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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문2번= 필자가 앞서 **靑丘學叢(청구학총)** 제13호에 「浿水考(패수고)」란 一(일) 小篇(소편)을 발표하였는데, 그것이 前記(전기) 都宥浩(도유호)씨에게 일부 건너가게 되매, (굴러서) 슬라빅씨에게까지 接目(접목) 일독되었던 모양이다. 씨는 拙稿(졸고)에 대하여 (大體(대체)는 찬동이지만) 약간 의아의 處(처), 이의의 부분이 있다고 하여, 一(일) 논고(附後(부후))를 日漢文(일한문)으로 草(초)하여, 도씨를 통하여 나에게 보냈다. 내가 이를 접수한 때는 客臘(객납) 念日(염일)경이었다. 해외 累萬里(누만리) 異域(이역)에서, 더구나 씨와 같은 篤工(독공) 同攻(동공)의 士(사)로부터, 이러한 귀중한 敎評(교평)을 蒙惠(몽혜)함에 대하여, 나는 크게 光榮(광영)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또한 깊이 씨에게 감사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씨의 글월은 물론 씨의 자필에 係(계)한 것으로, 누구든지 보면 그 자획의 무르녹음이 서양인의 筆(필)이라고는 곧이 듣지 아니할 만큼 되었다. 墺國(오국) 인사 중에도 이렇게 조선사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이가 있나 하는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는 먼 異域(이역)에 한 훌륭한 벗을 얻음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씨의 호의에 갑(報(보))기 위하여, 또 씨의 이견에 불복하는 점도 있어, 이에 拙文(졸문)을 草(초)하여 씨의 再敎(재교)를 仰(앙)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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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문3번= 슬라빅씨의 余(여)에게 致(치)한 書(서)의 제목은 즉 「李丙燾(이병도) 저 **浿水考(패수고)**를 읽고」란 것이다. 이 書題(서제)만으로는 「浿水考(패수고)」 전체에 관한 평론같이 보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씨의 논고를 통독하여 보면, 浿水(패수) 그것에 관하여는 하등의 평설과 이론을 보임이 없고, 또 都宥浩(도유호)씨의 서신에 의하여도 씨의 말이 浿水(패수)에 관한 의견을 들어 보던 중 가장 만족한 해답을 나의 논문에서 처음 보았노라고-이는 물론 과찬이지만-하였다 함으로, 나의 浿水說(패수설)의 주 요점에 대하여는 대체로 찬동의 뜻을 가져 이의가 없는 것 같고, 다만 拙稿(졸고) 중의 部分論(부분론) 枝葉論(지엽론)이라고 할 만한 **漢書(한서)**地理志(지리지) 玄菟郡(현토군) 西蓋馬縣條(서개마현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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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문4번=西蓋馬(馬訾水西北入鹽難水西南至西安平入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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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문5번=云云의 註句(주구)에 관한 해석과, 여기 보이는 馬訾水(마자수) 及(급) 西蓋馬縣(서개마현)의 위치에 就(취)하여 씨는 나와 견해를 달리한다는 것이며, 그리고 또 여기의 鹽難水(염난수)(즉 鴨綠江(압록강))의 鹽難(염난)과 소위 東明傳說(동명전설) 중에 나타나는 ‘大水(대수)’의 掩淲(엄표) 淹ima掩施(엄?엄시) 掩滯(엄체) 奄利(엄리) 등 종종의 칭호가 古音(고음) 상 결국 동일하다는 것, 저 ‘挹婁(읍루)’의 古音(고음)도 이들과 유사하다는 것, 玄菟郡(현토군) 上殷台縣(상은태현)의 ‘殷台(은태)’의 古音(고음)도 또한 이들과 유사한 즉 上殷台縣(상은태현)의 위치는 鹽難水(엄난수)의 중류 혹 상류에 있었다고 생각된다는 것이, 그의 副論(부론)이다. (그러나 씨의 이들 新說(신설)이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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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5일 (토) 16:52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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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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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슬라빅氏에 答함-附 슬라빅氏 論考- 학술지 테스트테스트 수록권호 력사과학 1955-1 발행기관 테스트테스트
저자 이병도 역자 테스트 집필일자 1930년03월12일 게재연월 1930년03월
시작쪽 009쪽 종료쪽 040쪽 전체쪽 032쪽 연재여부 @ 범주 자료 분야 어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본문


슬라빅(Alexander Slawik)씨는, 이미 한번 東亞日報紙(동아일보지) 상에도 소개된 일이 있거니와, 현 墺地利國(오지리국)의 一(일) 靑年史家(청년사가)로서 동양학 특히 朝鮮史學(조선사학)을 전공하고 있는 貴異(귀이)한 학자이다. 在墺國(재오국) 유학 중의 동포 都宥浩(도유호)씨의 말을 들으면 슬라빅씨는 방금 朝鮮(조선) 고대의 민족 이동에 관하여 긴 논문(학위논문)을 쓰고 있는데, 씨의 학식과 조선사에 대한 조예가 상당히 깊어, 그 논문에서 기대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한다. 씨는 한문과 日文(일문)을 能讀(능독)할 뿐만 아니라, 善熟(선숙)히 이를 쓰고 짓고 하며, 또 조선어에 관하여도 매우 유의하고 있다는 篤工(독공)의 士(사)이다.
