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주석서 서문 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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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삼가서문 대조

論語 註釋 序文 · 宋 · 朝鮮 · 江戸

서문 대조

주희 論語集注의 서설과 독법, 정약용 論語古今注의 원의총괄, 오규 소라이 論語徵의 서두 — 세 주석서가 각자의 첫머리에서 논어라는 책을 어떻게 규정했는가를 원문과 번역으로 나란히 놓는다. 전 43항목.

集注 15항 · 古今注 20편 174조 · 論語徵 8조 저본: ctext.org / 한국고전종합DB 번역: 초역 — 검토 필요

論語集注

논어집주 · 序說 / 讀論語孟子法

편찬
朱熹 주희 (1130–1200)
지역
남송
수록
15조
성격
공자 전기와 선유 어록의 배열

論語古今注

논어고금주 · 原義總括

편찬
丁若鏞 정약용 (1762–1836)
지역
조선
수록
20편 174조
성격
통설을 뒤집은 지점의 색인

論語徵

논어징 (甲) · 서두

편찬
荻生徂徠 오규 소라이 (1666–1728)
지역
에도
수록
8조
성격
논어 성립에 대한 문헌비판

세 서문은 같은 장르가 아니다

먼저 짚어야 할 것. 이 셋을 3열로 나란히 놓고 행을 맞출 수는 없다. 같은 항목에 대해 각자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서문이라는 자리에서 무엇을 하는가부터 다르게 이해했다.

朱熹 — 인용의 배열

전기 + 서지 + 독서법

주희 자신의 말이 거의 없다. 『사기』 공자세가를 발췌해 생애를 세우고, 하안을 끌어 노·제·고론의 서지를 밝히고, 정자의 독서법 어록 열 조를 붙였다. 권위는 인용의 배열로 세워진다. 그가 개입한 흔적은 본문에 섞여 들어간 할주뿐이다.

丁若鏞 — 이설의 색인

正誤表 겸 목차

전부 으로 시작하는 174개의 한 줄 명제. 자기 주석에서 통설과 달리 판정한 지점만 편별로 뽑아 총괄했다. 서문이 곧 자기 이설의 색인이자 독자를 위한 정오표다. 논증은 없고 결론만 있다.

荻生徂徠 — 텍스트의 심문

문헌비판 논설

논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편차에 통일성이 있는지, 서명의 가 무슨 뜻인지를 따진다. 그리고 주희를, 끝에서는 이토 진사이를 정면으로 친다. 서문이 곧 방법론 선언이다.

쟁점으로 다시 세우면

병렬이 가능한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쟁점이다. 세 서문이 실제로 같은 문제를 건드린 여섯 지점.

쟁점 論語集注주희 論語古今注정약용 論語徵소라이
누가 엮었는가 成於有子曾子之門人정자의 설을 그대로 채택. 유자·증자만 로 칭한 것이 근거. 언급 없음 上論成於琴張 下論成於原思정자 설을 반박 — 그렇다면 민자건·염백우는 왜 빠뜨렸는가. 상론은 금장, 하론은 원사의 손에서 나왔다고 본다.
편차에 뜻이 있는가 묻지 않음 始之以學 終之以命노론 한 부는 으로 시작해 으로 끝나니 곧 下學上達의 뜻 — 편차에 의미가 있다. 篇無統也 命篇無意義사람마다 제 편을 이루었으니 편에 통일이 없고 편명에 의미가 없다.
삼론(魯·齊·古) 魯論二十篇 齊論二十二篇 古論二十一篇하안을 인용해 편수와 편차 차이를 사실로만 기록. 季氏篇不可獨指爲齊論계씨편만 제론으로 지목하는 통설을 부정. 其篇有并析者可知也후대 전승도 이러한데 성립 이전이야 — 편이 합쳐지고 갈라졌음을 알 수 있다.
주석가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 문제 삼지 않음 — 尹氏·游氏·謝氏로 氏만 씀 언급 없음 遂使讀者茫乎不能識其爲誰某也하안이 아비 이름을 피휘해 包咸의 이름을 뺀 것이 시초. 주희가 그것을 예법으로 오인해 계급까지 만들었고, 마침내 읽는 자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읽는 법 須熟讀玩味익히 읽고 완미하라. 언어로 풀면 뜻이 도리어 부족해진다. 서문에서는 논하지 않음 學不師古非孔子之心矣옛것을 스승 삼지 않으면 공자의 마음이 아니다. 古文辭를 익혀 古言이 밝아진 뒤에야 古義가 정해진다.
논어로 충분한가 當以論語孟子爲本논맹을 다스리면 육경은 다스리지 않아도 밝아진다. 서문에서는 논하지 않음 是惡足盡孔子哉논어만으로는 공자를 다할 수 없다. 논어에 잠심하고 육경을 묵은 자취로 여긴 것이 후세의 병통이다.

주목할 네 대목

번역 작업 중 눈에 걸린 지점들. 셋을 나란히 놓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재분류론의 직접 전거

소라이는 편차의 무의미를 명시적으로 말한다

七十子所錄人人殊矣。散之四方,人爲篇而篇無統也,命篇無意義。

칠십자가 기록한 것이 사람마다 달랐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람마다 제 편을 이루었으니 편에 통일이 없고 편명에는 의미가 없다.

현행 편차가 완결된 논리를 갖추지 못했다는 진단이 최술(1740–1816)보다 앞서 소라이(1666–1728)에게 이미 명시적으로 나와 있다. 재분류론의 계보를 소라이 → 최술 → 다케우치·기무라로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소라이는 진단에서 그치지 않고 上論成於琴張,下論成於原思라는 층위 가설까지 제시한다.

PRFC_1139 · PRFC_1140

정면 충돌

다산은 정반대로 편차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辨魯論一部,始之以學,終之以命,卽下學上達之義。

노론 한 부는 으로 시작해 으로 끝나니 곧 下學上達의 뜻임을 밝힘.

原義總括 174조의 맨 마지막 항목이다. 다산은 174개의 통설을 뒤집으면서도 논어 전체의 배열만은 의도된 구조로 읽었다. 소라이가 "편명에 의미가 없다"고 한 바로 그 지점에서 다산은 "시작과 끝에 뜻이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이 같은 대상을 두고 정반대 결론에 도달한 자리다.

PRFC_1135 · 堯曰篇 마지막 조

300년 전의 같은 문제

주석가의 이름 표기를 소라이가 이미 문제 삼았다

朱子不睹古本,妄謂不名先儒禮也。⋯⋯遂使讀者茫乎不能識其爲誰某也。

주자는 옛 판본을 보지 못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 선유에 대한 예라고 잘못 여겼다. ⋯ 마침내 읽는 자로 하여금 아득하여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소라이의 진단은 이렇다. 하안이 아비 이름 을 피휘하느라 包咸에서 이름을 뺐고, 공영달이 생략을 따라 나머지도 다 뺐고, 주희는 그것을 예법으로 오인해 정자·장자는 , 나머지 유자는 라는 계급까지 만들었다. 『대전』이 그것을 금과옥조로 받들었다. — 지금 『논어집주대전』 XML에서 陳氏 하나에 陳淳·陳櫟·陳埴이 뒤엉키는 문제가 정확히 이 계보의 산물이다. 소라이의 처방도 그대로 쓸 수 있다: 解經諸儒具其姓名,禮當然也 — 경을 풀이한 유자의 성명을 갖추는 것이 예에 마땅하다.

PRFC_1139

세 주석서를 잇는 고리

소라이가 이토 진사이를 겨눈다

道者率性自然而人皆有之,故聖人不假學,是宋儒以後之失也。⋯⋯孰謂仁齋先生殊於宋儒也。

"道란 性을 따르는 자연이어서 사람이 모두 지녔으므로 성인은 배움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은 송유 이후의 잘못이다. ⋯ 누가 진사이 선생이 송유와 다르다고 하는가.

論語徵 서두의 마지막 문장이다. 소라이는 자기 앞 세대의 일본 고학파 종장인 진사이를 결국 송유와 한통속으로 몰아붙인다. 진사이 『논어고의』를 비교 대상에 넣을 경우, 진사이와 소라이는 나란히 놓인 두 표본이 아니라 직접 겨루는 두 당사자가 된다. 또 다산이 일본 고학파를 다자이 슌다이를 경유해 접했다는 점을 확인하면, 세 주석서가 임의의 표본이 아니라 실제로 연결된 계보임을 보일 수 있다.

PRFC_1143

論語集注 序說

주희가 『논어집주』 앞에 둔 서설 여섯 조. 첫 조는 『사기』 공자세가 발췌이고, 나머지는 하안 1조와 정자 4조다. 아래에서 주묵 꺾쇠로 표시한 것은 원래 두 줄로 작게 새긴 주희의 할주(割註)로, 저본에서는 본문과 구분 없이 이어 붙어 있던 것을 갈라낸 것이다.

