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리식 집자리[檢丹里式住居址]
| 주요 정보 | |
|---|---|
| 이칭·별칭 | 울산식 집자리, 천상리식 집자리, 검단리식 주거지 |
| 키워드 | 청동기 시대, 검단리 유형, 집자리, 울주 검단리 유적, 연암동식 집자리, 울산식 집자리 |
| 시대 | 청동기 |
| 위치 | 대한민국 |
| 지역 | 울주 검단리 유적 |
| 수록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시대편) |
| 집필자 | 이수홍 |
| 상세 정보 | |
| 성격 | 유구 |
설명
검단리식 집자리는 울산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해안 지역 일대에 많이 분포하는 청동기 시대 검단리 유형 단계(타 지역의 송국리 문화 단계)에 축조된 집자리를 말한다. 북쪽으로는 포항에서부터 경주, 울산, 양산 지역에 많이 분포하며 부산, 김해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현재까지의 발굴 성과로 볼 때 북쪽으로는 포항 이북에서 확인될 가능성이 있지만 남서쪽의 김해 지역 서쪽으로는 분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평면 형태는 방형, 장방형이며 내부에는 화덕 자리(爐址),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柱穴)이 확인되고, 경사면 아래쪽 한쪽 모서리에 외부로 돌출된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동남해안 지역 일대는 충적지가 발달하지 않아 유적이 대부분 구릉에 입지하는 경우가 많다. 울산 입암리 유적이나 경주 방내리 유적 등 평지에 입지하는 집자리에서는 벽 도랑과 배수구가 설치되지 않는다.
주요 특징으로 벽 도랑과 배수구가 제시된 바 있으나 이는 유적의 입지와 관련된 것이다. 울산식 집자리는 동남해안 지역의 검단리 유형 단계에 분포하며 구조적으로는 ‘사각 구도의 기둥 구멍 배치를 보이고 하나의 화덕 자리가 짧은 벽 쪽에 설치된 방형 집자리’로 정의할 수 있다. 울산식 집자리의 외곽에 원형, 타원형의 도랑을 굴착한 집자리를 ‘연암동식 집자리(蓮岩洞式住居址)’라 부르기도 한다.
검단리식 집자리의 내부 시설을 살펴보면, 화덕 자리는 장축의 중앙선상에서 짧은 벽쪽으로 조금 치우친 한 곳에 설치된다. 형태는 바닥을 얕게 굴착한 구덩식(竪穴式)이거나 바닥에 바로 불을 피웠던 평지식(平地式)이다. 화덕 자리의 지름이 1m 정도로 큰 것도 있는데 이렇게 규모가 큰 것은 연어, 송어와 같은 대형 어종을 훈연하기 위한 용도라는 견해가 있다. 기둥 구멍은 4개, 6개가 대부분으로 기둥의 배치는 그에 따라 4주식, 6주식이다. 간혹 8개가 설치된 8주식도 있는데, 이런 집자리는 규모도 크고 입지에서도 차이가 있으며 내부에서 대형 토기가 출토되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마을 내 신분이 높은 사람의 집자리로 추정된다. 4주식은 기둥 구멍이 없는 경우도 많은데, 기둥 구멍의 단면을 보면 대부분 기둥의 끝부분을 뾰족하게 다듬어 바닥에 박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벽면에는 도랑이 굴착되는데 네 벽면을 ‘ㅁ’자 모양으로 모두 굴착한 사례도 있고, ‘ㅡ’자 모양, ‘ㄱ’자 모양, ‘ㄷ’자 모양으로 일부만 굴착한 경우도 있다. 벽 도랑 내부에는 벽 기둥 구멍(壁柱孔)이 설치된 것도 있는데, 기둥을 세우기 위한 용도보다는 벽 마감재를 설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수구는 아래쪽 한쪽 모서리에 설치되었는데 집자리 내부의 벽 도랑과 연결된다. 암거식 구조로 확인되는 것도 있는데, 생토를 관통해서 만든 터널식과 돌을 이용해 만든 석조식(石造式)으로 구분된다.
흔암리 유형 단계에 여러 개의 화덕 자리가 설치된 집자리에서 한 개의 화덕 자리가 설치된 검단리식 집자리로 변화하는 양상은 한반도 남부 지역 전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검단리식 집자리 단계에 이르면 집자리의 규모는 축소되고 점차 규격화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대가족체에서 세대 공동체로 다시 핵가족체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고, 단순한 가족 체계의 변화가 아니고 공동 거주 방식에서 개별 거주 방식으로 거주 방식이 변화하였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가족 체계의 변화이건 거주 방식의 변화이건 이것은 흔암리 유형 단계에서 검단리 유형 단계로 넘어가는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취락의 규모와 밀도가 급증하고 이는 인구가 폭발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 단계에는 사회적 위계화도 심화되고 유력 개인도 본격 등장한다. 무덤도 취락의 이러한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검단리식 집자리 단계의 이러한 사회적 변혁은 동시기의 다른 지역, 예를 들어 송국리 문화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최초 검단리식 집자리라는 용어는 검단리 유적에서 유일하게 확인된 송국리식 집자리인 27호 집자리를 가리키는 용어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이 송국리 유형의 집자리가 검단리 유형을 대표할 수 없기 때문에 울산 지역에서 확인되는 선송국리 유형의 집자리라는 의미는 폐기되는 것이 좋겠다. 검단리식 집자리는 동남해안 지역 송국리 유형 단계를 대표하는 의미로 불리어지는 것이 타당하다.
검단리식 집자리에 대해 일각에서는 천상리식 집자리로 부르기도 하고 최근까지 울산식 집자리라고도 하였다. ‘~식 집자리’라는 명칭에 지역명을 사용하는 사례가 없고, 이 집자리가 분포하는 곳이 검단리 유형 분포권과 일치하기 때문에 ‘검단리식 집자리’ 라는 용어가 보다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