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복식사전:연지

DKHC Edu

katd>Unknown user님의 2024년 1월 7일 (일) 21:48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연지
臙脂
ckid costume1489
한글 연지
한자 臙脂
영문(음역) Yeonji
영문(의미) Rouge
분류 염색
성별 기타
연령 기타
신분 기타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연지】



정의

  • 홍화로 만든 홍(紅)
  • Rouge made of safflower

해설

중국 고대의 화장재료인 홍(紅)에서 유래하였다. 홍에 염소기름을 섞은 것으로 연(燕)나라의 홍이 양질이었다고 하여 연지라고 불렀다. 연지는 언지(焉支)·연지(燕支)라고도 쓰며, 홍색의 안료이다. 염색에서는 대개 편홍(片弘)이라고 부른다. 연지의 유래에 관하여 진(晋)의 최표(崔豹)가 지은『고금주(古今注)』에서는 “연지의 잎은 엉겅퀴의 꽃이나 민들레와 비슷하고 서방(西方)에서 왔다.”라고 하여 연지가 서방에서 온 것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당(唐)의 장비(張泌, 842~914)가 지은『장루기(妝樓記)』에 의하면, “연지는 가루 상태의 염료[染粉]로 여인의 얼굴색을 물들였다. 옛날 흉노(匈奴)에는 알씨(閼氏,音同臙脂)라는 이름의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가히 연지와 같이 사랑스러웠다. 흉노에는 연지산(燕支山)이 있어, ‘내가 치롄산(祁連山)을 잃으면 가축(六畜)이 쉴 수 없고, 연지산(閼氏山)을 잃으면 여인이 얼굴색을 물들일 수 없다.’라며 노래를 불렀다.”고 하였다. 흉노에 있다는 연지산은 연지라는 풀(草)이 자라는 곳으로, 언지산(焉支山, 焉脂山) · 산단산(刪丹山) · 연지산(臙脂山 · 燕支山) 등으로 불리는 치롄산과 룽서우산(龍首山) 사이에서 길게 이어져 있는 산단허(山丹河)와 스양허(石羊河)의 분수령이다. 앞에서 말한 서방은 서역(西域)을 통틀어 말하는 것 일수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흉노를 지칭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연지산에 관련된 노래는 흉노가 한(漢)에게 연지산을 점령당한 후의 애통함을 나타낸 노래이다. 그러므로 이미 한(漢)에게 점령당하기 전부터 흉노에서는 연지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청(淸) 왕사정(王士禎, 1634~1711)의『오대시화(五代詩話) · 패사회편(稗史匯編)』에서 “홍람(紅藍)이 많고, 북인들이 이것의 꽃을 이용하여 붉은색 염료(染緋)로 사용하였으며, 연지(臙脂)로도 만들어 사용하였다.”라고 하여 연지가 흉노로부터 유래하였고, 이러한 화장법은 많은 유목민족의 이동과 한(漢)의 영토 확장을 통해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규합총서(閨閤叢書)』를 살펴보면, 연지를 만드는 법과 염색법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두어 번째는 처음 보기에는 금빛이 나니 냉수를 치고, 오미자 전국을 부어 막 급히 저어 놓으면 꽃거품이 일어나 송이지게 엉기어 누른 물은 위로 뜨고, 연지는 엉기어 가라앉거든 얇고 질긴 다듬이질한 종이를 광주리 같은 데 놓고, 그릇을 곱게 기울여 웃물은 따르고 종이 위에 쏟고 광주리 밑에 그릇을 밭여 놓아두면 맑은 물이 흘러 빠질 것이다. 개오기는 흰 청이 나도록 빼면 이 물도 또 연지가 섞였으니 비단 밑거리를 하여도 좋다. 연지 안친 것은 물이 거의 빠진 후 종이를 우구려 노끈으로 다치지 않게 동여 줄에 걸고 그릇을 밭이면 물이 모조리 다 빠지고, 이튿날 아침에 보면 연지만 엉기었을 테니 정한 사그릇에 쏟으면 잇꽃 두 근에 연지가 거의 두 보시기나 되고, 종이에도 변변히 묻지 않으니 그 종이는 빼어 분홍을 들이면 좋다. 연지 덩이를 젖은 김에 되게 물에 개어 불 위에 놓아 따뜻하게 하여 비단 위에 먹이되, 물을 작게 하여 묻히듯이 들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나『농정전서(農政全書)』에도 연지를 만드는 법에 관한 기록이 있다. 중국 명대(明代)의 기술서(技術書)인『천공개물(天工開物)』에는 “옛날에 연지를 만드는 방법에는 자광(紫鑛)으로 면을 염색한 것이 있는데 이것이 상등이고, 여기에 버금가는 것으로는 홍화즙과 산유화즙이 있다.”고 하였다.

관련항목

시맨틱 네트워크