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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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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극장의 전속 작가였던 임선규가 대표를 맡았고, 단원으로는 황철과 차홍녀를 비롯해 서일성, 양백명, 김선초, 박영신, 문정복, 이정순 등이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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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3일 (목) 20: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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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한자명)
출처 :
 
한글명 김승구 한자명 金承久 영문명 Kim SeungKu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1914년 몰년 1994년 출신지 경기도 수원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본명은김상복인물으로, 일제강점기의 연극인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나리오 작가이며 일본 메이지 대학교기관에서 수학했다.


생애


작품활동

김승구인물193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단막 희곡 〈유민(流民)〉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39년 협동예술좌를 창립하였고, 1945년 조선총독부가 후원하는 제3회 연극경연대회에 〈산하유정(山河有情)〉을 출품했다. 안영일이 연출하고 극단 아랑이 공연한 신하유정서적은 이 대회에서 단체상과 작품상, 연출상, 장치상, 연기상을 휩쓸었으나, 내용상 친체제적 요소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1]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연극/영화 부문에 선정되었다


광복 후 활동

조선연극건설본부에 참여했다가 송영, 강호, 나웅 등과 함께 탈퇴,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을 창립하는 등 좌익 계열에서 앞장서 활동했다.[2] 두 단체는 결국 다시 통합하여 조선연극동맹이 결성되었는데, 김승구는 연극동맹기관의 서기장을 맡았다.


월북 후 활동

194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초의 극영화로 유원준, 문예봉이 주연을 맡은 《내 고향》의 시나리오를 썼다.[3] 평양연극영화대학의 교수를 지냈고[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화계의 1세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1994년 부음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언론에 실렸다.






연구


아랑극단

연극 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1939년 8월에 창립된 상업 극단이다. 아랑은 신파극으로 큰 성공을 거둔 동양극장과 관련이 깊다. 동양극장을 운영하던 홍순언과 배구자 부부 가운데 홍순언이 사망한 뒤 최독견이 극장 경영에 실패하면서 파산한 사건이 창립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1] 동양극장 전속 배우로 인기를 누렸던 황철과 차홍녀 등은 이탈하여 동대문 인근의 제일극장을 중심으로 새 극단을 결성했다.

창립작은 1939년 9월 27일 대구극장 창립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순회 공연을 가진 《청춘극장》이었다. 신생 극단이지만 청춘좌 출신의 유명 배우들이 조직하고 유명한 극작가들도 영입한 아랑에는 많은 관심이 쏠려렸다.

1940년에는 조선연극협회에 가입하였다. 아랑은 초반에는 동양극장의 전통을 잇는 순정극을 공연했으나, 이후 일제 강점기 말기의 국민연극 시대에 황민화와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작품을 공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동양극장의 전속 작가였던 임선규가 대표를 맡았고, 단원으로는 황철과 차홍녀를 비롯해 서일성, 양백명, 김선초, 박영신, 문정복, 이정순 등이 포함되었다.


작품

《황금광상곡》

《로나부인 행장기》

《화전지대》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김승구 Person: 김상복 A hasSon B
Person: 김승구 Institution: 일본 메이지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김승구 Institution: 연극동맹 A isMemberOf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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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










분류: Person2024-1 BigData(S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