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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문학적 활동과 피난 생활 (1936-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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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광복 후 활동: 1945년 해방 후 다시 활발히 활동을 재개했다. 이 시기에 시와 수필을 통해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상황이 복잡해졌다.
북한에서의 생활: 전쟁 중에 북한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후로는 북한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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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의 생활: 전쟁 중에 북한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후로는 북한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문학보다는 교육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며 시 쓰기를 계속했다.  <ref>이영미,「[북한의 자료를 통해 재론하는 백석의 생애]」, 『한국문학이론과 비평』42,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9, 172~173쪽.</ref>
북한에서는 문학보다는 교육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며 시 쓰기를 계속했다.  <ref>이영미,「[북한의 자료를 통해 재론하는 백석의 생애]」, 『한국문학이론과 비평』42,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9, 172~173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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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3일 (목) 23: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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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白石)
백석.jpg
출처 : 장찬우, 「시인 백석과 평양냉면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굿모닝충청』, 2018.05.25.
 
한글명 백석 한자명 白石 영문명 Baek Seok 가나명 시라무라 기코(白村夔行) 이칭 사슴
성별 생년 1912년 몰년 1996년 출신지 평안북도 정주군 전공 영어사범과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일제강점기와 북한의 시인이자 번역가이다.


생애


유년기와 청소년기 (1912-1930)

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백기행이다. 그의 집안은 비교적 유복한 편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백시박(白時璞)인물은 한의사였다.[1] 정주 오산학교에 입학하여 근대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학교는 독립운동가인 이승훈이 설립한 곳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실시했다.[2] 이 시기에 문학에 대한 관심이 싹텄으며, 다양한 책을 읽으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다. [3]


도쿄 유학과 문단 데뷔 (1930-1936)

도쿄 유학: 1930년에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기관에 입학하여 공부했다. 일본에서 유학하며 서구 문학과 현대 문학의 흐름을 접했다.[4]
문단 데뷔: 1935년, 조선일보기관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5] 이어서 「여우난곬족」,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 다수의 시를 발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문학적 활동과 피난 생활 (1936-1945)

문학 활동: 1934년에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했다.[6]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들인 「팔원」, 「초동일기」 등을 발표했다.[7]
피난 생활: 1940년대 중반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작가로서의 활동은 다소 주춤했으나, 그는 여전히 문학적 열정을 잃지 않았다.


해방과 전후 활동 (1945-1953)

광복 후 활동: 1945년 해방 후 다시 활발히 활동을 재개했다. 이 시기에 시와 수필을 통해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상황이 복잡해졌다. 북한에서의 생활: 전쟁 중에 북한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후로는 북한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문학보다는 교육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며 시 쓰기를 계속했다. [8]


만년과 사후 (1953-1996)

만년: 전쟁 후에는 북한에서 문화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였으며, 시보다는 교육과 문화 행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정치적 이유로 문학 활동이 제약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문학에 대한 열정을 유지했다. 1962년을 기점으로 시인으로서 백석의 이름은 완전히 지워진다. 간간히 이어지던 그의 시를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된 것이 이 시점이다. [9] 사후:백석은 1996년 1월 7일에 평양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는 이후 남한에서도 재조명되었으며,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은 그의 시가 지닌 서정성과 언어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연구


일제강점기의 어둠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시인'

1912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백석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을 갖고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 억압과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백석 시인은 희망과 위안을 담은 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다.

이와 관련된 그의 작품으로는 '여승', '팔원(八院)', 등이 있으며, 그의 시는 한국인의 정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10]


조선일보 기자로서 목격한 현실과 사회 참여

백석의 공식적인 문단 활동은 19세 되던 해인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부터 시작됐다. 1934년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백석은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잡지 《여성》의 편집을 맡는 한편 조선일보 지면에 외국 문학작품과 논문 등을 번역해 실었다. 그리고 1935년에는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 본격적으로 시단에 등장하게 된다.[11]

조선일보에서 근무하며 현실 속의 어려움을 직접 목격했고, 이러한 경험은 그의 시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과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반영시켰다.[12]

그의 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섬세한 감성과 뛰어난 언어적 표현력

백석 시인은 섬세한 감성과 뛰어난 언어적 표현력으로 유명하다.