PRFC_1101史記世家

史記世家曰:「孔子名丘,字仲尼。其先宋人。父叔梁紇,母顏氏。以魯襄公二十二年庚戌之歲十一月庚子,生孔子於魯昌平鄉陬邑。為兒嬉戲,常陳俎豆,設禮容。及長,為委吏,料量平;委吏,本作季氏史。索隱云:一本作委吏,與孟子合。今從之。為司職吏,畜蕃息。職,見周禮牛人,讀為樴,義與杙同,蓋繫養犧牲之所。此官即孟子所謂乘田。適周,問禮於老子,既反,而弟子益進。昭公二十五年甲申,孔子年三十五,而昭公奔齊,魯亂。於是適齊,為高昭子家臣,以通乎景公。有聞韶、問政二事。公欲封以尼谿之田,晏嬰不可,公惑之。有季孟吾老之語。孔子遂行,反乎魯。定公元年壬辰,孔子年四十三,而季氏強僭,其臣陽虎作亂專政。故孔子不仕,而退修詩、書、禮、樂,弟子彌眾。九年庚子,孔子年五十一。公山不狃以費畔季氏,召,孔子欲往,而卒不行。有答子路東周語。定公以孔子為中都宰,一年,四方則之,遂為司空,又為大司寇。十年辛丑,相定公會齊侯于夾谷,齊人歸魯侵地。十二年癸卯,使仲由為季氏宰,墮三都,收其甲兵。孟氏不肯墮成,圍之不克。十四年乙巳,孔子年五十六,攝行相事,誅少正卯,與聞國政。三月,魯國大治。齊人歸女樂以沮之,季桓子受之。郊又不致膰俎於大夫,孔子行。魯世家以此以上皆為十二年事。適衛,主於子路妻兄顏濁鄒家。孟子作顏讎由。適陳,過匡,匡人以為陽虎而拘之。有顏淵後及文王既沒之語。既解,還衛,主蘧伯玉家,見南子。有矢子路及未見好德之語。去適宋,司馬桓魋欲殺之。有天生德語及微服過宋事。又去,適陳,主司城貞子家。居三歲而反于衛,靈公不能用。有三年有成之語。晉趙氏家臣佛肸以中牟畔,召孔子,孔子欲往,亦不果。有答子路堅白語及荷蕢過門事。將西見趙簡子,至河而反,又主蘧伯玉家。靈公問陳,不對而行,復如陳。據論語則絕糧當在此時。季桓子卒,遺言謂康子必召孔子,其臣止之,康子乃召冉求。史記以論語歸與之歎為在此時,又以孟子所記歎辭為主司城貞子時語,疑不然。蓋語孟所記,本皆此一時語,而所記有異同耳。孔子如蔡及葉。有葉公問答、子路不對、沮溺耦耕、荷蓧丈人等事。史記云:「於是楚昭王使人聘孔子,孔子將往拜禮,而陳蔡大夫發徒圍之,故孔子絕糧於陳蔡之間。」有慍見及告子貢一貫之語。按是時陳蔡臣服於楚,若楚王來聘孔子,陳蔡大夫安敢圍之?且據論語,絕糧當在去衛如陳之時。楚昭王將以書社地封孔子,令尹子西不可,乃止。史記云「書社地七百里」,恐無此理。時則有接輿之歌。又反乎衛,時靈公已卒,衛君輒欲得孔子為政。有魯衛兄弟及答子貢夷齊、子路正名之語。而冉求為季氏將,與齊戰有功,康子乃召孔子,而孔子歸魯,實哀公之十一年丁巳,而孔子年六十八矣。有對哀公及康子語。然魯終不能用孔子,孔子亦不求仕。乃敘書傳禮記,有杞宋、損益、從周等語。刪詩正樂,有語大師及樂正之語。序易彖、繫、象、說卦、文言。有假我數年之語。弟子蓋三千焉,身通六藝者七十二人。弟子顏回最賢,蚤死,後惟曾參得傳孔子之道。十四年庚申,魯西狩獲麟,有莫我知之歎。孔子作春秋。有知我罪我等語。論語請討陳恆事,亦在是年。明年辛酉,子路死於衛。十六年壬戌、四月己丑,孔子卒,年七十三,葬魯城北泗上。弟子皆服心喪三年而去,惟子貢廬於冢上,凡六年。孔子生鯉,字伯魚,先卒。伯魚生伋,字子思,作中庸。」子思學於曾子,而孟子受業子思之門人。

『사기』 공자세가에 이렇게 말했다. "공자는 이름이 丘, 자가 仲尼이다. 그 선조는 송나라 사람이다. 아버지는 숙량흘, 어머니는 안씨다. 노 양공 22년 경술년 11월 경자일에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공자를 낳았다. 어려서 놀 때 늘 조두(俎豆)를 벌여놓고 예의 모습을 갖추었다. 자라서는 위리(委吏)가 되어 되질과 저울질을 공평히 했고, 위리는 본래 '계씨의 사(史)'로 되어 있다. 『사기색은』에 "어떤 판본에는 위리로 되어 있어 『맹자』와 합치한다" 했으므로 이제 그것을 따른다. 사직리(司職吏)가 되어서는 가축이 번식했다. 職은 『주례』 우인(牛人)에 보이는데 樴으로 읽으며 뜻은 杙(말뚝)과 같으니, 희생을 매어 기르는 곳이다. 이 벼슬이 곧 『맹자』의 이른바 승전(乘田)이다.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를 묻고 돌아오자 제자가 더욱 늘었다.

소공 25년 갑신년, 공자 나이 서른다섯에 소공이 제나라로 달아나 노나라가 어지러웠다. 이에 제나라로 가서 고소자의 가신이 되어 경공과 통했다. 〈소(韶)를 들은 일〉과 〈정사를 물은 일〉 두 가지가 있다. 경공이 니계의 땅에 봉하려 했으나 안영이 반대하여 경공이 미혹되었다. "계씨와 맹씨의 중간으로 대우하겠다, 나는 늙었다"는 말이 있다. 공자가 마침내 떠나 노나라로 돌아왔다.

정공 원년 임진년, 공자 나이 마흔셋에 계씨가 강성하여 참람했고 그 가신 양호가 난을 일으켜 정사를 전횡했다. 그러므로 공자는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 시·서·예·악을 닦으니 제자가 더욱 많아졌다. 9년 경자년, 공자 나이 쉰하나. 공산불뉴가 비읍을 근거로 계씨에게 반란하며 부르자 공자가 가려 했으나 끝내 가지 않았다. 자로에게 답한 "동주(東周)" 말이 있다. 정공이 공자를 중도재로 삼으니 일 년 만에 사방이 본받았고, 마침내 사공이 되었다가 또 대사구가 되었다. 10년 신축년에 정공을 도와 협곡에서 제후(齊侯)와 회맹하니 제나라가 침탈했던 노나라 땅을 돌려주었다. 12년 계묘년에 중유를 계씨의 재로 삼아 삼도(三都)를 허물고 그 갑병을 거두게 했다. 맹씨가 성(成)을 허물려 하지 않아 포위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14년 을사년, 공자 나이 쉰여섯에 재상의 일을 대행하여 소정묘를 베고 국정에 참여하니 석 달 만에 노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제나라가 여악(女樂)을 보내 저지하자 계환자가 받았다. 교제(郊祭) 뒤에 또 번조(膰俎)를 대부에게 보내지 않으니 공자가 떠났다. 「노세가」는 이 이상을 모두 12년의 일로 삼았다.

위나라로 가서 자로의 처형 안탁추의 집에 머물렀다. 『맹자』에는 안수유로 되어 있다. 진나라로 가다가 광 땅을 지나는데 광 사람들이 양호로 여겨 붙잡았다. "안연이 뒤처졌다"는 말과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다"는 말이 있다. 풀려나 위나라로 돌아가 거백옥의 집에 머물며 남자(南子)를 만났다. 자로에게 맹세한 말과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 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떠나 송나라로 가니 사마 환퇴가 죽이려 했다. "하늘이 내게 덕을 내셨다"는 말과 미복으로 송나라를 지난 일이 있다. 또 떠나 진나라로 가서 사성정자의 집에 머물렀다. 삼 년을 지내고 위나라로 돌아왔으나 영공이 쓰지 못했다. "삼 년이면 이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진(晉)나라 조씨의 가신 필힐이 중모를 근거로 반란하여 공자를 부르니 공자가 가려 했으나 역시 실행되지 않았다. 자로에게 답한 "견백(堅白)" 말과 삼태기를 멘 자가 문 앞을 지난 일이 있다. 서쪽으로 조간자를 만나러 가다가 황하에 이르러 돌아와 다시 거백옥의 집에 머물렀다. 영공이 진법을 묻자 대답하지 않고 떠나 다시 진나라로 갔다. 『논어』에 따르면 양식이 끊긴 일은 마땅히 이때에 있어야 한다.

