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도쿠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North Korea Humanities

(논문)
(논문)
74번째 줄: 74번째 줄:
 
|내용= 후쿠다 도쿠조는 한국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라는 논문을 1904년 발표하였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이 논문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의 단계를 봉건제도 이전의 '자급자족경제', 봉건제도의 '현경제', 근대국가시대의 '국민경제'로 분류한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그는 20세기 초 한국경제가 '자급자족경제'의 변혁기에 속하며, 일본의 헤이안 시대, 유럽의 프랑크 왕국과 같다고 주장했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이는 한국의 경제가 일본, 유럽보다 1000년이나 뒤처져 있으며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필수적인 봉건제도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국의 힘으로만 봉건제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내용= 후쿠다 도쿠조는 한국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라는 논문을 1904년 발표하였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이 논문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의 단계를 봉건제도 이전의 '자급자족경제', 봉건제도의 '현경제', 근대국가시대의 '국민경제'로 분류한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그는 20세기 초 한국경제가 '자급자족경제'의 변혁기에 속하며, 일본의 헤이안 시대, 유럽의 프랑크 왕국과 같다고 주장했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이는 한국의 경제가 일본, 유럽보다 1000년이나 뒤처져 있으며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필수적인 봉건제도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국의 힘으로만 봉건제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그는 논문을 통해 당시 외국의 국력으로는 일본과 러시아가 있었으나 러시아 경제는 침체되어 있기에 일본만이 한국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또, 한국에 대한 침략 행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한국은 스스로 근대화할 수 없으며, 일본의 국력을 빌려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시했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이로 인해 "근대 경제사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쓰여진 한국의 경제사에 관한 최초의 학술논문"이라는 평가와 함께  동시대 조선학자들과 현대 한국 연구자들에 의해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그는 논문을 통해 당시 외국의 국력으로는 일본과 러시아가 있었으나 러시아 경제는 침체되어 있기에 일본만이 한국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또, 한국에 대한 침략 행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한국은 스스로 근대화할 수 없으며, 일본의 국력을 빌려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시했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이로 인해 "근대 경제사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쓰여진 한국의 경제사에 관한 최초의 학술논문"이라는 평가와 함께  동시대 조선학자들과 현대 한국 연구자들에 의해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다음을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의 일부 발췌 내용이다.
+
다음은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의 일부 발췌 내용이다.
 
}}
 
}}
 
 
{{글상자|
 
{{글상자|
 
|내용= 한국의 경제단위의 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속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전통성은 다른 경제 단위의 발전된 경제 조직을 가진 문화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조선의 땅을 경작하고 경작할 줄 알아야 하며, 그 가치를 높여 점차 자본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많은 경제적 시설을 제공해 온 우리 일본은 수천 년 동안 운송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가지고 조선인의 봉사에 익숙해져 왔으며, 조선인의 토지를 실질적으로 사적으로 소유하면서 점차 농업을 관리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생산된 제품인 쌀과 콩의 최대 고객으로서 이 사명을 완수하기에 가장 적합한 민족은 아니다. 봉건교육이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우리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땅을 위해 가장 집약적인 농사꾼이며, 일본인을 위한 조선인에게 가장 결핍된 용감한 전사 정신의 대표자이다、... 당신은 그 부패하고 쇠퇴하는 민족적 특성의 뿌리부터 뿌리 뽑음으로써 그 자체에 순응해야 할 자연적 운명과 의무를 지닌 우월한 문화의 막중한 사명을 지니고있는, 봉건적 교육과 그에 기초한 경제단위의 발전을 이루지 못한 조선과 조선인민에 대한 숭고한 사명을 지니고있는이요?<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내용= 한국의 경제단위의 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속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전통성은 다른 경제 단위의 발전된 경제 조직을 가진 문화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조선의 땅을 경작하고 경작할 줄 알아야 하며, 그 가치를 높여 점차 자본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많은 경제적 시설을 제공해 온 우리 일본은 수천 년 동안 운송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가지고 조선인의 봉사에 익숙해져 왔으며, 조선인의 토지를 실질적으로 사적으로 소유하면서 점차 농업을 관리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생산된 제품인 쌀과 콩의 최대 고객으로서 이 사명을 완수하기에 가장 적합한 민족은 아니다. 봉건교육이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우리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땅을 위해 가장 집약적인 농사꾼이며, 일본인을 위한 조선인에게 가장 결핍된 용감한 전사 정신의 대표자이다、... 당신은 그 부패하고 쇠퇴하는 민족적 특성의 뿌리부터 뿌리 뽑음으로써 그 자체에 순응해야 할 자연적 운명과 의무를 지닌 우월한 문화의 막중한 사명을 지니고있는, 봉건적 교육과 그에 기초한 경제단위의 발전을 이루지 못한 조선과 조선인민에 대한 숭고한 사명을 지니고있는이요?<ref>[https://ja.wikipedia.org/wiki/%E7%A6%8F%E7%94%B0%E5%BE%B3%E4%B8%89#cite_note-2 『위키백과_후쿠다_도쿠조』]</ref>

2024년 12월 13일 (금) 04:11 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 24-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위키ID)이 작성했습니다.