그의 시는 자연에 대한 애정, 삶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또한, 독창적인 비유와 상징을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대표작으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여우난 곬족' 등이 있으며, 그의 시는 한국 현대 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3]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새로운 시도- 한국 현대 시의 발전에 기여

백석 시인은 끊임없이 자기 성찰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시적 세계를 확장했다.

초기에는 자연에 대한 애정을 담은 시를 주로 발표했지만, 이후에는 사회 문제와 인간의 내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다양한 형식과 기법을 시도하며 시적 표현의 폭을 넓혔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한국 현대 시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백석 시인은 향토적 동일성으로 수렴되지 않은 개별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에 ‘유니크’하다. 백석의 시가 지금도 수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도 ‘개별성과 공동체’, ‘개인의 차이와 집단의 동일성’의 긴장 관계를 강렬한 힘으로 움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4]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백시박 Person: 백석 A hasSon B
Person: 백석 Institution: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 A gradutes B
Person: 백석 Institution: 조선일보 출판부 A worksAt B



Timeline


▶Timeline임베딩

Network Graph






참고자원


  • 『문화PD매거진』, 한국문화정보원.
  • 오창은, 「[문학 속 자치(21) 백석 시인의 『백석전집』] 깊은 외로움에서 발견한 삶의 나눔과 서정의 어울림」, 『월간 주민자치』, 제27호, 2014.1 ,84쪽, 한국주민자치학회.
  • 『백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영미,「[북한의 자료를 통해 재론하는 백석의 생애]」, 『한국문학이론과 비평』42,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9, 172~173쪽.
  • 한상효, 「어두운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돌아온 시인, 백석」, 『통일인문학』69,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7, 253쪽.
  • 『백석종합자료실』, 삶과사랑.
  • 『조선일보 3만호 특집』, 조선일보
  • 박해현, 「18세에 本紙 신춘문예로 등단… 백석은 광화문의 멋쟁이 기자」, 『조선일보』, 2020.02.27.
  • 오창은, 「[문학 속 자치(21) 백석 시인의 『백석전집』] 깊은 외로움에서 발견한 삶의 나눔과 서정의 어울림」, 『월간 주민자치』, 제27호, 2014.1 ,87쪽, 한국주민자치학회.





주석


  1. 현달환,「[이희국 시인의 시인선(2) 비운의 황토시인 백석]」, 『뉴스N제주』, 2024.05.01.
  2. 현달환,「[이희국 시인의 시인선(2) 비운의 황토시인 백석]」, 『뉴스N제주』, 2024.05.01.
  3. 문화PD매거진online, 한국문화정보원.
  4. 백석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오창은, 「[문학 속 자치(21) 백석 시인의 『백석전집』] 깊은 외로움에서 발견한 삶의 나눔과 서정의 어울림」, 『월간 주민자치』, 제27호, 2014.1 ,84쪽, 한국주민자치학회.
  6. 백석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백석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 이영미,「[북한의 자료를 통해 재론하는 백석의 생애]」, 『한국문학이론과 비평』42,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9, 172~173쪽.
  9. 한상효, 「어두운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돌아온 시인, 백석」, 『통일인문학』69,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7, 253쪽.
  10. 백석종합자료실online, 삶과사랑.
  11. 조선일보 3만호 특집-조선일보를 이끈 사람들online, 조선일보
  12. 박해현, 「18세에 本紙 신춘문예로 등단… 백석은 광화문의 멋쟁이 기자」, 『조선일보』, 2020.02.27.
  13. 백석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4. 오창은, 「[문학 속 자치(21) 백석 시인의 『백석전집』] 깊은 외로움에서 발견한 삶의 나눔과 서정의 어울림」, 『월간 주민자치』, 제27호, 2014.1 ,87쪽, 한국주민자치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