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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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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3일 (목) 23:0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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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학수(林學洙)
임학수.png
출처 : 시요일 라이브러리[1]
 
한글명 임학수 한자명 林學洙 영문명 Lim HakSu 가나명 이칭 임영택(林榮澤)
성별 남성 생년 1911년 7월 3일년 몰년 1982년 6월 21일년 출신지 전라남도 순천시 금곡동 전공 경성제국대학 영문과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임학수는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으로, 호는 악이이며 본적은 전라남도 순천시 금곡동이다. 본명은 임악이이지만 족보에는 임영택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임내홍이 있다.


생애


임학수의 성장과정

전라남도 순천시 출신으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기관경성제국대학기관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배화여자고등학교기관 등에서 교사로 일하며 시인으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로서의 행적

일제강점기 말기에 조선문인협회 발기인과 간사를 지내며 전선 위문에 참가하였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시 3편과 시집 1권을 포함하여 총 8편의 친일 작품이 밝혀져 있다. [2]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인으로서의 생적

1931년 『동아일보』에 시 「우울(憂鬱)」과 「여름의 일순(一瞬)」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7년 8월 첫 시집 『석류(石榴)』(한성도서주식회사)를 간행했다. 이 시집에는 「견우」·「고요한 밤」·「근심」·「눈오는 날」·「파랑새」 등이 수록됐다. 1938년 9월 「가을 장미」·「소녀」·「벙어리」의 신추삼제(新秋三題)를 발표 했으며, 이해 10월 두 번째 시집 『팔도풍물시집(八道風物詩集)』(인문사), 1939년 1월 세 번째 시집 『후조(候鳥)』(한성도서주직회사)에 이어 1939년 3월 『현대영미시선 조선문고』(학예사), 1939년 9월 『전선시집(戰線詩集)』(인문사)을 간행했다. 『전선시집』은 황군(皇軍) 위문사로 북지전선(北支戰線)을 방문하여 이 경험을 시로 쓴 시집으로 김동인(金東仁)·박영희(朴英熙)과 함께 참여했다. 1939년 2월에는 최재서・임화・이태준 등과 함께 황군위문작가단(皇軍慰問作家團)을 발의할 때 참여했다. 이해 10월 문필보국(文筆報國)을 표방한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시부회(詩部會)단체 간사로 활동하면서 전선위문에 참가하는 등 친일 시와 글을 발표했다.


해방 후 행적

해방 이후 『동아일보』에 「실솔(蟋蟀)」·「어떠케 살을게냐」·「해방(解放)」·「싸홈」, 『자유신문』에 「새날을 맞음」·「3월 1일」 등을 발표했으며, ‘시인의 집’ 결성에 참여했다. 1946년 8월 『세계단편선집』, 1948년 7월 『필부의 노래』를 출간했다. 서울여대기관에서 강의했고, 고려문화사 주간을 거쳐 고려대학교기관 교수를 역임했다. 좌익계열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조선문학가동맹(朝鮮文學家同盟)과 전향작가를 포함한 한국문학가협회 결성에 참여했다.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기관 초대 영어교수·외국어학장 등을 역임했다.[3] 영문학을 강의했으며 북한 문학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데 힘썼다. 1982년 6월 21일 사망했다.


친일파로 규정된 이유

임학수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13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5: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224∼251)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연구


작품경향

작품 경향은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이나 경향파 문학과는 거리를 두었고, 장미, 조개, 별 등 일상적인 자연물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화자의 격정적인 감정과 고뇌를 실었다. 현실성과 역사성에 무관심한 대신, 시적 공간 안에 전원적이거나 복고적인 자기만의 환상적 세계가 구축되어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 발표하는 등 번역 문학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번역가로써의 업적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 발표하는 등 번역 문학가로도 이름을 알렸고 후에 납북 후 김일성종합대학 강좌장(교수)을 지내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주로 몰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까지 마크 트웨인과 찰스 디킨스 등에 대한 영문학 관련 평론을 몇편 발표한 것 외에 시작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논저목록

연번 제목 출판사 간행연월일
A001 「우울(憂鬱)」 『동아일보』 1931년
A002 「여름의 일순(一瞬)」 『동아일보』 1931년
A003 「석류(石榴)」 『한성도서주식회사』 1937년 8월
A004 신추삼제(新秋三題) 1938년 9월
A005 『팔도풍물시집(八道風物詩集)』 『인문사』 1938년 10월
A006 『후조(候鳥)』 『한성도서주식회사』 1939년 1월
A007 『현대영미시선 조선문고』 『학예사』 1939년 3월
A008 『전선시집(戰線詩集)』 『인문사』 1939년 9월
A009 『세계단편선집』 『동아일보』 1946년 8월
A010 『필부의 노래』 『동아일보』 1948년 7월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임학수 Institution: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임학수 Institution: 경성제국대학 A graduates B
Person: 임학수 Institution: 배화여자고등학교 A worksAt B
Person: 임학수 Institution: 서울여대 A worksAt B
Person: 임학수 Institution: 고려대학교 A worksAt B
Person: 임학수 Institution: 김일성종합대학 A worksAt B
Person: 임학수 Group: 시부회(詩部會) A isMemberOf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https://www.siyoillib.com/ReadingPoem/AuthorDetail?dbid=484
  2. 김재용 (2002년 8월). "친일문학 작품목록". 《실천문학》 (67호): 123~148쪽. 2007년 9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9월 26일에 확인함.
  3. [월북작가로 알려졌으나 가족 측의 증언에 따르면 납북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