계환자가 죽으며 강자에게 반드시 공자를 부르라 유언했으나 그 신하가 막아 강자는 이에 염구를 불렀다. 『사기』는 『논어』의 "돌아가리라"는 탄식을 이때의 일로 보았고, 또 『맹자』에 기록된 탄식의 말을 사성정자에게 머물 때의 말로 보았으나 그렇지 않은 듯하다. 대개 『논어』와 『맹자』에 기록된 것이 본디 모두 이 한때의 말인데 기록에 이동(異同)이 있을 뿐이다. 공자가 채나라와 섭 땅에 갔다. 섭공의 문답, 자로가 대답하지 않은 일, 장저·걸닉이 나란히 밭 간 일, 삼태기를 멘 노인 등의 일이 있다. 『사기』에 "이에 초 소왕이 사람을 보내 공자를 초빙하니 공자가 가서 배례하려 했는데 진·채의 대부가 무리를 풀어 포위했다. 그러므로 공자가 진·채 사이에서 양식이 끊겼다"고 했다. "성난 얼굴로 뵌" 일과 자공에게 일러준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말이 있다. 살피건대 이때 진·채는 초나라에 신복하고 있었으니, 만약 초왕이 와서 공자를 초빙했다면 진·채의 대부가 어찌 감히 포위했겠는가. 또 『논어』에 따르면 양식이 끊긴 일은 마땅히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갈 때에 있어야 한다. 초 소왕이 서사(書社)의 땅으로 공자를 봉하려 했으나 영윤 자서가 반대하여 그쳤다. 『사기』에 "서사의 땅 칠백 리"라 했으나 그럴 리 없을 듯하다. 이때에 접여의 노래가 있다.

다시 위나라로 돌아오니 이때 영공은 이미 죽고 위나라 임금 첩(輒)이 공자를 얻어 정사를 맡기려 했다. "노나라와 위나라는 형제"라는 말, 자공에게 답한 백이·숙제의 말, 자로에게 답한 정명(正名)의 말이 있다. 그런데 염구가 계씨의 장수가 되어 제나라와 싸워 공을 세우자 강자가 이에 공자를 불러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왔으니, 실로 애공 11년 정사년이고 공자 나이 예순여덟이었다. 애공과 강자에게 답한 말이 있다. 그러나 노나라는 끝내 공자를 쓰지 못했고 공자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이에 『서전(書傳)』과 『예기』를 서술하고 기(杞)·송(宋), 손익(損益), 종주(從周) 등의 말이 있다. 『시』를 산정하고 악을 바로잡고 태사에게 이른 말과 악이 바로잡혔다는 말이 있다. 『역』의 단(彖)·계(繫)·상(象)·설괘·문언을 차례 지었다. "내게 몇 해를 빌려준다면"이라는 말이 있다.

제자가 대개 삼천이었고 몸소 육예에 통한 자가 일흔둘이었다. 제자 중 안회가 가장 어질었으나 일찍 죽었고, 뒤에는 오직 증삼만이 공자의 도를 전해 받았다. 14년 경신년에 노나라가 서쪽에서 사냥하여 기린을 잡으니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탄식이 있었다. 공자가 『춘추』를 지었다. "나를 알아주는 것도 나를 죄주는 것도"라는 말이 있다. 『논어』의 진항(陳恆)을 토벌하기를 청한 일도 이 해에 있다. 이듬해 신유년에 자로가 위나라에서 죽었다. 16년 임술년 4월 기축일에 공자가 죽으니 나이 일흔셋이었고 노나라 성 북쪽 사수 가에 장사지냈다. 제자들이 모두 심상(心喪) 삼 년을 입고 떠났으나 오직 자공만이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모두 육 년을 지냈다. 공자가 鯉를 낳았으니 자가 백어이고 먼저 죽었다. 백어가 伋을 낳았으니 자가 자사이고 『중용』을 지었다." 자사는 증자에게 배웠고 맹자는 자사의 문인에게 수업했다.

저본 ctext.org id=89585 · 할주는 저본에서 본문과 이어져 있던 것을 역자가 갈라냄

PRFC_1102何晏

何氏曰:「魯論語二十篇。齊論語別有問王、知道,凡二十二篇,其二十篇中章句,頗多於魯論。古論出孔氏壁中,分堯曰下章子張問以為一篇,有兩子張,凡二十一篇,篇次不與齊魯論同。」

하씨(何晏)가 말했다. "『노논어』는 스무 편이다. 『제논어』에는 따로 「문왕(問王)」·「지도(知道)」가 있어 모두 스물두 편인데, 그 스무 편 안의 장구도 『노논어』보다 자못 많다. 『고논어』는 공씨의 벽 속에서 나왔는데, 「요왈」 아래 장의 '자장문(子張問)'을 갈라 한 편으로 삼아 「자장」이 둘이 있어 모두 스물한 편이며, 편차가 제·노론과 같지 않다."

PRFC_1103程子

程子曰:「論語之書,成於有子、曾子之門人,故其書獨二子以子稱。」

정자가 말했다. "『논어』라는 책은 유자와 증자의 문인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 책에서 유독 두 사람만 로 칭한다."

PRFC_1104程子

程子曰:「讀論語:有讀了全然無事者;有讀了後其中得一兩句喜者;有讀了後知好之者;有讀了後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

정자가 말했다. "『논어』를 읽음에, 다 읽고도 전혀 아무 일 없는 자가 있고, 읽은 뒤에 그 가운데 한두 구절을 얻고 기뻐하는 자가 있고, 읽은 뒤에 그것을 좋아할 줄 아는 자가 있고, 읽은 뒤에 곧바로 손이 춤추고 발이 뛰는 줄도 모르는 자가 있다."

PRFC_1105程子

程子曰:「今人不會讀書。如讀論語,未讀時是此等人,讀了後又只是此等人,便是不曾讀。」

정자가 말했다. "지금 사람들은 글 읽을 줄 모른다. 이를테면 『논어』를 읽음에, 읽기 전에도 이런 사람이고 읽은 뒤에도 여전히 이런 사람이라면 이는 곧 읽지 않은 것이다."

PRFC_1106程子

程子曰:「頤自十七八讀論語,當時已曉文義。讀之愈久,但覺意味深長。」

정자가 말했다. "나 이(頤)는 열일고여덟 살부터 『논어』를 읽어 당시에 이미 문의(文義)는 알았다. 읽기를 오래할수록 다만 의미가 깊고 긺을 느낄 뿐이다."

讀論語孟子法 — 논맹 읽는 법 · 정자 어록 9조

PRFC_1107程子

程子曰:「學者當以論語、孟子為本。論語、孟子既治,則六經可不治而明矣。讀書者當觀聖人所以作經之意,與聖人所以用心,聖人之所以至於聖人,而吾之所以未至者,所以未得者。句句而求之,晝誦而味之,中夜而思之,平其心,易其氣,闕其疑,則聖人之意可見矣。」

정자가 말했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논어』·『맹자』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논맹을 이미 다스리면 육경은 다스리지 않아도 밝아진다. 글 읽는 자는 마땅히 성인이 경을 지은 뜻과 성인이 마음 쓴 바, 성인이 성인이 된 까닭과 내가 아직 이르지 못한 까닭·얻지 못한 까닭을 보아야 한다. 구절마다 구하고, 낮에 외며 음미하고, 한밤중에 생각하며, 마음을 평온히 하고 기운을 화평히 하며 의심스러운 것은 빼두면 성인의 뜻을 볼 수 있다."

저본 note: 據淸仿宋大字本補 — 청대 방송대자본에 근거해 보충

PRFC_1108程子

程子曰:「凡看文字,須先曉其文義,然後可以求其意。未有不曉文義而見意者也。」

정자가 말했다. "무릇 글을 볼 때는 모름지기 먼저 그 문의를 안 뒤에야 그 뜻을 구할 수 있다. 문의를 알지 못하고서 뜻을 본 자는 없다."

PRFC_1109程子

程子曰:「學者須將論語中諸弟子問處便作自己問,聖人答處便作今日耳聞,自然有得。雖孔孟復生,不過以此教人。若能於語孟中深求玩味,將來涵養成甚生氣質!」

정자가 말했다.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논어』 속 여러 제자가 물은 곳을 곧 자기의 물음으로 삼고, 성인이 답한 곳을 곧 오늘 귀로 듣는 것으로 삼아야 자연히 얻음이 있다. 비록 공자와 맹자가 다시 나신다 해도 이로써 사람을 가르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만약 논맹 속에서 깊이 구하고 완미할 수 있다면 장래에 얼마나 훌륭한 기질을 함양하겠는가!"

