙방송국기관 악단에서 활동하며 '처녀총각' 등 수많은 인기곡들을 작곡하여 대중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1][2]


생애


초년 및 교육

김준영은 1907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1]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으나, 배제고등보통학교기관에 진학하여 학업에 매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고등보통학교 졸업 후에는 일본 도쿄로 유학길에 올랐으며,[1] 그곳에서 도요음악학교기관에 입학하여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으며 작곡가로서 역량을 키웠다.[1]


작곡 활동 시작 및 명성

1930년대 초부터 1940년대 초까지 김준영은 조선중앙방송국기관 악단에서 활발히 활동했다.[3] 특히 1934년에는 강홍식인물이 부른 '처녀총각' (범오 작사)을 작곡하여 대중적인 큰 성공을 거두었다.[2] 이는 신민요 열풍을 주도하는 계기가 되었다.[2] 발매 1년여 만에 3만 장의 음반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얻어,[2][4] 김준영은 작곡가로서 명성을 확고히 굳혔다.[2] 이후 그는 개나리_고개, 홍도야_울지_마라' 등 다수의 인기곡들을 연달아 작곡했다.[1]


영화 음악 활동 및 일제 협력

1939년 영화 <사랑에_속고_돈에_울고>의 음악을 시작으로 김준영은 영화 음악 작곡 분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1] 그는 이후 <집_없는_천사>, <지원병>, <반도의_봄>(1941), 그리고 <병정님>(1944) 등 여러 영화 작품의 음악을 담당했다.[1] 특히 1944년 영화 <병정님>에서는 주제가 <日本男兒> 등을 작곡했으며,[5] 이 시기에는 아사히나 노보루(朝比奈昇)라는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다.[5] 또한, 1943년에는 김태오인물가 작사한 군국가요 <승전가>의 작곡과 편곡을 맡아 발표하는 등 일제강점기 말 전시체제 협력에 관여한 행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6] 이러한 활동은 그의 음악적 업적과 더불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6]


해방 이후 활동 및 사망

광복 이후 1947년 김준영은 도쿄로 건너가 아사히나 노보루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1961년에 사망했다.[3] 일본에서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3] 그의 대표곡 '처녀총각'은 1940년대 일본에서 '쓰키노한토'('月の半島')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며 높은 인지도를 가졌다.[2] 또한, 광복 이후 북한에서는 '새봄을_노래하네'로 개작되어 불리기도 했으며,[2] 1960년대에는 독일에서 '빈트 바이 나흐트'('Wind_bei_Nacht')라는 제목으로 최정환인물에 의해 음반에 실려 유럽에 소개되었다.[2] 이는 국경을 넘어 그의 문화적 영향력을 보여주었다.[2]





연구


'처녀총각'의 음악적 특징과 혼종성

김준영의 대표곡 '처녀총각'은 전통적인 반경토리에 서양 단음계를 수용한 신반경토리 선법과 동살풀이 계열의 2소박 4박자 리듬을 결합한 혼종적 특징을 보여준다.[7] 이 곡은 전통적 요소와 서양 음악 요소의 성공적인 결합으로 신민요의 음악적 지평을 확장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7]


대표 작품 '개나리 고개'와 '홍도야 울지 마라'의 의미

김준영이 작곡한 '개나리_고개'는 굿거리장단에 해당하는 3소박 4박자 구조를 가진 신민요의 중요한 예시이다.[7] '홍도야 울지 마라' 역시 그의 대표곡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으며 유행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다.[1][2]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그는 한국 대중음악 초기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1]


대중음악사에 미친 영향과 친일 논란

김준영은 '처녀총각'을 통해 1930년대 중반 신민요 열풍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대중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2]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영화 주제가와 군국가요 등을 작곡하며 전시체제 협력에 관여한 행적이 있다.[5] 이로 인해 친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5][6]




데이터


TripleData

김준영 관련 트리플 데이터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김준영 Event: 1907년_출생 bornIn
Person: 김준영 Location: 황해도_옹진 bornInLocation
Person: 김준영 Institution: 도요음악학교 studiedAt
Person: 김준영 Institution: 조선중앙방송국 workedAt
Person: 김준영 Work_Music: 처녀총각 composed
Work_Music: 처녀총각 Date: 1934 createdOn
Person: 강홍식 Work_Music: 처녀총각 performed
Person: 김준영 Work_Movie: 사랑에_속고_돈에_울고 composedMovieMusicFor
Work_Movie: 사랑에_속고_돈에_울고 Date: 1939 premieredOn
Person: 김준영 Pseudonym: 아사히나_노보루 usedAlias
Person: 김준영 Work_Music: 승전가 composed
Person: 김태오 Work_Music: 승전가 hasLyricist
Person: 김준영 Controversy: 친일행위 associatedWith
Controversy: 친일인명사전 Archive: 친일인명사전 documentedIn
Person: 김준영 MusicalGenre: 신민요 pioneered
Work_Music: 처녀총각 MusicalConcept: 신반경토리 isExampleOf
Work_Music: 처녀총각 MusicalConcept: 동살풀이 hasRhythm
Work_Music: 개나리_고개 MusicalConcept: 굿거리장단 hasRhythm
Work_Music: 홍도야_울지_마라 MusicalGenre: 유행가 isGenreOf
HistoricalPeriod: 일제강점기 Person: 김준영 activeDuring
Person: 김준영 Controversy: 전시체제_협력 involvedIn
Person: 김준영 Event: 1961년_사망 passedAway
Work_Music: 처녀총각 Person: 최정환 reinterpretedBy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김준영]", 『KMDb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online, 한국영상자료원.
  2.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장유정, 「[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74] '처녀총각'의 복잡한 심경]」, 『동아닷컴』online, 동아일보, 작성일: 2023년 03월 30일.
  3. 3.0 3.1 3.2 강옥희 외,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4. 『동아일보』, 1973.03.19. 5면. (해당 기사는 김준영 인물 정보의 참고문헌으로 『KMDb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online에서 확인됨)
  5. 5.0 5.1 5.2 5.3 이준희, 「다국적 위문단, '황군(皇軍) 만들기'에 몸바쳤네 - 발굴 영화 <병정님(兵隊さん)> 엿보기」, 『오마이뉴스』online, 오마이뉴스, 작성일: 2008년 05월 14일.
  6. 6.0 6.1 6.2 최정복, 「충남일보-광복 63년, 친일잔재를 말한다」, 『충청투데이』online, 충청투데이, 작성일: 2008년 08월 13일.
  7. 7.0 7.1 7.2 이소영,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혼종성」, 『낭만음악』19권 3호, 낭만음악사, 2007, 191-3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