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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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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리북명의 소설은 <답싸리>(1937)기점으로 전-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전기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민중들의 삶을 구제적으로 형상화한 노동 소설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공장노동자에서 지식인, 도시빈민, 화전민 등으로 시선이 확대되며, 보다 구체성을 띤 인물을 등장시키게 된다. 인정과 세태의 인간적인 측면을 그리면서 건강한 생명력과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한편, 사회적 모순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하지는 못하였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후기에 속하는 대표작들로 <아들>(1937), <칠성암><야화>(1939), <화전민>(1940), <빙원>(1942) 등을 들 수 있으며, 평론 <사실주의적 절대기술>(1935), <주제의 적극성 기타><공장문학과 농민문학>(1936), <문학건설에 자할 신제창><자기비판과 소설의 순수성 파악>(1939) 등을 발표하였다. <ref>문화포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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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북명의 작품세계는 <답싸리>(1937)기점으로 커다란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답싸리>를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인 1930년대 초반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노동소설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전기의 대표작으로는「질소비료공장」「기초공사장」(1932), 「아모니아 탕크」(1932), 「출근정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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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북명의 작품세계는 <답싸리>(1937)를 기점으로 커다란 변화를 드러내고 있어,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노동 소설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공장노동자에서 지식인, 도시빈민, 화전민 등으로 시선이 확대되며, 보다 구체성을 띤 인물을 등장시키게 된다. 인정과 세태의 인간적인 측면을 그리면서 건강한 생명력과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한편, 사회적 모순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하지는 못하였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후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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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에 속하는 대표작들로 <아들>(1937), <칠성암><야화>(1939), <화전민>(1940), <빙원>(1942) 등을 들 수 있으며, 평론 <사실주의적 절대기술>(1935), <주제의 적극성 기타><공장문학과 농민문학>(1936), <문학건설에 자할 신제창><자기비판과 소설의 순수성 파악>(1939) 등을 발표하였다. <ref>문화포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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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3일 (목) 18: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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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북명(李北鳴)
출처 : ![1]
 
한글명 리북명 한자명 李北鳴 영문명 RI BUK-MYENOG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908.09.18.년 몰년 1988.년 출신지 함경남도 함흥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본명은 리순익(李淳翼)이다. 리북명은 <출근정지>, <여공> 등 실제로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로 노동자들의 의식성장을 꾀하였고, '최초의 노동자 작가'로 불린다.[2]

[3]

생애


공장 친목회사건

리북명은 1908년 함경남도 함흥의 사무원 가정에서 태어나, 1972년에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7년 졸업 후 그는 지식인으로서 사는 대신 스스로 노동계급을 택했다. 교복 대신 노동복을 입고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흥남질소비료공장)에서 3년간 노동자 생활을 하다 친목회 사건으로 피검되어 공장을 나오게 된다. 1932년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질소비료공장」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4] 이 공장체험이 초기 작품의 중요한 배경을 이룸으로 인하여 '최초의 노동자 작가'로 불리게 된다. 1930년 이후 장진강 수천 공사장에서 근무하였고, 1932년 카프에 가입했다. [5]



광복

1945년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과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6]


한국전쟁

월북 이후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운과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7]





연구


질소비료공장

문단데뷔작은 <질소비료공장>이지만, 실제 최초의 작품은 <조선지광> 폐간호에 실렸다가 <신계단>에 재수록된 <기초공사장>이며 <질소비료공장>은 이것의 속편이다. (전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노동소설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기초공사장><질소비료공장><암모니아 탕크><출근정지>(1932), <여공>(1933), <정반>(1934), <오전 3시><공장가>(1935) 공장의 구체적 배경 제시, 절박한 가정경제의 참상 강조, 투쟁의 경제적-상황적 필연성 제시, 구체적 삶의 전형 창조, 전체 민중 속에서의 노동자의 위상 설정, 인물의 유형화와 대국적 전망의 부재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8]


답싸리

리북명의 작품세계는 <답싸리>(1937)를 기점으로 커다란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답싸리>를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인 1930년대 초반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노동소설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전기의 대표작으로는「질소비료공장」「기초공사장」(1932), 「아모니아 탕크」(1932), 「출근정지」등이 있다.


리북명의 작품세계는 <답싸리>(1937)를 기점으로 커다란 변화를 드러내고 있어,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노동 소설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공장노동자에서 지식인, 도시빈민, 화전민 등으로 시선이 확대되며, 보다 구체성을 띤 인물을 등장시키게 된다. 인정과 세태의 인간적인 측면을 그리면서 건강한 생명력과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한편, 사회적 모순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하지는 못하였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후기에는

후기에 속하는 대표작들로 <아들>(1937), <칠성암><야화>(1939), <화전민>(1940), <빙원>(1942) 등을 들 수 있으며, 평론 <사실주의적 절대기술>(1935), <주제의 적극성 기타><공장문학과 농민문학>(1936), <문학건설에 자할 신제창><자기비판과 소설의 순수성 파악>(1939) 등을 발표하였다. [9]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리북명 Institution: 함흥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리북명 Institution: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흥남공장 A worksAt B
Person: 리북명 Institution: 장진강 수전 공사장 A worksAt B
Person: 리북명 Institution: 금성청년출판사 A worksAt B
Person: 리북명 Group: 북조선예술총연맹 A isMemberOf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리북명 소설가에 관한 이미지 사진이 거의 없어, 관련 사이트에 제공 받을 수 있을지에 관해 메일을 보낸 상태입니다
  2. 오태호,『20세기 북한예술문화사전online, 북한문화예술사전
  3. 저작권 정책에 관하여 메일을 보낸 상태입니다.
  4. 권영민,『이북명 소설 선집online 교보문고
  5. 문화포털, 예술지식백과, https://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View.do?code_value=H&vvm_seq=7804&ccm_code=H041&ccm_subcode=H341, 출처 수정예정,
  6. 권영민,『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문화포털, 예술지식백과, 출처수정예정
  8. 문화포털
  9. 문화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