PRFC_1110程子

程子曰:「凡看語孟,且須熟讀玩味。須將聖人言語切己,不可只作一場話說。人只看得二書切己,終身儘多也。」

정자가 말했다. "무릇 논맹을 볼 때는 우선 모름지기 익히 읽고 완미해야 한다. 모름지기 성인의 말씀을 자기 몸에 절실하게 해야지 한바탕 이야깃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사람이 다만 이 두 책을 자기에게 절실하게 볼 수만 있다면 종신토록 넉넉함이 많을 것이다."

PRFC_1111程子

程子曰:「論孟只剩讀著,便自意足。學者須是玩味。若以語言解著,意便不足。」

정자가 말했다. "논맹은 그저 읽기만 해도 곧 절로 뜻이 넉넉하다.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완미해야 한다. 만약 언어로 풀이하면 뜻이 도리어 부족해진다."

PRFC_1112或問

或問:「且將論孟緊要處看,如何?」程子曰:「固是好,但終是不浹洽耳。」

어떤 이가 물었다. "우선 논맹의 긴요한 곳만 보면 어떻습니까?" 정자가 말했다. "본디 좋기는 하나 다만 끝내 무젖어들지 못할 뿐이다."

PRFC_1113程子

程子曰:「孔子言語句句是自然,孟子言語句句是事實。」

정자가 말했다. "공자의 말씀은 구절마다 자연(自然)이고, 맹자의 말은 구절마다 사실(事實)이다."

PRFC_1114程子

程子曰:「學者先讀論語、孟子,如尺度權衡相似,以此去量度事物,自然見得長短輕重。」

정자가 말했다. "배우는 자가 먼저 『논어』·『맹자』를 읽으면 자와 저울과 같아서, 이로써 사물을 헤아리면 자연히 길고 짧음과 가볍고 무거움을 알게 된다."

PRFC_1115程子

程子曰:「讀論語、孟子而不知道,所謂『雖多,亦奚以為』。」

정자가 말했다. "『논어』·『맹자』를 읽고도 도를 알지 못한다면, 이른바 '비록 많이 읽은들 또한 무엇에 쓰겠는가'이다."

論語古今注 原義總括

다산이 『논어고금주』에서 통설과 달리 판정한 지점만 20편에 걸쳐 174조로 총괄한 것. 모두 (변별함)으로 시작하고 각 편 끝에 已上⋯篇으로 닫는다. ° 표시는 번역·판정에 이설 여지가 있어 원문 대조가 필요한 조목이다.

學而篇

4조 · PRFC_1116
  1. 辨仁義禮智之名成於行事,非在心之理〈有子章〉仁義禮智라는 이름은 행사(行事)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마음속에 있는 이치가 아님 〈유자장〉
  2. 辨吾必謂之學,當與子張篇博學章合觀"吾必謂之學"은 마땅히 「자장」편 博學章과 합쳐 보아야 함
  3. 辨溫良恭儉,當以四字絶句溫良恭儉은 마땅히 네 글자로 구두를 끊어야 함
  4. 辨信近於義、恭近於禮,當從舊說信近於義·恭近於禮는 마땅히 옛 설을 따라야 함

爲政篇

10조 · PRFC_1117
  1. 辨衆星共之,是衆星與天樞共轉,非無爲之意衆星共之는 뭇별이 천추(天樞)와 함께 도는 것이지 無爲의 뜻이 아님
  2. 辨耳順,是言不逆耳耳順은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음
  3. 辨犬馬能養,當從包咸之說犬馬能養은 포함의 설을 따라야 함
  4. 辨先生弟子非父子之謂〈子夏問孝章〉先生·弟子는 부자(父子)를 이르는 것이 아님 〈자하문효장〉
  5. 辨溫故知新,乃爲師之利溫故知新은 곧 스승 노릇의 이로움
  6. 辨異端非楊墨佛老之謂異端은 양주·묵적·불교·노장을 이르는 것이 아님
  7. 辨擧直是擧賢,錯枉非退邪擧直은 어진 이를 등용함이고, 錯枉은 사악한 자를 물리침이 아님
  8. 辨輗軏聯屬二物,如信聯結二人輗·軏은 두 물건을 이어주는 것이니 信이 두 사람을 맺어주는 것과 같음
  9. 辨繼周者雖至百世,當不變周禮주나라를 잇는 자는 백 세에 이르러도 마땅히 주례를 바꾸지 않아야 함
  10. 辨忠質文異尙之說,本是緯家謬義忠·質·文을 각기 달리 숭상했다는 설은 본디 위서가(緯家)의 그릇된 뜻임

八佾篇

11조 · PRFC_1118
  1. 辨季氏非三家之大宗계씨는 삼가(三家)의 대종(大宗)이 아님
  2. 辨夷狄之有君,謂用夷狄之道而保其君位夷狄之有君은 이적의 도를 써서 그 임금 자리를 보전함을 이름
  3. 辨下而飮,乃不勝而飮下而飮은 곧 이기지 못하여 마시는 것
  4. 辨禘祭之義체(禘)제사의 뜻
  5. 辨奧竈非五祀之神奧와 竈는 오사(五祀)의 신이 아님
  6. 辨太廟之每事問,以用僭禮태묘에서 매사를 물은 것은 참람한 예를 썼기 때문임
  7. 辨射不主皮,乃賓射燕射之謂射不主皮는 곧 빈사(賓射)·연사(燕射)를 이름
  8. 辨告朔餼羊,乃所以禮王人告朔의 희생 양은 천자의 사신을 예우하기 위한 것
  9. 辨哀而不傷,乃卷耳之謂哀而不傷은 곧 〈권이(卷耳)〉를 이름
  10. 辨管氏三歸,當從包咸之說管氏三歸는 포함의 설을 따라야 함
  11. 辨武未盡善,在功不在德〈무(武)〉가 진선(盡善)하지 못한 것은 功에 있지 德에 있지 않음

이 편만 저본이 己上八佾篇 — 다른 편의 已上과 다름. 입력 오자로 보임

里仁篇

5조 · PRFC_1119
  1. 辨里仁爲美,乃居仁之戒,非擇隣之義里仁爲美는 仁에 거하라는 경계이지 이웃을 고르라는 뜻이 아님
  2. 辨貧與賤得之,謂得去之"貧與賤⋯得之"의 得은 그것을 떠남을 얻는다는 뜻
  3. 辨一以貫之,卽絜矩之恕,非傳道之訣一以貫之는 곧 혈구(絜矩)의 恕이지 도를 전하는 비결이 아님
  4. 辨喩義喩利,由道心人心喩義·喩利는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에서 말미암음
  5. 辨見志不從,是示我心不從父命見志不從은 내 뜻을 드러내 보이되 아버지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 °

公冶長篇

13조 · PRFC_1120
  1. 辨縚閱适當是三人縚·閱·适은 마땅히 세 사람임
  2. 辨乘桴浮海,本所以形容子路肝膽乘桴浮海는 본디 자로의 간담을 형용한 것
  3. 辨吾與女不如,當從包咸之說吾與女弗如는 포함의 설을 따라야 함
  4. 辨晝寢是晝臥晝寢은 낮에 눕는 것
  5. 辨孔文子本是惡人,不恥下問是權辭공문자는 본디 악인이니 不恥下問은 임시로 둘러댄 말임
  6. 辨居蔡爲一事,山節藻梲爲一事,不可相聯說居蔡가 한 일이고 山節藻梲이 한 일이니 서로 이어서 설명할 수 없음
  7. 辨再斯可矣,謂季文子原不能三思再斯可矣는 계문자가 원래 세 번 생각하지 못했음을 이름
  8. 辨邦無道則愚,乃忘身冒難邦無道則愚는 곧 몸을 잊고 어려움을 무릅쓰는 것
  9. 辨斐然成章,本以錦衣說喩斐然成章은 본디 비단옷으로 비유한 것
  10. 辨不念舊惡,在父子兄弟之間不念舊惡은 부자·형제 사이의 일임
  11. 辨微生高之不直,在乞鄰之辭,不在乞隣미생고의 부정직함은 이웃에게 빌리며 한 말에 있지 이웃에게 빌린 일 자체에 있지 않음
  12. 辨左丘明非有二人좌구명은 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님
  13. 辨內自訟,乃天理人慾之訟內自訟은 곧 천리와 인욕의 다툼