한글명(한자명)
후쿠다도쿠조.png
출처 : [위키백과]
 
한글명 후쿠다 도쿠조 한자명 福田徳三 영문명 Tokuzo Fukuda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1874년 12월 2일년 몰년 1930년 5월 8일년 출신지 도쿄 간다 전공 경제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1874년~1930년)는 일본 경제학의 선구자이다. 경제학 뿐만 아니라 법학, 사회정책학 등의 학문에도 두각을 드러냈으며, 일본 복지국가론의 선구자로도 꼽힌다.


생애


제목1


제목2


제목3


제목4


제목5





연구


아오모리현 기근 원인 조사


관동 대지진 실업률 조사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 논문

후쿠다 도쿠조는 한국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라는 논문을 1904년 발표하였다.[1] 이 논문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의 단계를 봉건제도 이전의 '자급자족경제', 봉건제도의 '현경제', 근대국가시대의 '국민경제'로 분류한다.[2] 그는 20세기 초 한국경제가 '자급자족경제'의 변혁기에 속하며, 일본의 헤이안 시대, 유럽의 프랑크 왕국과 같다고 주장했다.[3] 이는 한국의 경제가 일본, 유럽보다 1000년이나 뒤처져 있으며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필수적인 봉건제도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국의 힘으로만 봉건제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4]

그는 논문을 통해 당시 외국의 국력으로는 일본과 러시아가 있었으나 러시아 경제는 침체되어 있기에 일본만이 한국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5] 또, 한국에 대한 침략 행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한국은 스스로 근대화할 수 없으며, 일본의 국력을 빌려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시했다.[6] 이로 인해 "근대 경제사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쓰여진 한국의 경제사에 관한 최초의 학술논문"이라는 평가와 함께 동시대 조선학자들과 현대 한국 연구자들에 의해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7]

다음은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의 일부 발췌 내용이다.


한국의 경제단위의 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속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전통성은 다른 경제 단위의 발전된 경제 조직을 가진 문화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조선의 땅을 경작하고 경작할 줄 알아야 하며, 그 가치를 높여 점차 자본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많은 경제적 시설을 제공해 온 우리 일본은 수천 년 동안 운송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가지고 조선인의 봉사에 익숙해져 왔으며, 조선인의 토지를 실질적으로 사적으로 소유하면서 점차 농업을 관리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생산된 제품인 쌀과 콩의 최대 고객으로서 이 사명을 완수하기에 가장 적합한 민족은 아니다. 봉건교육이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우리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땅을 위해 가장 집약적인 농사꾼이며, 일본인을 위한 조선인에게 가장 결핍된 용감한 전사 정신의 대표자이다、... 당신은 그 부패하고 쇠퇴하는 민족적 특성의 뿌리부터 뿌리 뽑음으로써 그 자체에 순응해야 할 자연적 운명과 의무를 지닌 우월한 문화의 막중한 사명을 지니고있는, 봉건적 교육과 그에 기초한 경제단위의 발전을 이루지 못한 조선과 조선인민에 대한 숭고한 사명을 지니고있는이요?[8]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후쿠다 도쿠조인물 Institution: 도쿄고등상업학교 A graduates B
Person: 후쿠다 도쿠조 Institution: 도쿄고등상업학교 대학원 A graduates B
Person: 후쿠다 도쿠조 Institution: 뮌헨 대학교 A graduates B
Person: 후쿠다 도쿠조 Institution: 도쿄제국대학 법학대학원 A graduates B
Person: 후쿠다 도쿠조 Institution: 고베상업학교 A worksAt B
Person: 후쿠다 도쿠조 Institution: 도쿄고등상업학교 A worksAt B
Person: 후쿠다 도쿠조 Institution: 외무성 번역관 A worksAt B
Person: 후쿠다 도쿠조 Institution: 게이오기주쿠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후쿠다 도쿠조 Institution: 내무부 사회국 참사관 A worksAt B
Person: 후쿠다 도쿠조 Group: 프랑스 교육 아카데미 A isMemberOf B
Book: <일본경제사론> Person: 후쿠다 도쿠조 A creator B
Book: <국민경제강화> Person: 후쿠다 도쿠조 A creator B
Book: <후생경제연구> Person: 후쿠다 도쿠조 A creator B




Timeline


[Timeline Google Spreadsheet]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