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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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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로문학처럼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다. 빈궁을 처절하게 체험한 사람이 그것을 호소(呼訴)하고 절규(絶叫)하면서 발언하는 소박한 반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문학처럼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다. 빈궁을 처절하게 체험한 사람이 그것을 호소(呼訴)하고 절규(絶叫)하면서 발언하는 소박한 반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빈궁을 소재로 하였다는 점, 빈궁에 대한 반항이 개인적 차원의 것이고 자연발생적이라는 점에서 프로문학의 초기단계인 경향문학(傾向文學)의 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빈궁을 소재로 하였다는 점, 빈궁에 대한 반항이 개인적 차원의 것이고 자연발생적이라는 점에서 프로문학의 초기단계인 경향문학(傾向文學)의 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고국(故國)」·「기아(饑餓)와 살육(殺戮)」·「홍염(紅焰)」 등이 있다. 서술 방식이 서간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어 ‘호소’와 ‘절규’라는 내용을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808 최서해]』<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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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9일 (금) 23:19 기준 최신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 24-1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 최태림(JBNU2024)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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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송(崔鶴松)
최서해.jpg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한글명 최학송 한자명 崔鶴松 영문명 CHOI HAKSONG 가나명 이칭 서해(曙海)
성별 남성 생년 1901년 1월 21일년 몰년 1932년 7월 9일(31세)년 출신지 함경북도 성진군 학중면 임명동리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탈출기', '기아와 살육' 등 문단에 이름을 날렸지만 평생을 가난과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제강점기 시대 비운의 작가.


생애


"유년기"

1901년 1월 21일, 함경북도 성진군 학중면 임명동리에서 소작인 겸 한의사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한때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 함경북도 길주군 학성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09년에 아버지가 간도로 이주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성진에서 거주하였다. 최서해는 한문 공부와 보통학교 중퇴가 학업의 전부였지만, 《청춘》, 《학지광》 등의 문학 잡지 등을 읽으면서 스스로 문학 공부를 하였다. 1918년 간도 등지를 유랑하면서 나무장사‧두부장사‧부두노동자‧음식점 배달꾼 등 최하층 생활을 경험하는데, 이 체험이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다.[1]


"작가 활동 시작"

1924년 초에 단편 소설 「토혈」을 『동아일보』에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상경한 그는, 10월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고국」을 발표했다. 1925년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였고, 여기에 극도로 빈궁했던 간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탈출기」(1925)를 발표함으로써, 당시 문단에 충격을 줌과 동시에 작가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박돌의 죽음」(1925), 「기아와 살육」(1925)과 같은 문제작을 발표했고, 카프에도 가입했다. [2]


"작가로서의 내리막길과 죽음"

이후에도 그는 많은 단편들을 썼으나, 그 수준이나 경향이 이들 초기 작품의 그것들을 넘어서지 못했고 오히려 수준이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1929년 카프를 탈퇴하였고, 1931년 『매일신보』의 학예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1932년 7월 9일 사망했다. [3]





연구


<탈출기>

이 ‘험악한 제도’를 사회체제나 경제구조의 소산으로 의식하였을 수도 있고, 주인공이 ‘××단’에 입단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일제시대에 대한 시대의식의 소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문학처럼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다. 빈궁을 처절하게 체험한 사람이 그것을 호소(呼訴)하고 절규(絶叫)하면서 발언하는 소박한 반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빈궁을 소재로 하였다는 점, 빈궁에 대한 반항이 개인적 차원의 것이고 자연발생적이라는 점에서 프로문학의 초기단계인 경향문학(傾向文學)의 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고국(故國)」·「기아(饑餓)와 살육(殺戮)」·「홍염(紅焰)」 등이 있다. 서술 방식이 서간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어 ‘호소’와 ‘절규’라는 내용을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4]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최서해 Institution: 시대일보 A workAt B
Person: 최서해 Institution: 경성일보 A workAt B
Person: 최서해 Institution: 경성매일신보 A workAt B
Person: 최서해 Group: 카프 A worksAt B
Person: 최서해 Group: 상하이 고려공산당 A isMemberOf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 최서해online, 위키백과
  • 최서해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최서해online, 네이버지식백과.





주석


  1. 최서해online, 위키백과.
  2. 최서해online, 네이버 지식백과.
  3. 최서해online, 네이버지식백과.
  4. 최서해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