저본 표기 已上公治長篇의 오자

雍也篇

11조 · PRFC_1121
  1. 辨不貳過,是不兩屬不貳過는 둘로 나뉘어 붙지 않음 °
  2. 辨子華之罪,在不留母糧자화의 죄는 어머니의 양식을 남겨두지 않은 데 있음
  3. 辨犂牛之子,喩父勝於子犂牛之子는 아비가 자식보다 나음을 비유한 것 °
  4. 辨日月至,猶言鮮能久日月至는 오래하기 드묾을 말함과 같음
  5. 辨中道而廢,是力盡而身頹,非廢業之義中道而廢는 힘이 다해 몸이 무너짐이지 학업을 그만둔다는 뜻이 아님
  6. 辨行不由徑,謂入公署由正路行不由徑은 관청에 들 때 바른 길로 감을 이름
  7. 辨文質之謬義文質에 대한 그릇된 뜻
  8. 辨觚不觚,是名實之辨觚不觚는 명(名)과 실(實)의 변별
  9. 辨井有仁,當作阱有仁井有仁은 마땅히 阱有仁으로 써야 함
  10. 辨子見南子,必由救亂全恩공자가 남자를 만난 것은 반드시 난을 구하고 은혜를 온전히 하려는 데서 말미암음
  11. 辨大夫本有見小君之禮대부에게는 본디 소군(小君)을 뵙는 예가 있음

述而篇

5조 · PRFC_1122
  1. 辨夫子爲衛君,當讀之如曾西之不爲管仲夫子爲衛君은 증서가 관중을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읽어야 함
  2. 辨飮水之飮,卽周禮六飮之飮飮水의 飮은 곧 『주례』 육음(六飮)의 飮
  3. 辨五十而學易,當從舊說五十而學易은 옛 설을 따라야 함
  4. 辨三人行,言同行者少三人行은 함께 가는 자가 적음을 말함
  5. 辨與其進不與其退,是古語與其進不與其退는 옛말임

泰伯篇

3조 · PRFC_1123
  1. 辨吾知免夫,謂免於刑戮吾知免夫는 형륙을 면함을 이름
  2. 辨暴慢之暴,當作入聲暴慢의 暴은 입성으로 읽어야 함
  3. 辨民可使由之,非諱道於民民可使由之는 백성에게 도를 숨기는 것이 아님

子罕篇

6조 · PRFC_1124
  1. 辨天之將喪斯文,謂周易天之將喪斯文의 斯文은 『주역』을 이름
  2. 辨叩其兩端,謂因人之問長我之知叩其兩端은 남의 물음으로 인해 내 앎을 기름을 이름
  3. 辨門人爲臣,是扶體之小臣門人爲臣의 臣은 시신을 부축하는 낮은 신하
  4. 辨善賈,是賈人之善者善賈는 장사꾼 가운데 좋은 자
  5. 辨逝者,謂人生逝者는 인생을 이름
  6. 辨可與權,非反經合道之謂可與權은 경(經)을 뒤집어 도에 합한다는 뜻이 아님

鄕黨篇

9조 · PRFC_1125
  1. 辨宗廟爲議政之地종묘는 정사를 의논하는 곳임
  2. 辨過位,非過君之空位過位는 임금의 빈자리를 지남이 아님
  3. 辨紺緅紅紫之不用,非以其間色紺·緅·紅·紫를 쓰지 않은 것은 간색(間色)이기 때문이 아님
  4. 辨裼與裘必易其色석(裼)과 구(裘)는 반드시 그 색을 달리함
  5. 辨帷裳爲車幃帷裳은 수레의 휘장임
  6. 辨羔裘玄冠不以弔,乃未小斂之弔羔裘玄冠으로 조문하지 않음은 소렴 전의 조문을 말함
  7. 辨吉月朝服,由不敢君臣同服吉月의 조복은 감히 임금과 신하가 같은 옷을 입지 못함에서 말미암음
  8. 辨不撤薑食,當讀之爲去饌之徹不撤薑食의 撤은 상을 물리는 徹로 읽어야 함
  9. 辨時哉時哉,謂雉可去之時時哉時哉는 꿩이 떠날 만한 때를 이름

先進篇

14조 · PRFC_1126
  1. 辨吾從先進,謂用人自先進始吾從先進은 사람 쓰기를 선진(先進)부터 시작함을 이름
  2. 辨皆不及門,謂不及衛國之城門皆不及門은 위나라 성문에 미치지 못함을 이름
  3. 辨四科十人,非夫子之言사과십철(四科十人)은 공자의 말이 아님
  4. 辨孝哉閔子騫,本時人之言孝哉閔子騫은 본디 당시 사람들의 말
  5. 辨不可徒行,是夫子之權辭不可徒行은 공자가 임시로 둘러댄 말
  6. 辨有慟乎,謂天下有哀慟之法乎有慟乎는 "천하에 애통하는 법도가 있는가"를 이름
  7. 辨非我也夫,謂二三子在他邦者將歸而咎之非我也夫는 다른 나라에 있는 제자들이 돌아와 나를 탓하리라는 뜻
  8. 辨長府爲錢名,仍舊貫爲錢貫長府는 돈의 이름이고 仍舊貫의 貫은 돈꿰미임
  9. 辨由之瑟,能爲堂上之樂,不能爲房中之樂자로의 슬은 당상(堂上)의 악은 할 수 있으나 방중(房中)의 악은 할 수 없음
  10. 辨富於周公,謂富於天子之三公富於周公은 천자의 삼공보다 부유함을 이름
  11. 辨鳴鼓,是大司馬伐國之律,非師門施罰之法鳴鼓는 대사마가 나라를 치는 법이지 사문(師門)에서 벌을 주는 법이 아님
  12. 辨屢空,是病回之言,如以貨殖病子貢屢空은 안회를 병통으로 여긴 말이니, 화식(貨殖)으로 자공을 병통으로 여긴 것과 같음
  13. 辨善人之道,卽敎人之術善人之道는 곧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
  14. 辨惟求惟赤二節,都是夫子之言惟求·惟赤 두 절은 모두 공자의 말임

顔淵篇

10조 · PRFC_1127
  1. 辨二人爲仁,而爲仁由己,非二人共成之두 사람이 仁을 이루되 爲仁은 자기에게 말미암으니 두 사람이 함께 이루는 것이 아님
  2. 辨膚受之愬,如腠理受病,漸入骨髓膚受之愬는 살결이 병을 받아 점점 골수로 드는 것과 같음
  3. 辨民信非由於足食足兵民信은 足食·足兵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님
  4. 辨惜乎夫子之說君子也,是九字一句"惜乎夫子之說君子也"는 아홉 자가 한 구절임
  5. 辨年饑是設問之辭,若行徹法則三家不得四分公室年饑는 가정하여 묻는 말이니, 철법(徹法)을 행하면 삼가가 공실을 넷으로 나눌 수 없음
  6. 辨旣欲其生又欲其死,謂分田而重斂;又誠不以富不可移動旣欲其生又欲其死는 밭을 나누어주고도 무겁게 거둠을 이름. 또 "誠不以富"는 옮길 수 없는 구절임 °
  7. 辨片言折獄,當從舊說;宿諾亦然片言折獄은 옛 설을 따라야 하고 宿諾도 그러함
  8. 辨成人之美、成人之惡,皆以名言成人之美·成人之惡은 모두 명(名)으로 말한 것
  9. 辨苟子之不欲,不可讀之爲慾苟子之不欲의 欲은 慾으로 읽을 수 없음
  10. 辨察言觀色,當從舊說察言觀色은 옛 설을 따라야 함

子路篇

5조 · PRFC_1128
  1. 辨正名,是正衛君父子君臣之名正名은 위나라 임금의 부자·군신의 명분을 바로잡는 것
  2. 辨勝殘去殺本是一義,去殺非刑措之謂勝殘去殺은 본디 한 뜻이니, 去殺은 형벌을 놓아둠을 이르는 것이 아님
  3. 辨世而後仁,謂王者必繼世而後天下從仁世而後仁은 왕자가 반드시 대를 이은 뒤에야 천하가 仁을 따름을 이름
  4. 辨家臣亦與公朝之政〈冉子退朝章〉가신도 공조(公朝)의 정사에 참여함 〈염자퇴조장〉
  5. 辨作巫毉,謂爲無恒之人禱之藥之作巫醫는 항심 없는 사람을 위해 빌어주고 약을 줌을 이름

憲問篇

10조 · PRFC_1129
  1. 辨邦有道穀、邦無道穀,謂治亂皆食祿邦有道穀·邦無道穀은 치세든 난세든 다 녹을 먹음을 이름
  2. 辨克伐怨欲,不可平列爲四事克·伐·怨·欲을 네 가지 일로 나란히 벌여놓을 수 없음
  3. 辨奡盪舟,非寒浞之子澆奡盪舟의 奡는 한착의 아들 요(澆)가 아님
  4. 辨趙魏老職務之煩,十倍於滕薛大夫조·위 가로(家老)의 직무 번잡함이 등·설 대부의 열 배임
  5. 辨臧武仲之智、公綽之不欲、卞莊子之勇,所以譏子路장무중의 지혜, 맹공작의 무욕, 변장자의 용맹을 든 것은 자로를 기롱하기 위함
  6. 辨其然豈其然,是欣得其實而覺前所聞者非理其然豈其然은 실상을 얻어 기뻐하며 앞서 들은 것이 이치가 아님을 깨달은 것
  7. 辨桓公非兄,子糾非弟환공은 형이 아니고 자규는 아우가 아님
  8. 辨爲己爲人之學,當從舊說爲己·爲人의 학은 옛 설을 따라야 함
  9. 辨有心哉擊磬,非後世之所謂知者有心哉擊磬은 후세의 이른바 지자(知者)가 아님
  10. 辨末之難,謂無辭可答末之難은 답할 말이 없음을 이름

