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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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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23년 4월 장덕수는 포틀랜드 오레곤대학 신문학과를 거쳐 1924년 10월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당시 세계 사회학계의 거두 기딩스의 지도를 받게 되었고, 세계 학계 최초로 국가를 지배계급의 수단이자, 계급투쟁의 산물로 간주하는 마르크스 계급국가론의 오류와 허구성(경제결정론, 계급투쟁론, 국가만능론, 국가소멸론, 프롤레타리아독재국가론)을 폭로한 “마르크스의 국가관 비판” 이란 제하의 석사 논문을 집필했다. 장덕수가 재구성한 마르크스 국가론의 본질은 국가는 경제적 토대에 의해 규정되는 상부구조이며, 경제적 이익을 다투는 적대적 계급투쟁의 산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계급적 성격을 갖는다. 계급투쟁이 없는 국가는 있을 수 없으며, 국가는 계급지배와 계급착취의 수단이라는 '계급국가론'으로 정식화시켰다.<ref>사령관쌤,"장덕수와 자유주의 국가론(정안기)",『네이버 블로그 - 사령관쌤의 임시정부』<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작성일: 2024년 04월 21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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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3일 (목) 00:5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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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수(張德秀)
설산 장덕수.jpg
출처 : 위키피디아 인물정보
 
한글명 장덕수 한자명 張德秀 영문명 Jang Deoksu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894년 몰년 1947년 출신지 황해도 재령군 전공 경제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장덕수는 일제강점기의 정치인, 언론인, 교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4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서 학사취득 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임시정부에 가담했다. 흥업구락부 사건 전후로 친일파로 변절하여 일제단체에 참여했다.




생애


출생 및 청년기

장덕수는 1894년 12월 10일 조선 황해남도 재령 남율면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결성이다. 아버지는 장붕도(張鵬道)인물 , 어머니는 김현묘(金炫妙)인물이다. 그는 김구인물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이후 황해도 해주 연희보통학교기관에 진학하였다.


일본 유학 생활

와세다 대학기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장덕수는 신익희인물와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를 같이 다니며 학업보다는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활동에 주력하였다.[1]


동아일보 창간 및 사퇴

1920년 김성수, 송진우 등과 함께 동아일보의 창간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동아일보의 제1대 주필에 취임하였다. 이후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조선청년연합회와 서울청년연합회의 지도자로 추대된다. 1936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우승하였는데, 동아일보의 기자 이길용이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운동복에 달린 일장기를 삭제한 채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29일자부터 무기정간처분을 당하였다.[2]이 사건으로 이길용은 해직 당하고 동아일보 부사장 장덕수도 사퇴를 하게 된다.


흥업구락부 사건

흥업구락부는 1925년 3월 23일 서울에서 조직된 기독교 및 기호파 계열의 항일비밀결사로, 이승만이 이끄는 대한인동지회의 국내지부 역할을 하였다. 신흥우·이상재·구자옥·유억겸·이갑성·박동완·안재홍 등의 인물들과 종교인·변호사·교육자·의사·실업인들로 구성되었다.[3]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한국 독립운동가 탄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1938년 2월~9월 사이에 신흥우·구자옥 등 흥업구락부 관련자 54명이 경성서대문경찰서에 검거되었다. 이들은 강제로 전향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기소유예로 감경되었고, 성명서 내용에 따라 흥업구락부는 해산되었다.[4]장덕수는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이와 동시에 장덕수는 독립운동을 후회한다는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직했다. 이 일을 계기로 장덕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된다.


연구


"마르크스의 국가관 비판”논문 집필

1923년 4월 장덕수는 포틀랜드 오레곤대학기관신문학과를 거쳐 1924년 10월 컬럼비아대학기관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당시 세계 사회학계의 거두 기딩스인물의 지도를 받게 되었고, 세계 학계 최초로 국가를 지배계급의 수단이자, 계급투쟁의 산물로 간주하는 마르크스 계급국가론의 오류와 허구성(경제결정론, 계급투쟁론, 국가만능론, 국가소멸론, 프롤레타리아독재국가론)을 폭로한 “마르크스의 국가관 비판” 이란 제하의 석사 논문을 집필했다. 장덕수가 재구성한 마르크스 국가론의 본질은 국가는 경제적 토대에 의해 규정되는 상부구조이며, 경제적 이익을 다투는 적대적 계급투쟁의 산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계급적 성격을 갖는다. 계급투쟁이 없는 국가는 있을 수 없으며, 국가는 계급지배와 계급착취의 수단이라는 '계급국가론'으로 정식화시켰다.[5]

  1. 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116p
  2. 일장기말소사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0년 10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4. 흥업구락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사령관쌤,"장덕수와 자유주의 국가론(정안기)",『네이버 블로그 - 사령관쌤의 임시정부』online,작성일: 2024년 0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