쪽수▶P150-1슬라빅(Alexander Slawik)氏는, 이미 한번 東亞日報紙上에도 紹介된 일이 있거니와, 現 墺地利國의 一 靑年史家로서 東洋學 특히 朝鮮史學을 專攻하고 있는 貴異한 學者이다. 在墺國留學 중의 同胞 都宥浩氏의 말을 들으면 슬라빅氏는 方今 朝鮮古代의 民族移動에 관하여 긴 論文(學位論文)을 쓰고 있는데, 氏의 學識과 朝鮮史에 대한 造詣가 相當히 깊어, 그 論文에서 期待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한다. 氏는 漢文과 日文을 能讀할 뿐만 아니라, 善熟히 이를 쓰고 짓고 하며, 또 朝鮮語에 관하여도 매우 留意하고 있다는 篤工의 士이다.
필자가 앞서 **靑丘學叢(청구학총)** 제13호에 「浿水考(패수고)」란 一(일) 小篇(소편)을 발표하였는데, 그것이 前記(전기) 都宥浩(도유호)씨에게 일부 건너가게 되매, (굴러서) 슬라빅씨에게까지 接目(접목) 일독되었던 모양이다. 씨는 拙稿(졸고)에 대하여 (大體(대체)는 찬동이지만) 약간 의아의 處(처), 이의의 부분이 있다고 하여, 一(일) 논고(附後(부후))를 日漢文(일한문)으로 草(초)하여, 도씨를 통하여 나에게 보냈다. 내가 이를 접수한 때는 客臘(객납) 念日(염일)경이었다. 해외 累萬里(누만리) 異域(이역)에서, 더구나 씨와 같은 篤工(독공) 同攻(동공)의 士(사)로부터, 이러한 귀중한 敎評(교평)을 蒙惠(몽혜)함에 대하여, 나는 크게 光榮(광영)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또한 깊이 씨에게 감사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씨의 글월은 물론 씨의 자필에 係(계)한 것으로, 누구든지 보면 그 자획의 무르녹음이 서양인의 筆(필)이라고는 곧이 듣지 아니할 만큼 되었다. 墺國(오국) 인사 중에도 이렇게 조선사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이가 있나 하는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는 먼 異域(이역)에 한 훌륭한 벗을 얻음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씨의 호의에 갑(報(보))기 위하여, 또 씨의 이견에 불복하는 점도 있어, 이에 拙文(졸문)을 草(초)하여 씨의 再敎(재교)를 仰(앙)하는 바이다.
쪽수▶P150-2筆者가 앞서 󰡔靑丘學叢󰡕 第13號에 「浿水考」란 一小篇을 發表하였는데, 그것이 前記 都宥浩氏에게 一部 건너가게 되매, (굴러서) 슬라빅氏에게까지 接目 一讀되었던 모양이다. 氏는 拙稿에 대하여 (大體는 贊同이지만) 若干 疑訝의 處, 異議의 部分이 있다고 하여, 一論考(附後)를 日漢文으로 草하여, 都氏를 통하여 나에게 보냈다. 내가 이를 接受한 때는 客臘 念日頃이었다. 海外 累萬里 異域에서, 더구나 氏와 같은 ▶P151-1篤工 同攻의 士로부터, 이러한 貴重한 敎評을 蒙惠함에 대하여, 나는 크게 光榮으로 생각하는 同時에 또한 깊이 氏에게 感謝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氏의 글월은 물론 氏의 自筆에 係한 것으로, 누구든지 보면 그 字劃의 무르녹음이 西洋人의 筆이라고는 곧이듣지 아니 할 만큼 되었다. 墺國人士 중에도 이렇게 朝鮮史를 眞摯하게 硏究하는이가 있나 하는 感嘆을 禁치 못하였다. 우리는 먼 異域에 한 훌륭한 벗을 얻음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氏의 好意에 갑(報)기 爲하여, 또 氏의 異見에 不服하는 點도 있어, 이에 拙文을 草하여 氏의 再敎를 仰하는 바이다.
