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준비위원회 목포지부결성(建國準備委員會 木浦支部結成)은 1945년 8월 17일을 전후로 하여 조직되었다. 타지역과 동일하게 목포의 ‘건국준비 위원회’의 조직도 좌익과 우익이 공존했다. 위원장 이남규(1901년생, 무안군 복길리 출신)는 ‘중동학교’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활동을 한 목사이다. 그는 신사참배 거부로 2년간 옥고를 치뤘다. 부위원장 김백동은 ‘전남노농협의회’에서 활동했고(1931년), 해방 이후 박헌영 직계의 사회주의자였다. 역시 부위원장 국순홍(전북순창, 내과의사)은 1946년 여운형이 주도한 ‘인민당’의 목포지부 준비위원장이었다. 내무국장 겸 교통국장에는 유치오, 선전부장에는 임영춘, 치안대장에는 임태오가 임명되었다. 이후에 미군진주가 확정됨에 따라, 목포에서도 ‘건국준비위원회’는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다. (국순홍 김백동 유치오 임태오 임영춘이 중심역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