衛靈公篇

19조 · PRFC_1130 · 최다
  1. 辨明日遂行,非以軍旅之事爲賤明日遂行은 군려(軍旅)의 일을 천하게 여겨서가 아님
  2. 辨在陳絶糧,當別爲一章在陳絶糧은 마땅히 따로 한 장이 되어야 함
  3. 辨子貢一貫與曾子一貫,無大小之別,無知行之別자공의 一貫과 증자의 一貫은 대소의 구별도 지행의 구별도 없음
  4. 辨無爲而治,在得二十二人無爲而治는 스물두 사람을 얻은 데 있음
  5. 辨參前倚衡,當與大車無輗、小車無軏同解參前倚衡은 大車無輗·小車無軏과 같은 방식으로 풀어야 함
  6. 辨可卷而懷之,其用功在邦有道之時可卷而懷之는 그 공을 쓰는 것이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 있음
  7. 辨夏殷周三正,非天地人三統하·은·주 삼정(三正)은 천·지·인 삼통(三統)이 아님
  8. 辨乘殷之輅,卽周禮五輅乘殷之輅는 곧 『주례』의 오로(五輅)
  9. 辨放鄭聲,非放鄭風放鄭聲은 〈정풍(鄭風)〉을 내치는 것이 아님
  10. 辨遠慮近憂,當以時言,不以地言遠慮·近憂는 때로써 말해야지 자리로써 말해서는 안 됨
  11. 辨如之何如之何,乃學者自悼之辭如之何如之何는 곧 배우는 자가 스스로 애태우는 말
  12. 辨沒世之沒,當讀之如沒階之沒沒世의 沒은 沒階의 沒처럼 읽어야 함
  13. 辨小不忍,非婦人之仁小不忍은 부인의 仁이 아님
  14. 辨餒在其中、祿在其中,非據來效而言餒在其中·祿在其中은 뒷날의 효험에 근거해 말한 것이 아님
  15. 辨仁能守之,謂守位仁能守之는 자리를 지킴을 이름
  16. 辨不可小知之知,當讀之如知州知縣之知不可小知의 知는 지주(知州)·지현(知縣)의 知처럼 읽어야 함
  17. 辨民之於仁,違避之甚於水火백성이 仁에 대해 피하기를 물·불보다 심하게 함
  18. 辨有敎無類,謂無族類種類有敎無類는 족류·종류의 구별이 없음을 이름
  19. 辨辭達之辭,卽使臣專對之辭辭達의 辭는 곧 사신이 전대(專對)하는 말

季氏篇

8조 · PRFC_1131
  1. 辨季氏篇不可獨指爲齊論「계씨」편만을 따로 『제론』이라 지목할 수 없음
  2. 辨蕭牆之憂,指二子而言蕭牆之憂는 두 사람(염유·계로)을 가리켜 말한 것
  3. 辨十世爲天子之十世,五世爲大夫之五世十世는 천자의 십세이고 五世는 대부의 오세임
  4. 辨大夫四世,通指三桓之家大夫四世는 삼환의 집을 통틀어 가리킴
  5. 辨益者三樂、損者三樂,讀當音洛益者三樂·損者三樂의 樂은 '락(洛)'으로 읽어야 함
  6. 辨君子三畏,皆以吉凶禍福而言君子三畏는 모두 길흉화복으로 말한 것
  7. 辨生知學知困學不學,不由於氣質生知·學知·困學·不學은 기질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님
  8. 辨隱居行義,卽伯夷叔齊,不可分爲二章隱居行義는 곧 백이·숙제이니 두 장으로 나눌 수 없음

陽貨篇

14조 · PRFC_1132
  1. 辨曰不可曰不可,是陽貨自問而自答"曰不可, 曰不可"는 양화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한 것
  2. 辨性相近,通上知下愚而言,竝無上中下三性性相近은 상지·하우를 통틀어 말한 것이니 상·중·하 세 가지 性이 있는 것이 아님
  3. 辨上知下愚,是謀身之工拙,非性品之高下上知·下愚는 처신의 공졸(工拙)이지 성품의 고하가 아님
  4. 辨不移,乃不爲人所移,非坐地不遷之謂不移는 남에게 옮겨지지 않음이지 자리에 앉아 옮기지 않음을 이르는 것이 아님
  5. 辨吾其爲東周,乃以魯遷費之隱語吾其爲東周는 노나라를 비읍으로 옮긴다는 은어(隱語)
  6. 辨佛肸之召,有爲政天下之機필힐의 부름에는 천하에 정사를 펼 기회가 있었음
  7. 辨周南召南,主弦誦而言「주남」·「소남」은 현송(弦誦)을 위주로 말한 것
  8. 辨禮樂之本在仁〈禮云禮云章〉예악의 근본은 仁에 있음 〈예운예운장〉
  9. 辨道聽塗說,是輕口之人道聽塗說은 입 가벼운 사람을 말함
  10. 辨古之矜今之矜,當是獧字之誤古之矜·今之矜의 矜은 마땅히 獧자의 잘못임
  11. 辨鑽燧改火,是一年一改鑽燧改火는 한 해에 한 번 바꾸는 것
  12. 辨宰我之對曰安,是當面不肯屈伏,非其心眞安재아가 "편안하다"고 답한 것은 면전에서 굽히려 하지 않은 것이지 그 마음이 참으로 편안했던 것이 아님
  13. 辨博奕猶賢,以其人品而言博奕猶賢은 그 인품으로 말한 것
  14. 辨徼以爲知,是逆遮人言若已素知徼以爲知는 남의 말을 미리 가로막아 마치 자기가 본래 알던 것처럼 하는 것

微子篇

6조 · PRFC_1133
  1. 辨待之以季孟之間,以牢禮而言"계씨와 맹씨의 중간"으로 대우함은 뇌례(牢禮)로 말한 것
  2. 辨滔滔是大水之貌,謂天下皆亂如涉大水而無津滔滔는 큰물의 모양이니, 천하가 모두 어지러워 큰물을 건너는데 나루가 없음과 같음을 이름
  3. 辨誰以易之,謂不與孔子易其所爲誰以易之는 공자와 그 하는 바를 바꾸지 않음을 이름
  4. 辨殺雞爲黍,是角黍殺雞爲黍의 黍는 각서(角黍)임
  5. 辨虞仲是仲雍之曾孫우중(虞仲)은 중옹(仲雍)의 증손임
  6. 辨六飯是諸侯之禮육반(六飯)은 제후의 예임

子張篇

5조 · PRFC_1134
  1. 辨日知月無忘,卽日就月將,卽溫故而知新日知·月無忘은 곧 日就月將이며 곧 溫故而知新임
  2. 辨博學篤志章,當與上賢賢易色合觀博學篤志章은 마땅히 앞의 賢賢易色과 합쳐 보아야 함
  3. 辨大德小德,當從舊說大德·小德은 옛 설을 따라야 함
  4. 辨子游之所謂本,卽治心繕性자유가 말한 本은 곧 마음을 다스리고 성을 닦는 것
  5. 辨父臣父政,當從舊說父臣·父政은 옛 설을 따라야 함

堯曰篇

6조 · PRFC_1135 · 총괄의 끝
  1. 辨天之曆數在爾躬,謂舜方掌曆象天之曆數在爾躬은 순이 바야흐로 역상(曆象)을 관장했음을 이름
  2. 辨孔註墨子之說,是梅氏造僞之鐵案공안국 주의 묵자 설은 매색(梅賾)이 위서를 만든 철안(鐵案)임
  3. 辨周親卽姬氏,仁人卽微子箕子周親은 곧 희씨(姬氏)이고 仁人은 곧 미자와 기자임
  4. 辨四方之政,卽唐虞巡守四岳之政四方之政은 곧 당·우의 순수(巡守)와 사악(四岳)의 정사
  5. 辨民食喪祭,不可平列爲四物,民食卽農政民·食·喪·祭를 네 가지로 나란히 벌일 수 없으니, 民食은 곧 농정(農政)임
  6. 辨魯論一部,始之以學,終之以命,卽下學上達之義『노논어』 한 부는 學으로 시작해 命으로 끝나니 곧 하학상달(下學上達)의 뜻임

