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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서정시'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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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9일 (금) 23:27 기준 최신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 24-1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 한규석(CNU2024)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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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북원(金北原)
김북원.JPG
출처 : http://www.cybernk.net/common/ImgPopup.aspx?iid=A50502317407
 
한글명 김북원 한자명 金北原 영문명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911년 몰년 1984년 출신지 함경남도 흥원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그의 창작은 『이때는 새벽』(1927), 『폭풍우』서적(1928)가 창작된 1920년 말부터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조국』, 『운로봉』, 『대지의 아침』 등을 저술한 시인. 평론이다. 6.25 전쟁 중에도 계속 활동을 이어나감. 그는 주로 농촌주제작품을 많이 다루었으며 거기에서 소박하고 꾸밈없는 서정으로 농민들의 생활감정을 진실하게 노래하였다.[1]


생애


연혁

그는 주로 시나 동요, 동시 등을 주로 창작하였고 광복후 함경북도인민위원회단체 문화과장으로 있었다. 6.25 전쟁 전후에는 작가동맹 시분과위원장, 작가동맹 함경도지부장 등의 사업을 하였고 문예총 강원도위원회단체장을 역임하였다. [2]


성장 배경

함경남도 흥원군의 빈농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일찍 시 창작을 시작해서 주로 체험적인 농촌 소재의 동요, 동시를 썼다. 그의 시는 대부분 농촌 소재를 위하괴 내면적 열정이 짙은 성향으로 이해되고 있다. 1963년부터 현역작가로서 현지에서 창작작업을 해오던 그는 1973년 12월 7알에 작고했다고 전한다.[3]


사상

여러 작품들에서 나타난 김북원의 공통된 사상적 흐름은 김일성 수령에 대한 흠모와 충성을 노래하거나, 김일성의 혁명업적을 우러러 찬양하는 인민들의 열정을 시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다.으레 북한문학이 지향하고 있는 전형적인 창작기법으로 그의 작품도 창작되어졌던 것이다.[4]





연구


서정시'6월 14일'

1945년 6월 14일 북조선 민전 산하 가 정당, 사회단체 열성자 대회에서 김일성이 행한 '민주주의 조선 림시 정부 수립과 관련하여 각 정당, 사회단체들은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라는 연설에 대한 농민들의 반응을 시로 나타낸 것이다. 이 시에서는 토지개혁 속에 나날이 행복하여지고 보람을 느끼는 농민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서정시에 나오는 '광장에서 부르는 노래'는 6.25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김일성을 우러러 경축하는 인민들의 감격과 기쁨을 노래한 작품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불멸의 혁명업적과 공산주의적 풍모가 전쟁을 승리를 이끌었다고 말하지만, 우리 남한의 시각으로 보면 허위와 기만으로 선동되어진 시문학으로 볼 수 밖에 없가. 또한 '열두삼천리벌의 새 노래'는 메말랐던 대지에 관개수가 흘러넘치는 들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기쁨과 긍지를 형상화하였다. 이렇게 김일성이 마련해준 협동화된 사회주의 농촌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기쁨을 노래하였지만, 이것은 실은 사회주의 대건설을 고무 충동하기 위한 북한 사회의 혁명적인 총노선 중의 하나인 협동노농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5]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Book: 폭풍우 Person: 김북원 A creator B
Person: 김북원 Group: 함경북도인민위원회 A isMemberOf B
Person: 김북원 Group: 문예총강원도위원회 A isMemberOf B



Timeline


▶Timeline임베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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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1]online『네이버지식백과』
  2. [2]online『네이버지식백과』
  3. [3]online『네이버지식백과』
  4. [4]online『네이버지식백과』
  5. [5]online『네이버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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