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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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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8일 (금) 16:11 기준 최신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윤예송KNU2025)이 작성했습니다.




김영석(金永錫)
출처 :
 
한글명 김영석 한자명 金永錫 영문명 Kim Young-Seok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몰년 출신지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해방 이후 「지하로 뚫린 길」, 「격랑」 등을 저술한 작가. 소설가, 평론가이다. [1]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산하 문학대중화운동위원회 위원장으로 평론과 문단활동을 하였고, 소설들은 주로 노동자의 현실을 담아낸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2] 김영석은 1948년의 정부수립과 1950년 6.25 전쟁 사이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3]


생애


출생과 가계 및 학력

김영석은 그의 생애에 대한 자료가 빈곤하여 전기적 사실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4] 그러나 윤희영은 김영석이 1913년 10월 7일생이고 5남 1녀 중 장남이었으며 동성상업학교기관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가정형편으로 중퇴하고 회사에 취업했다고 논의하고 있다.[5] 현재까지 확인되는 가장 이른 기록은 1937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평론 「조선시(朝鮮詩)의 편영(片影)」원고 으로, 이 글을 통해 그의 이름이 처음으로 문단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6]


문단 입문과 초기 활동

김영석의 창작 활동은 1938년「비둘기의 유혹(誘惑)」이 『동아일보』기관 주최 신인문학콩쿨사건에 당선되면서 시작하였다.[7] 이후 1939년 10월 24일부터 11월 26일까지「춘엽부인(春葉夫人)」이라는 작품을 연재하였고 유진오(兪鎭五)인물의 추천으로 『인문평론』학술지에 「월급날 일어난 일들」(1940)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가로서 활동하였다.[8] 1930년대 『동아일보』신인문학콩쿨은 "신인이 열망하던 문단에의 등용문"으로 불렸고, 김영석은 이 제도를 통해 발굴된 대표적인 신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9]


해방 후 문학 활동과 좌익 문학 운동

광복 이후 김영석은 1946년에 「혜란의 수기」·「코」·「지게꾼」·「금전문제」·「전차운전수」·「지하로 뚫린 길」·「가방」·「폭풍」등 여러 단편을 발표하고, 1948년에는 장편소설 「격랑(激浪)」을 출간하였다.[10] 특히 「전차운전수」와 「지하로 뚫린 길」, 「폭풍」등은 노동자의 의식 변화와 노동운동의 필연성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소개된다.[11] 또한 광복기 주요 이론가로 많은 평론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평론은 해방기 좌파문학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주요 평론으로는 「문예의 대중화문제-기타」(1946)·「민족문학론」(1947)·「문학옹호를 위한 투쟁」(1948) 등이 있다.[12]





연구


문학 대중화와 '문화 써클' 이론 구축

김영석은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서울지부의 문학대중화운동위원회단체 핵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평론 「문예의 대중화 문제·기타」(신세대, 1946.7), 「문화 써-클의 성격-문학대중화를 위하여」(현대일보, 1946.8.27.-28), 「문단 1년간의 업적」(중외신문 1946.10), 「문학자의 새로운 임무-문화공작자로서의 문학자」(백제 1947.2), 「대중문학에 관한 문제들」(문화, 1947.12), 「문학옹호를 위한 투쟁-구국문학의 이론과 실체」(조선중앙일보, 1948.6.20.~22) 등을 통해 문학 대중화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직접 제시했다.[13] 그는 문화 써클을 "대중 자신의 조직체로서, 문학과 문화를 감상·연구하기 위해 동호인들이 만든 소집단이며, 목적은 대중의 계몽·변화·대중과의 조직적 연락에 있다"고 규정하면서 개인 작가 중심 창작에서 집단·조직 활동 중심의 문학 실천 방식으로의 전환을 주장했다.[14] 또한 문학 대중화는 작가 개인이 작품을 더 많이 쓰는 문제가 아니라, 문화 써클과 같은 조직을 통해 근로 대중이 스스로 문화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라고 보았고, 이 때문에 해방기에는 창작과 평론을 병행하며 "문학 운동가"이자 "이론가"로서의 이력을 동시에 쌓았다.[15]


고전소설 『이춘풍전』개작을 통한 자기 시대 비판

김영석은 1947년 협동문고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고전소설 『이춘풍전』을 개작·간행했는데,[16] 이는 단순한 옛 이야기 재현이 아니라, 해방 직후 사회 현실과 자신의 문학 대중화·민족문학 구상을 담아낸 현대소설로의 변환 작업이었다.[17] 그가 손을 댄 『이춘풍전』에서는, 방탕한 가장 이춘풍이 단순한 풍자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매관매직이 횡행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부패한 지배층과 얽혀드는 인물로 재구성되어 물질주의·가부장제 뿐 아니라 당대 부패한 위정자들의 전횡까지 비판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18] 이 개작에서 김영석은 주인공을 보다 근대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로 형상화하고, 서사의 주제를 양가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고전의 도식적 인과관계를 벗어나 복잡한 계급, 도덕, 욕망의 층위를 가진 인물 서사를 만들고자 했다.[19] 즉, 김영석은 해방 직후의 문학운동과 자신의 문제의식(민중·계급·부패 비판)을 반영해 전통을 현재의 정치·사회 현실과 직접 접속시키는 실험을 수행한 것이다.[20]