論語徵 甲 · 서두

오규 소라이가 『논어징』 첫머리에 둔 여덟 조. 논어의 성립, 서명의 , 편차의 무통일, 주석가 호칭, 논어의 한계를 차례로 논한다. 저본에 구두점이 없어 역자가 끊었으며, 이체자와 CJK 확장 영역의 희귀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PRFC_1136제1조

孔子生於周末,不得其位,退與門人脩先王之道,論而定之。學者錄而傳之,六經傳與記是已。其緒言無所繫屬者,輯爲此書。謂之語者,裁然耳。蓋七十子之後,諸家所傳不無附益,獨此至爲醇眞,故學者𭔿之,比諸六經。迨漢代立之學官,崇聖人之言也。後世先王之道弗明,豪傑士厚自封殖,以聖知自處,遂至於以六經爲先王敶迹,獨潛心斯書。然學不師古,非孔子之心矣。迺敖然自取諸其心以爲解者,洎韓愈而下數百千家,愈繁愈雜,愈精愈舛,皆坐不師古故也。

공자는 주나라 말에 태어나 그 자리를 얻지 못하자, 물러나 문인들과 선왕의 도를 닦고 논하여 정했다. 배우는 자들이 기록하여 전한 것이 육경의 전(傳)과 기(記)가 이것이다. 그 나머지 말 가운데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것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이를 라 이른 것은 그저 그렇게 이름 붙였을 뿐이다.° 대개 칠십자 이후 여러 학파가 전한 것에 덧붙임이 없지 않으나, 유독 이것만은 지극히 순정하고 참되므로 배우는 자들이 이를 본받아 육경에 견주었다. 한대에 이르러 학관에 세운 것은 성인의 말씀을 높인 것이다. 후세에 선왕의 도가 밝지 못하자 호걸의 선비들이 스스로 두텁게 제 몸을 세우고 성인의 앎으로 자처하여, 마침내 육경을 선왕의 묵은 자취로 여기고 유독 이 책에만 마음을 잠기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배우되 옛것을 스승 삼지 않으면 공자의 마음이 아니다. 이에 오만하게 제 마음에서 끌어다 풀이한 자가 한유 이하 수백 수천 가에 이르렀으니, 번잡할수록 더 잡되고 정밀할수록 더 어그러진 것은 모두 옛것을 스승 삼지 않은 탓이다.

PRFC_1137제2조 · 서명의 유래

余學古文辭十年,稍稍知有古言。古言明而後古義定,先王之道可得而言已。獨悲夫中華聖人之邦,更千有餘嵗之久,儒者何限,尚且嘵嘵然事堅白之辨,而不識孔子所傳爲何道也,况吾東方乎。孟子有言曰:「無有乎爾,則亦無有乎爾。」豈謂今之時與。是以妄不自揣,敬敬其所知,其所不知者,蓋闕如也。有故有義,有所指擿,皆徵諸古言,故合命之曰論語徵。

나는 고문사(古文辭)를 십 년 배워 차츰 옛말[古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옛말이 밝아진 뒤에야 옛뜻[古義]이 정해지고, 선왕의 도를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슬프다. 중화는 성인의 나라로 천여 년의 오램을 지나며 유자가 얼마나 많았던가마는, 오히려 시끄럽게 견백(堅白)의 변론이나 일삼고 공자가 전한 것이 무슨 도인지 알지 못한다. 하물며 우리 동방(일본)이랴. 맹자가 "없구나, 그렇다면 또한 없구나"라고 했으니 어찌 오늘의 때를 이름이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에 망령되이 스스로를 헤아리지 못하고 아는 바를 삼가 밝히고 알지 못하는 것은 대개 빼두었다. 연고가 있고 뜻이 있고 지적한 바가 있으니, 모두 옛말에 징험(徵)한 것이므로 합하여 이름 짓기를 『논어징(論語徵)』이라 했다.

PRFC_1138제3조 · 論과 語

蓋先王詩書禮樂,孔子之前學者亦傳其義,然其言人人殊矣。至於孔子而後論定,故所以命之爲論者,迺以命孔子事業乎爾。大史公謂「學者稱述六藝,皆折𠂻於孔子」,是之謂乎。如論人、論官、論罪,古皆謂論而定之也,非徒論辨也。漢書藝文志謂「弟子論撰孔子之語」,猶爲不失古言,迺論屬之弟子,其意謂如尚書之尚也。則國語、家語何別?齊論、魯論何謬?且訓語爲言,非古矣。古者大學有乞言合語,周官大司樂有樂語,凡言之可以爲敎者,皆謂之語。如「語云」及「請事斯語」之類可見已。故曰:謂之語者,裁然耳。

대개 선왕의 시·서·예·악은 공자 이전에도 배우는 자들이 그 뜻을 전했으나 그 말이 사람마다 달랐다. 공자에 이른 뒤에 논하여 정해졌으므로, 이라 이름한 까닭은 곧 공자의 사업을 이름한 것일 따름이다. 태사공이 "배우는 자들이 육예를 칭술함에 모두 공자에게 절충한다"고 한 것이 이를 이름인가. 사람을 논하고 관직을 논하고 죄를 논한다 하는 것처럼, 옛날에는 모두 논하여 정하는 것을 論이라 했지 한갓 논변만이 아니었다. 『한서』 예문지에 "제자들이 공자의 말을 논찬(論撰)했다"고 한 것은 오히려 옛말을 잃지 않았다 하겠으나, 論을 제자에게 돌린 것은 그 뜻이 『상서(尚書)』의 尚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어』·『가어』와 무엇이 다르며, 『제론』·『노론』은 무엇이 잘못인가. 또 語를 言으로 훈고하는 것은 옛것이 아니다. 옛날 태학에 걸언(乞言)·합어(合語)가 있었고 『주관』 대사악에 악어(樂語)가 있었으니, 무릇 가르침이 될 만한 말은 모두 語라 했다. "어운(語云)"이나 "청컨대 이 말씀을 일삼겠습니다[請事斯語]" 같은 부류에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語라 이른 것은 그저 그럴 뿐"이라 한 것이다.

PRFC_1139제4조 · 편차와 호칭

七十子所錄人人殊矣,散之四方,人爲篇而篇無統也,命篇無意義。以此程子曰:「成於有子曾子門人,故唯二子以子稱。」何迺遺閔冉?且也子思作中庸,字其祖,子何必優於字乎?大氐其族有爲大夫者,則子𡚖之。其它否,烏知子貢、子路、游、夏之儔,其族不有爲大夫者乎?又如何註所引「孔曰」「馬曰」「王曰」,古本皆具其姓名,作「孔安國曰」「馬融曰」「王肅曰」,而晏父名咸,故於包咸擉去其名,辟諱也。至於孔頴達正義,迺始盡去其名,從省也。朱子不睹古本,妄謂不名先儒禮也。於是乎尹焞、游酢、𧬄良佐屬悉氏而不名,又從而爲之階級,子程張而氏諸儒。自此之後,大全諸書奉以爲金科玉條,不敢違,遂使讀者茫乎不能識其爲誰某也。殊不知君前臣名,其於父與師亦爾。解經諸儒具其姓名,禮當然也;且功罪有歸,謬誤可𮃛,義當然也。予嘗謂朱子不知而作者,豈不然乎?

칠십자가 기록한 것이 사람마다 달랐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람마다 제 편을 이루었으니 편에 통일이 없고 편명에는 의미가 없다. 이 때문에 정자가 "유자·증자의 문인에게서 이루어졌으므로 오직 두 사람만 로 칭한다"고 했으나, 어찌 민자건과 염백우는 빠뜨렸는가. 또 자사가 『중용』을 지으며 제 할아버지를 자(字)로 칭했으니, 子가 어찌 반드시 字보다 낫겠는가. 대저 그 일족에 대부가 된 자가 있으면 子로 불렀을 것이다. 그 밖의 경우는 그렇지 않으니, 자공·자로·자유·자하의 무리인들 그 일족에 대부 된 자가 없었음을 어찌 알겠는가.

또 하안 주에 인용된 "공왈(孔曰)"·"마왈(馬曰)"·"왕왈(王曰)"은 옛 판본에 모두 성명을 갖추어 "공안국왈"·"마융왈"·"왕숙왈"로 되어 있었는데, 하안의 아비 이름이 함(咸)이었으므로 포함(包咸)에서 그 이름을 빼버렸으니 피휘한 것이다. 공영달의 정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이름을 다 뺐으니 생략을 따른 것이다. 주자는 옛 판본을 보지 못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 선유에 대한 예라고 잘못 여겼다. 이에 윤돈·유작·사양좌의 무리를 모두 氏로만 하고 이름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계급까지 만들어 정자·장자는 子라 하고 여러 유자는 氏라 했다. 이후로 『대전』 등의 책들이 이를 받들어 금과옥조로 삼아 감히 어기지 못하니, 마침내 읽는 자로 하여금 아득하여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임금 앞에서는 신하를 이름으로 부르며 아비와 스승에게도 그러함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경을 풀이한 여러 유자의 성명을 갖추는 것은 예에 마땅한 일이며, 또 공과 죄가 돌아갈 데가 있고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으니 의리에도 마땅하다. 내 일찍이 "주자는 알지 못하면서 지은 자"라 했으니 어찌 그렇지 않은가.