슬라빅씨의 余(여)에게 致(치)한 書(서)의 제목은 즉 「李丙燾(이병도) 저 **浿水考(패수고)**를 읽고」란 것이다. 이 書題(서제)만으로는 「浿水考(패수고)」 전체에 관한 평론같이 보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씨의 논고를 통독하여 보면, 浿水(패수) 그것에 관하여는 하등의 평설과 이론을 보임이 없고, 또 都宥浩(도유호)씨의 서신에 의하여도 씨의 말이 浿水(패수)에 관한 의견을 들어 보던 중 가장 만족한 해답을 나의 논문에서 처음 보았노라고-이는 물론 과찬이지만-하였다 함으로, 나의 浿水說(패수설)의 주 요점에 대하여는 대체로 찬동의 뜻을 가져 이의가 없는 것 같고, 다만 拙稿(졸고) 중의 部分論(부분론) 枝葉論(지엽론)이라고 할 만한 **漢書(한서)**地理志(지리지) 玄菟郡(현토군) 西蓋馬縣條(서개마현조)의
쪽수▶P151-2슬라빅氏의 余에게 致한 書의 題目은 즉 「李丙燾 著 󰡔浿水考󰡕를 읽고」란 것이다. 이 書題만으로는 「浿水考」 全體에 관한 評論같이 보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氏의 論考를 通讀하여 보면, 浿水 그것에 관하여는 何等의 評說과 異論을 보임이 없고, 또 都宥浩氏의 書信에 의하여도 氏의 말이 浿水에 관한 意見을 들어 보던 중 가장 滿足한 解答을 나의 論文에서 처음 보았노라고-이는 물론 過讚이지만-하였다 함으로, 나의 浿水說의 主要點에 대하여는 대체로 贊同의 뜻을 가져 異議가 없는 것 같고, 다만 拙稿 중의 部分論 枝葉論이라고 할 만한 󰡔漢書󰡕地理志 玄菟郡 西蓋馬縣條의
西蓋馬(馬訾水西北入鹽難水西南至西安平入海)
쪽수▶P151-3西蓋馬(馬訾水西北入鹽難水西南至西安平入海)
云云의 註句(주구)에 관한 해석과, 여기 보이는 馬訾水(마자수) 及(급) 西蓋馬縣(서개마현)의 위치에 就(취)하여 씨는 나와 견해를 달리한다는 것이며, 그리고 또 여기의 鹽難水(염난수)(즉 鴨綠江(압록강))의 鹽難(염난)과 소위 東明傳說(동명전설) 중에 나타나는 ‘大水(대수)’의 掩淲(엄표) 淹ima掩施(엄?엄시) 掩滯(엄체) 奄利(엄리) 등 종종의 칭호가 古音(고음) 상 결국 동일하다는 것, 저 ‘挹婁(읍루)’의 古音(고음)도 이들과 유사하다는 것, 玄菟郡(현토군) 上殷台縣(상은태현)의 ‘殷台(은태)’의 古音(고음)도 또한 이들과 유사한 즉 上殷台縣(상은태현)의 위치는 鹽難水(엄난수)의 중류 혹 상류에 있었다고 생각된다는 것이, 그의 副論(부론)이다. (그러나 씨의 이들 新說(신설)이 어떠할지?)
쪽수▶P151-4云云의 註句에 관한 解釋과, 여기 보이는 馬訾水 及 西蓋馬縣의 ▶P152位置에 就하여 氏는 나와 見解를 달리한다는 것이며, 그리고 또 여기의 鹽難水(즉 鴨綠江)의 鹽難과 소위 東明傳說 중에 나타나는 ‘大水’의 掩淲 淹 掩施 掩滯 奄利等 種種의 稱號가 古音上 結局 同一하다는 것, 저 ‘挹婁’의 古音도 이들과 類似하다는 것, 玄菟郡 上殷台縣의 ‘殷台’의 古音도 또한 이들과 類似한 즉 上殷台縣의 位置는 鹽難水의 中流 혹 上流에 있었다고 생각된다는 것이, 그의 副論이다. (그러나 氏의 이들 新說이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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