월북 이후 전쟁소설 연작과 '고지전'서사 구축

김영석은 월북사건 이후 북한에서 「화식병」(1951)·「승리」(1952)·「젊은 용사들」(1954)·「원쑤를 잊지말라」(1957)·「지휘관」(1958) 등 전쟁과 군대를 다룬 소설들을 연속적으로 발표했다.[21] 이 작품들에서 김영석은 특정 고지의 탈환과 재탈환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며, 전투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해 한국전쟁이 가진 고지전 중심의 전투 양상을 문화적으로 구조화하는데 집중했다.[22] 특히 「화식병」에서는 탄우를 뚫고 전투원에게 밥을 나르는 작은 체구의 희극적 인물 '박씨근'을 내세워, 전면에 나서는 병사가 아니더라도 후방 병참과 작은 영웅들이 전쟁 수행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강조하며 소년, 민간인, 비전투원의 예기치 않은 용기를 반복적으로 부각시켰다.[23] 이처럼 김영석은 월북 이후 작품에서 전쟁을 단순한 선전용 배경이 아니라, 고지전과 개별 인물의 성장, 희생, 유머가 뒤섞인 복합적인 공간으로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전쟁 서사 축과 인물형을 꾸준히 개발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24]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김영석 Institution: 동성상업학교 A graduates B
Person: 김영석 Article: 「조선시(朝鮮詩)의 편영(片影)」 A isWriterOf B
Person: 김영석 Event: 신인문학콩쿨 A won B
Person: 김영석 Group: 문학대중화운동위원회 A isMemberOf B
Event: 월북 Person: 김영석 A isRelatedTo B
Article: 「조선시(朝鮮詩)의 편영(片影)」 Institution: 『동아일보』 A publisher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 김정화, 「북한에서 발표된 김영석 소설 고찰 ─「보배손」을 중심으로」, 『국제어문』57, 국제어문학회, 2013, 307~331쪽.
• 『김영석 (金永錫)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장두식, 「김영석의 『이춘풍전』 연구」, 『현대소설연구』84, 한국현대소설학회, 2021, 401~429쪽.
• 손동호, 「1930년대 『동아일보』 신인문단 연구 — ‘신인문학콩쿨’을 중심으로」, 『인문논총』73,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6, 253~285쪽.
• 『이춘풍전 (李春風傳)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송소라, 「고전소설 <이춘풍전>의 영화적 수용과 변모에 관한 연구」, 『우리문학연구』63, 우리문학회, 2019, 7~52쪽.
• 『김영석[Kim Yongsokonline,20세기 북한예술문화사전.
• 이경재, 「김영석의 전쟁소설 고찰 -박영준 전쟁소설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중인문학연구』39, 한중인문학회, 2013, 127~151쪽.






주석


  1. 김영석 (金永錫)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김정화, 「북한에서 발표된 김영석 소설 고찰 ─「보배손」을 중심으로」, 『국제어문』57, 국제어문학회, 2013, 307쪽.
  3. 김영석[Kim Yongsokonline,20세기 북한예술문화사전 .
  4. 김영석 (金永錫)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장두식, 「김영석의 『이춘풍전』 연구」, 『현대소설연구』84, 한국현대소설학회, 2021, 404쪽.
  6. 김영석 (金永錫)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김영석 (金永錫)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 김영석 (金永錫)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9. 손동호, 「1930년대 『동아일보』 신인문단 연구 — ‘신인문학콩쿨’을 중심으로」, 『인문논총』73,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6, 253~285쪽.
  10. 김영석 (金永錫)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1. 김영석 (金永錫)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2. 김영석 (金永錫)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3. 장두식, 「김영석의 『이춘풍전』 연구」, 『현대소설연구』84, 한국현대소설학회, 2021, 407쪽.
  14. 장두식, 「김영석의 『이춘풍전』 연구」, 『현대소설연구』84, 한국현대소설학회, 2021, 408쪽.
  15. 장두식, 「김영석의 『이춘풍전』 연구」, 『현대소설연구』84, 한국현대소설학회, 2021, 409쪽.
  16. 이춘풍전 (李春風傳)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7. 장두식, 「김영석의 『이춘풍전』 연구」, 『현대소설연구』84, 한국현대소설학회, 2021, 401~429쪽.
  18. 송소라, 「고전소설 <이춘풍전>의 영화적 수용과 변모에 관한 연구」, 『우리문학연구』63, 우리문학회, 2019, 7~52쪽.
  19. 장두식, 「김영석의 『이춘풍전』 연구」, 『현대소설연구』84, 한국현대소설학회, 2021, 401~429쪽.
  20. 장두식, 「김영석의 『이춘풍전』 연구」, 『현대소설연구』84, 한국현대소설학회, 2021, 401~429쪽.
  21. 김영석 (金永錫)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2. 이경재, 「김영석의 전쟁소설 고찰 -박영준 전쟁소설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중인문학연구』39, 한중인문학회, 2013, 127~151쪽.
  23. 이경재, 「김영석의 전쟁소설 고찰 -박영준 전쟁소설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중인문학연구』39, 한중인문학회, 2013, 127~151쪽.
  24. 이경재, 「김영석의 전쟁소설 고찰 -박영준 전쟁소설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중인문학연구』39, 한중인문학회, 2013, 127~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