PRFC_1140제5조 · 층위 가설

魯論二十篇,齊論二十二篇,古論二十一篇,其傳於後者尚爾,况論語未成之時乎?其篇有并析者可知也。祗其書以知命君子終始,及郷黨終上論、堯曰終下論,群弟子之言附後,蒐輯者之條理之也。蓋上論成於琴張,而下論成於原思,故二子獨稱名,其不成於他人之手者審矣。

『노론』은 스무 편, 『제론』은 스물두 편, 『고론』은 스물한 편이니, 후세에 전한 것도 오히려 이러한데 하물며 논어가 이루어지기 전이랴. 그 편에 합쳐지고 갈라진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책이 「지명군자(知命君子)」로 시작과 끝을 삼고, 「향당」이 상론을 끝맺고 「요왈」이 하론을 끝맺으며 여러 제자의 말이 뒤에 붙은 것은 수집한 자가 조리를 지은 것이다. 대개 상론은 금장(琴張)에게서 이루어지고 하론은 원사(原思)에게서 이루어졌으므로 두 사람만 이름으로 칭한 것이니, 다른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PRFC_1141제6조 · 序가 없다

矢口之與渉筆,有間也。論語者,聖人之言而門人之辭也。謂之聖人之文者惑矣。門人一時以意錄之,以備忽㤀焉耳,豈有意傳之後世哉?且烏知其錄時之意乎?且論語猶詩邪?詩有序而論語無序,何以識孔子所以言之乎?

입에서 곧바로 나온 말과 붓으로 쓴 글은 사이가 있다. 논어는 성인의 말씀이되 문인의 글이다. 이를 성인의 글이라 이르는 것은 미혹된 것이다. 문인이 한때 제 뜻대로 기록해 잊음에 대비했을 뿐이니 어찌 후세에 전할 뜻이 있었겠는가. 또 기록할 때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또 논어가 『시』와 같은가. 『시』에는 서(序)가 있으나 논어에는 서가 없으니, 무엇으로 공자가 그렇게 말한 까닭을 알겠는가.

PRFC_1142제7조 · 기록자의 공졸

曾㸃之舞雩,如眎諸畵;樊遲則否,迺錄者之工拙殊也。凢謂論語精譔者,其說至於「邦君之妻曰小君」而窮矣。且先王之道,禮樂焉耳,而孔氏多言其義。禮樂殘缺,論語迺有不可解者矣。

증점의 무우(舞雩) 대목은 그림을 보는 듯한데 번지의 경우는 그렇지 않으니, 이는 기록한 자의 솜씨가 다른 것이다. 무릇 논어가 정밀하게 편찬되었다고 하는 자들의 설은 "임금의 아내를 소군(小君)이라 한다"는 대목에 이르러 궁색해진다. 또 선왕의 도는 예악일 따름인데 공씨 문하는 그 뜻을 많이 말했다. 예악이 잔결되었으니 논어에 마침내 풀 수 없는 것이 있게 되었다.

PRFC_1143제8조 · 진사이 비판

人不欲學孔子所學,而欲學孔子,是工人不由規矩準繩而學般倕也。其意謂欲學孔子宜無若論語,聖人之言行具是,而其意猶有所不足也,則以史記世家補之。噫,是惡足盡孔子哉!孔子不得其位,不行其道於天下,以匹夫終其身,故其所言所行止於若是焉。夫舜耕歷山、陶河濵而人化之,是其德爲爾,何以睹其道乎?苟有其德,則舉而措諸事業,是莊周內聖外王之說也。「道者率性自然,而人皆有之,故聖人不假學」,是宋儒以後之失也,其究必至於廢六經而極矣。孰謂仁齋先生殊於宋儒也?然則論語不足讀邪?曰:否也。工人旣傳其規矩,而後與般倕處,其益豈小小乎?是歷山雷澤之間,亦足以窺其百揆之時哉。要之聖人之道大矣,苦學者所見之小焉耳。

사람이 공자가 배운 바를 배우려 하지 않고 공자를 배우려 하니, 이는 공인이 규구준승(規矩準繩)을 말미암지 않고 반수(般倕) 같은 명장을 배우려는 것이다. 그 뜻인즉 공자를 배우려면 논어만 한 것이 없으니 성인의 언행이 다 여기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나, 그래도 부족한 바가 있어 『사기』 세가로 보충한다는 것이다. 아, 이것이 어찌 공자를 다하기에 족하겠는가!

공자는 그 자리를 얻지 못해 그 도를 천하에 행하지 못하고 필부로 몸을 마쳤으므로, 그 말한 바와 행한 바가 이 정도에 그쳤을 뿐이다. 저 순임금은 역산에서 밭 갈고 하빈에서 그릇을 구웠는데도 사람들이 교화되었으니, 이는 그 덕이 그러한 것이지 무엇으로 그 도를 보겠는가. 진실로 그 덕이 있으면 들어서 사업에 두는 것이니, 이는 장주(莊周)의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설이다. "도란 성(性)을 따르는 자연이어서 사람이 모두 지녔으므로 성인은 배움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은 송유 이후의 잘못이니, 그 끝은 반드시 육경을 폐하는 데 이르고야 만다. 누가 진사이(仁齋) 선생이 송유와 다르다고 하는가.

그렇다면 논어는 읽을 만하지 않은가? 아니다. 공인이 이미 그 규구를 전수받은 뒤에 반수와 함께 지낸다면 그 유익함이 어찌 작겠는가. 이는 역산과 뇌택 사이에서도 또한 백규(百揆)의 때를 엿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요컨대 성인의 도는 크되 다만 배우는 자의 소견이 작을 따름이다.

자료 노트 · 다음 작업을 위한 메모

  • 번역은 초역이다. 특히 ° 표시한 다섯 조목(里仁 5, 雍也 1·3, 顔淵 6, 論語徵 1조의 裁然)은 원문 대조와 판정이 필요하다. 辨犂牛之子喩父勝於子는 통설(자식이 아비보다 낫다)과 반대 방향으로 읽히므로 『고금주』 본문 확인이 필수다.
  • 集注 서설의 할주가 저본에서 본문과 붙어 있다. ctext 텍스트는 소자쌍행(小字雙行)의 할주를 구분자 없이 본문에 이어 붙였다. 위에서는 역자가 갈라 주묵 꺾쇠로 표시했으나, 데이터로 옮길 때는 이 구분을 원본에서 다시 확인해야 한다. 갈라내지 않으면 "史記의 서술"과 "주희의 판정"이 한 덩어리로 섞인다.
  • 古今注와 論語徵 원문에는 구두점이 전혀 없다. 위 원문의 구두는 역자가 찍은 것이다. 표점을 데이터에 넣을 경우 저본 표점인지 편자 표점인지 반드시 구분해 기록해야 한다.
  • 희귀자 확인. 論語徵에 CJK 확장 영역 문자가 들어 있다 — 𭔿 𠂻 𡚖 𧬄 𮃛 . 표시되지 않는 글자가 있으면 폰트 문제이며 데이터는 온전하다. 이체자 凢 眎 濵 觧 敶 嵗 譔 毉도 정규화 대상.
  • 저본 오자 두 건. 八佾篇의 己上(다른 편은 已上), 公冶長篇의 公治長(의 오자). 원 스프레드시트를 고칠 때 함께 처리.
  • 君子 프로젝트와의 접점. 세 서문에서 君子가 논점으로 등장하는 것은 季氏篇 辨君子三畏皆以吉凶禍福而言과 顔淵篇 辨惜乎夫子之說君子也是九字一句, 그리고 論語徵 제5조의 知命君子 세 곳이다. 다산이 君子三畏를 "길흉화복으로 말한 것"으로 읽은 것은 도덕적 이상으로서의 君子가 아니라 처지·형세로서의 君子를 상정한 것이므로, 君子 용법 분류에서 중요한 사례가 된다.

원문 출처: 論語集注 — ctext.org (id 89585–89601) · 論語古今注 原義總括 —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597A_0350_010 · 論語徵(甲) — 소장 입력본. 자료 정리: 20250329_논어주석DATA 「서문 모음」 시트 43항목. 번역: 초역, 검토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