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리식 집자리[渼沙里式住居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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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미사리식 집자리는 하남 미사리 유적의 발굴 성과를 통해서 명칭이 부여된 청동기 시대 집자리의 형식 가운데 하나이다. 평면 형태는 방형 또는 장방형이며 내부에 돌 깐 돌 두름식 화덕자리(石床圍石式爐址)가 있다. 바닥에 넓고 납작한 돌을 한 개 또는 몇 개를 깐 것이 많은데 그 둘레를 강돌이나 깬돌로 원형이나 (장)방형으로 두른 것이다. 이와 같은 집자리는 청동기 시대 문화 유형 가운데 미사리 유형의 집자리에 해당한다. 미사리 유형은 미사리식 집자리와 함께 돋을띠 골무늬 토기(刻目突帶文土器), 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반달 돌칼,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등의 석기를 표지로 한다.

미사리식 집자리의 돌 두름식 화덕과 유사한 형태는 가락동 유형가락동식 집자리(또는 둔산식 집자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이들은 다소 차이가 있다. 미사리식 집자리의 화덕 자리는 바닥에 돌을 깔고 그 주위를 방형 또는 타원형으로 돌을 돌린 돌 깐 돌 두름식이 많지만, 가락동식 집자리의 돌 두름식 화덕 자리는 바닥면의 땅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또는 약간 파고 주위에 돌을 돌린 것이다. 미사리 유적의 미사리식 집자리는 기둥 구멍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바닥 위에 기둥을 그대로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돋을띠 골무늬 토기가 나온 유적의 집자리 중 기둥을 세우는 주춧돌(礎石)이 있는 것과 바닥에 돌을 깔지 않은 돌 두름식 화덕이 있는 것이 있다. 이를 미사리식 집자리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연구자들이 있는 반면에 주춧돌과 돌 두름식 화덕은 가락동 유형의 집자리와 관련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미사리식 집자리는 청동기 시대 아주 이른 시기(早期)(기원전 15~14세기)에서 이른 시기(前期)에 유행한 가옥이다. 남한 전역에서 확인되는데 대부분 강변의 충적지에 분포한다. 청동기 시대 아주 이른 시기에는 미사리식 집자리에서 돋을띠 골무늬 토기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른 시기(기원전 13~9세기)가 되면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등도 나온다. 이 집자리의 존속 시기에 대해서는 아주 이른 시기로 한정시키는 견해와 아주 이른 시기뿐만 아니라 이른 시기까지 이어진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밖에 청동기 시대의 시기 구분에서 아주 이른 시기(早期)를 인정하지 않는 연구자들은 미사리식 집자리를 이른 시기(前期)로 구분한다. 이와 같은 시기 구분의 견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자리의 형태가 방형에서 장방형으로 변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인정한다.

미사리식 집자리는 기원전 15~12세기 존속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집자리는 동북한의 두만강 유역에서 그 계보를 찾는 연구도 있지만, 심귀리 유적공귀동 유적이 위치하는 서북한의 압록강 중상류 유역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는 연구자들이 많다. 미사리식 집자리는 한반도 청동기 시대의 가장 이른 시기의 가옥일 뿐만 아니라,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의 주거 문화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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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